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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백로와 수세미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4.05.15 06:00
  • 스승의 날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스승의 날에 소풍이나 사생대회, 체육대회 등의 행사를 한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이라고 기념식을 하는 것도 그렇고, 재량휴업일로 하자니 그 또한 그렇다 보니 고민이 컸을 것이다. 최근에는 과중한 업무와 학부모에게 받은 스트레스로 스스로 세상을 떠난 교사들까지 있다. 교권이 바로 서지 못하는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 사회의 원로, 교원, 학부모, 학생 모두가 지혜를 모아 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국민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동의 목표는 무엇일까? 미래를 위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많은 덕목 중에서 세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그 해답을 알려주는 그림이 있다.

  • (왼쪽) <삼사도(三思圖)>, 여기(吕纪), 출처=바이두, (오른쪽) <삼사도(三思圖)>, 유장열, 출처=개인소장
    ▲ (왼쪽) <삼사도(三思圖)>, 여기(吕纪), 출처=바이두, (오른쪽) <삼사도(三思圖)>, 유장열, 출처=개인소장

    두 그림의 제목은 모두 <삼사도(三思圖)>다. 하나는 백로를 세 마리 그린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수세미를 세 개 그린 그림이다. 그림의 소재는 새와 열매로 완전히 다른데 제목이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백로를 그린 <삼사도>를 보자. 백로는 한자로 로사(鷺鷥)라고도 한다. 이때 로사의 사(鷥, sī)는 생각할 사(思, sī)와 발음이 같다. 따라서 ‘백로’는 ‘생각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즉, “백로를 그리고 생각하다”로 읽는 것이다. 그런데 백로는 왜 하필 세 마리일까? 그림의 제목 <삼사도>에서 알 수 있듯이 ‘세 가지를 생각하다’이니 백로는 세 마리여야 한다. 

    다음은 수세미를 그린 <삼사도>를 보자. 수세미는 한자로 사과(絲瓜)라고 한다. 이때 사(絲, sī)는 생각할 사(思, sī)와 발음이 같다. “수세미를 그리고 생각하다”로 읽고, 수세미가 세 개이니 ‘세 가지를 생각하다’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세 가지를 생각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 해답은 《순자(荀子)》 <법행(法行)> 편에서 찾을 수 있다.

    孔子曰:君子有三思,而不可不思也。少而不学,长無能也;老而不教,死無思也;有而不施,穷無与也。是故君子少思长,则学;老思死,则教;有思穷,则施也。

    한자가 뜻글자인 데다 고대에 쓰인 한자어는 매우 함축적이라 의미를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 어렵지만, 행간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이러하다.

    공자가 “군자는 세 가지를 꼭 생각해야 한다. 어릴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커서 무능해지고, 어른이 되어 후세를 교육하지 않으면 죽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고, (재물이) 있을 때 베풀지 않으면 궁할 때 도와주는 이가 없다. 때문에 군자는 어른이 된 후를 생각해서 배워야 하고, 사후의 일을 생각하여 가르쳐야 하며, 궁할 때를 생각하여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꼭 해야 할 세 가지, 즉 학업정진, 후학양성, 봉사와 기부를 콕 집어 정리한 것이다. 물론 시대와 사람에 따라 꼭 해야 할 목표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세 가지가 개인과 사회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옛사람은 미래를 위해 모두가 실천해야 할 덕목을 백로 세 마리와 수세미 세 개로 표현했다. 그 뜻을 알고 보면 백로의 의미가 얼마나 무겁고, 수세미가 주는 울림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된다.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이 있다. 교원은 배워서 남에게 주는 사람이다. 교원이야말로 젊을 때 열심히 공부한 후 학생을 가르치니 학업정진과 후학양성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기부와 봉사는 퇴직 후에도 실천해야 할 덕목이니 <삼사도>는 교원에게 가장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교사와 교수는 많아도 스승은 없다고들 한다. 교육이 망가지면 사람이 망가진다. 교육이 바로 서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