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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리포트]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산다?” 장수는 어쩌다 리스크가 되었나

기사입력 2025.04.01 07:00
  • 장수는 인류가 가장 열망하던 꿈이었다. 하지만 요즘 어르신 중에는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산다”는 말을 하는 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오래 살아 뭐하냐”는 말도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100세 인생이 축복이 아닌 짐으로 느껴지는 시대. 우리는 언제부터 ‘오래 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 이미지 출처=픽사베이
    ▲ 이미지 출처=픽사베이

    장수가 축복으로 인식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많은 이가 오래 살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강수명이 전체 수명보다 훨씬 짧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70대 이후 병치레에 시달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노후 소득, 주거, 의료, 인간관계 등 삶의 기반이 불안정한 가운데, 80세 이후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길어진 노후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은 '장수리스크'라는 용어에 잘 녹아 있다. 자신이 70세까지 살겠다는 가정하에 그때까지 쓸 돈만 준비해 놓았는데, 막상 100세까지 살게 된다면 남은 30년이 고스란히 리스크가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 개념을 이미 주요 정책 변수로 받아들여, 고령화 사회가 새로운 경제·사회적 위협이 될 것임을 경고해 왔다.

    하지만 장수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다. 누구도 살아본 적 없는 노년의 시간을 우리는 처음 맞이하고 있다. 앞선 세대에는 없던 새로운 시간대의 삶, 그 첫 주자가 지금의 고령층이다.

    장수는 이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이 되었지만, 이를 익숙하게 살아본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또한, 늘어난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알려줄 모델이나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다. 준비되지 않은 시간은 곧 리스크가 된다. 이에 따라 장수는 불안과 공포를 동반한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장수를 리스크가 아닌 삶의 확장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정보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고령자도 이해할 수 있는 복지 정보, 디지털 접근성, 사회 서비스 이용 안내가 친절하고 단순해야 한다. 다음으로, 장수한 이들의 경험을 사회 자산으로 축적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공동체의 집단지성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연령이 아닌 삶의 리듬에 맞춘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몇 살’이 아니라, ‘어떤 삶의 국면에 있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장수는 여전히 축복이다. 그 축복을 진짜로 누리기 위해선, 살아갈 삶의 내용이 따라줘야 한다. 오래 산다는 것은 더 많은 계절을 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며,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될 기회이기도 하다.

    100세 시대는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시대다. 축복을 리스크로 남겨두지 않기 위한 준비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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