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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우리 선생 계실 적에 엽서 한 장 써주세요. 구리구리멍텅구리 가위바위보”
어린 시절에도 아이를 키우면서도 했던 쎄쎄쎄, 그 놀이를 할 때 율동을 하면서 부르던 동요다. 노래가 끝나면 가위바위보를 한 후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뒷목을 손가락으로 콕 찍고는 “어느 손가락?”이라고 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춘향전>의 이별요(離別謠) 중에 “새벽서리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한양성 내 가거들랑 도령님께 이내 소식 전해주오”라는 구절을 접한 후, 어릴 때 신나게 불렀던 그 노래가 사실은 슬프고 처량한 심정을 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곰곰 생각해 보니 기러기가 등장하는 노래마다 느낌은 모두 슬픔이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가을밤 고요한 밤 잠 안 오는 밤 기러기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기러기 아빠’라는 외롭고 고달픈 존재까지 덧칠해져서 그런지 기러기는 구슬픈 이미지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갈대밭에 떼로 모인 기러기를 그린 병풍을 좋아했다니 그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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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는 한자로 로(蘆)인데, 늙을 로(老)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의 갈대는 노년(老年)을 의미한다. 그리고 기러기는 한자로 안(雁)인데, 편안할 안(安)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기러기’를 그리고 ‘편안하다’로 읽는다.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그림 <노안도(蘆雁圖)>는 ‘노년이 편안하다’는 뜻이고,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그림을 <노안도(老安圖)>라고 한다.
노년이 편안하려면 기본적인 필요조건이 있다. 자식 농사 잘 지은 후 짝지어 분가시키는 것, 손주 재롱 보면서 화목하게 사는 것, 직장생활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은퇴하는 것,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는 것, 부부가 건강하게 곱게 늙어가는 것, 오랜 벗들과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것 등등 이런 것들이 평범해 보여도 이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이를 알기에 <노안도>를 병풍으로 만들어 방에 놓고 매일 바라보지 않았을까? 여생을 준비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부터 당장 시작하자. 노안(老安)의 준비가 안 되면 노안(老顔)이 된다.
10월의 마지막 밤은 언제나 쓸쓸하다. 오늘도 기러기가 갈대밭에 앉는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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