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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100세까지 사는 것이 드물지 않은 현실이 되었고, 많은 이가 한 세기 가까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의 마지막 장’을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이 축복 같은 시간 앞에서 미소보다는 한숨을 먼저 내쉬는 이가 많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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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문의 답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정년 연장 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더 오래 살게 되었지만,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에 머물러 있다. 60세를 기준으로 한 정년 제도는 1880년대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자신의 나이였던 65세를 기준으로 고령자 사회보장 제도를 설계한 데서 출발했다. 이 기준은 오늘날까지 ‘노인’이라는 사회적 개념을 규정하는 데 영향을 미쳐, 평균 기대수명이 30년 이상 증가한 지금도 ‘일할 수 있는 기간’을 140여 년 전의 기준에 머무르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기대 수명과 일할 수 있는 나이의 간극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은 점차 68세로 상향되고 있지만, 정년은 여전히 60세에 고정돼 있다. 정년과 연금 수령 시점 사이의 8년은 무소득 공백 상태로, 길어진 수명이 오히려 리스크가 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정년을 연장하지 못하고 있을까? 그 해답의 중심에는 ‘사회적 인식의 정체’가 있다. 여전히 많은 제도와 기업은 60세를 노동의 끝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지금의 60대는 과거의 60대와는 다르다. 건강 상태, 지적 역량, 경험 면에서 훨씬 더 활발하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력이다. 그런데도 고령 인력에게 돌아가는 기회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 문제는 더 이상 고령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경험 있는 고령 인력을 외면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에 손해다. 정년 연장은 복지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며, 경제 구조 재편을 위한 중요한 전제다.
기술은 이미 고령자의 노동을 도울 준비를 마쳤다. 최근 헬스케어 전시회에서는 착용형 보조 기술과 디지털 인지 솔루션 등 고령자의 신체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기술이 다수 선보였다. 고령자의 활동 가능성을 넓힐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이미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은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이를 수용할 제도와 사회 인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진보한 기술도 무용지물이 된다.
이제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왜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100세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진정한 고령 친화 사회는 노인을 돕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노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