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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게와 갈대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4.11.13 06:00
  • 갈대가 눈이 부시다. 이때가 되면 오세영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 

    - 오세영, <11월> 중에서  

    위의 시에서처럼 갈대의 의미가 특별한 전통 그림이 있다.

  •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 김홍도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 김홍도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 <지두해도(指頭蟹圖)>, 최북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 <지두해도(指頭蟹圖)>, 최북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김홍도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게가 갈대꽃을 탐하다-와 최북의 <지두해도(指頭蟹圖)>-손가락으로 그린 게-에는 두 마리 게가 갈대를 꽉 잡고 있다. 어떤 뜻이 있기에 조선의 대표 화가들이 같은 그림을 그렸을까?

    갈대 ‘로(蘆, lú)’는 진열하다(전달하다)의 ‘려(臚, lú)’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 그리고 게의 딱딱한 등딱지는 갑각류의 ‘갑(甲)’을 상징하는데, 옛날 과거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등급인 ‘갑(甲)’, 즉 ‘장원급제’를 뜻한다. 다만, 그림의 게는 우리가 흔히 보는 꽃게가 아니라 민물에 사는 참게다. 

    그림의 게와 갈대가 의미하는 바는 ‘장원급제하기를 바랍니다!’이고, 게와 갈대를 그린 그림을 <전려도(傳臚圖)>라고 한다.

    게의 마릿수는 옛날 과거제도와 관련이 있다. 과거시험은 지방에서 실시하는 향시(鄕試)와 향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한양에 모여 응시하는 회시(會試)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보편적인 <전려도>에는 게를 두 마리 그리는데, 이는 향시와 회시를 한 번에 통과하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전려도>를 설명하면서 ‘려(臚)’가 ‘고기 안주’를 뜻하며, 과거시험의 합격자에게 임금이 전해주는 고기 안주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는 잘못된 이해이다. 

    ‘전려(傳臚)’는 옛날 중국에서 과거시험 합격자를 발표하는 궁중 의식과 관련이 있다. 과거시험이 끝난 후 길일을 택해 합격자를 발표하는 의식을 거행하는데, 전려(傳臚)는 이 의식에서 최종 합격한 명단을 황제로부터 아래 직급을 거쳐 합격자에게까지 전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호위 무사들이 동시에 합격자 이름을 크게 외쳐 발표했는데, 마이크가 없었던 옛날 가장 멀리까지 소리가 전달되도록 고안한 방법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얼마나 짜릿했을까? 이 전려 의식은 황제부터 신하들까지 참여하고, 전국에서 최고의 엘리트들을 선발하는 자리였으니 엄숙하고도 장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홍도의 그림에 쓰여 있는 글은 어떤 내용일까?

    ‘海龍王處也橫行(해룡왕처야횡행)’은 “용왕님 앞에서라도 옆으로 걸으시오”라는 뜻이다. 옛날 왕 앞에서는 앞으로 나아갔다가 뒷걸음으로 물러서는 것이 예법인데, 임금님 앞에서 옆으로 가라는 말이 좀 이상하다. 그 속뜻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당부의 말이다. 참 멋진 글이다. 

    내일이 수능이다. 수능 대박을 기원하며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 선생님들을 응원한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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