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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으로 정서장애를 적응증으로 한 디지털 의료기기가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으며, 향후 불안장애 등 정서장애 치료 시장의 전환 가능성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디지털치료제 전문기업 하이(대표 김진우)는 지난 4월 7일, 자사의 범불안장애(GAD·Generalized Anxiety Disorder) 치료용 디지털 치료기기 ‘엥자이렉스(Anzeilax)’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품목허가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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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자이렉스’는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 이론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환자가 자신의 불안한 감정이나 사고를 억제하기보다는 수용하고, 자기 대화를 통해 인지적 균형을 회복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인지적 탈융합, 마음 챙김, 수용 등의 심리기법을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품목허가는 2022년부터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의 지원(과제번호: RS-2022-00141223)을 받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수행된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중증 범불안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엥자이렉스를 병행 사용한 실험군은 약물만 복용한 대조군보다 GAD-7(범불안 척도) 평가 기준 약 3배 이상의 증상 개선을 보였으며, PSWQ(펜실베이니아 걱정 척도) 등 2차 지표에서도 통계적 유의성이 입증됐다.
이번 승인으로 ‘엥자이렉스’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서장애(범불안장애)를 적응증으로 품목허가를 획득한 디지털 치료기기로 등록됐다. 지금까지 식약처에서 허가를 받은 디지털 치료기기는 ▲불면증 치료용 ‘솜즈(SOMZZ)’ ▲알코올 사용 장애 대상 ‘웰트아이(WELT-I)’ ▲시야장애 개선 ‘비비드브레인(VIVID Brain)’ ▲호흡 재활 보조용 ‘이지브리드(EasyBreath)’ ▲이명 치료용 ‘소리클리어(SoriCLEAR)’ 등이 있었으나, 불안·우울 등 정서장애에 특화된 디지털 의료기기 승인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상을 진행한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인한 범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국내 환자들에게 항불안제 복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향후 임상 과정에서 확인된 개선 사항을 보완해 출시한다면 많은 불안장애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통해 기존 약물 치료에 디지털 기반 중재가 보완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범불안장애는 일상생활 전반에 만성적인 불안을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대표적인 정서장애로, 근육 긴장, 수면장애, 초조함 등 다양한 신체·정신적 증상을 동반한다. 국내 불안장애 환자 수는 2021년 기준 약 86만 5,000명으로 2017년 대비 32.3% 증가했으며, 전문가들은 진단을 받지 못한 잠재적 환자까지 고려하면 유병률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여성과 중·노년층에서의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허가를 계기로 디지털 치료제가 정신건강 영역에서도 유효한 임상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향후 우울증, PTSD, 공황장애 등 다양한 정서 질환으로의 확대 적용 여부에도 관심이 모인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