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바스AI·위세아이텍·라온피플 ‘파란불’, 의료·제약 AI 기업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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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공지능(AI) 상장 기업의 진형이 나뉘었다. 지난해 주요 AI 상장사 14곳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기업별로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매출과 수익 부문에서 모두 성장한 기업이 있는 반면, 전년보다 적자 폭이 커진 기업도 다수 존재했다.
전반적으로 흑자인 기업보단 적자인 기업이 많았다. 14개 기업 중 흑자를 기록한 곳은 셀바스AI, 위세아이텍, 라온피플 단 3곳이었다. 루닛, 알체라, 뷰노, 딥노이드, 제이엘케이, 신테카바이오 등 6개 기업은 한 해 매출액보다 더 많은 적자를 기록하며 저조한 성적을 냈다.
지난해 AI 기업들의 성적표는 대화형 AI ‘챗GPT’ 등장 이후 격변하고 있는 AI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챗GPT 등 초거대 AI 기반 모델은 최근 기업 간 기술 장벽을 낮추고 있다. 고도화된 기술력이 없어도 챗GPT를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로 이용하면 여러 AI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어서다. 이를 토대로 최근 많은 스타트업이 챗GPT 기반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기존 AI 상장 기업들의 기술을 신규 업체가 빠른 속도로 추격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시장 환경에서 자체 기술과 공급망, 판매처 등을 뿌리내리지 않은 기업은 빅테크 기업의 빠른 기술 개발과 후발주자들의 추격에 쉽게 휘청거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실적 역시 마찬가지였다. 흑자를 기록한 기업들은 AI 사업을 전개하며 자체 기술 기반 공급망을 확고히 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했다. 반대로 매출보다 더 많은 적자를 낸 기업들은 신사업 발굴을 통한 매출 다각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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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불 안에 들어온 셀바스AI·위세아이텍·라온피플
지난해 실적으로 나뉜 AI 기업 진형에서 안정적인 영역에 들어온 기업은 셀바스AI, 위세아이텍, 라온피플이다.
셀바스AI는 지난해 연결기준 508억 원의 매출을 냈다. 전년(485억 원)보다 4% 높은 수치다. 영업이익은 10.7% 감소한 49억 원을 기록했다. 셀바스AI는 음성인식, 음성합성, 필기 OCR(광학식 문자판독장치) 등 인식 기술을 개발·공급하는 기업이다.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의 펜 인식 기술도 이 업체가 납품했다. 이 기업은 음성 AI 기술을 고도화하며 안정적인 시장 기반을 만들었다. 해양 분야나 경찰서 조서 작성 등에 특화된 음성 기술을 개발해 공공기관과 지자체, 대기업, 금융권 등에 납품 중이다. 초거대 AI 기반 음성 인식 기술이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면, 셀바스AI는 특정 분야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자체 시장을 형성했다. 그만큼 안정적인 공급망이 갖춰졌다는 평가다. 셀바스AI 관계자는 “AI 융합 제품 수요가 지속 증가하면서 탄탄한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위세아이텍은 지난해 별도기준 378억 원의 매출을 냈다. 전년보다 11% 성장한 수치다. 단 영업이익 면에선 전년(58억 원)보다 77% 감소한 13억 원을 기록했다. 위세아이텍은 1990년 설립돼 AI 개발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다. 노코드, 로우코드 등 AI 개발 지원 플랫폼이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부터 관련 제품을 출시해 초기부터 시장을 형성해왔다. 대표 제품으로는 ‘와이즈프로핏’이 있다. 데이터만 입력하면 AI 기반 예측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오토ML 플랫폼이다. 위세아이텍 관계자는 “AI 제품 수요 증가로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며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은 연구개발(R&D) 분야에 대규모 금액을 투자하고 사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선제적·전략적 투자를 한 영향”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올해 주력 사업인 AI 사업 부문에서 지속적인 매출 성장과 두 자릿수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라고 밝혔다. 이제동 위세아이텍 대표는 “지난해 신사업 확대와 제품의 클라우드 전환 등을 위해 40여명의 임직원이 소속된 대규모의 제품개발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며 “올해부터 센터를 통한 가시적인 실적과 성과도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온피플은 지난해 264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197억 원)보다 34% 성장한 수치다. 수익 면에서도 흑자 전환했다. 라온피플은 제조 분야 AI 비전 강자다. 주요 제조 분야에 머신비전 기술을 공급한 공급망을 토대로 AI 비전 기술을 납품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객사가 비전 기술을 쉽게 접목할 수 있도록 AI 사용을 돕는 플랫폼도 출시해 제조 분야 ‘AI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자체 비전 AI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도 진행 중이다. 농업, 교통, 의료 분야에 사용할 수 있는 비전 AI 기술을 개발, 전체 사업을 아우르는 AI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라온피플 관계자는 “안동 AI 스마트팜 사업이 확대되고 AI 스마트 교통 솔루션 공급이 많아지면서 매출이 증가했다”며 “제조 분야에서도 안정적인 매출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제약 AI는 위기… 비전 AI 다크호스 ‘알체라’도 고전
수익 창출에 빨간불이 켜진 기업도 있다. 루닛, 뷰노, 딥노이드, 제이엘케이, 신테카바이오 등 AI 의료·제약 기업과 비전 분야 다크호스로 불렸던 알체라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매출보다 더 큰 적자를 냈다. 루닛, 뷰노, 딥노이드, 알체라는 전년보다 매출이 상승했지만 그만큼 적자 폭도 늘었다. 제이엘케이, 신테카바이오는 전년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루닛은 지난해 전년보다 109% 성장한 138억 원의 매출을 냈다. 하지만 506억 원의 적자를 내며 전년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고무적인 것은 전체 매출 중 해외 매출이 약 100억 원으로 전체 80%가량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의료 분야는 보수적인 시장 영향으로 매출 확대 속도가 다른 사업보다 늦다. 루닛을 포함한 다른 AI 의료 기업이 좀처럼 수익 성장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탈출구는 해외에 있다. 해외에서 공식적으로 기술 인증을 마치면 판매처가 늘어나 빠르게 수익 창출을 할 수 있고, 이렇게 판매된 제품은 보수적인 시장 영향으로 다른 제품으로 대체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판매할 수 있어서다. 의료 정부사업 분야에 종사하는 관계자는 “루닛은 다른 의료 AI 기업에 비해 기술력이 높다고 평가된다”며 “해외 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한 만큼 장기적인 시각에선 흑자 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뷰노와 딥노이드의 매출 성장 폭도 컸다. 뷰노는 전년 대비 269% 증가한 82억 원의 매출을, 딥노이드는 238% 증가한 31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두 회사는 각각 153억 원, 61 억 원의 손실을 내며 전년보다 적자가 확대됐다.
비전 AI 기업 알체라도 마찬가지다. 전년보다 10% 성장한 110억 원의 매출을 냈지만 168억 원의 손실을 냈다. 알체라 측은 적자 확대 요인에 대해 인건비 확대, R&D 비용 증가 등을 꼽았다. 그러나 증권사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 회사는 2020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2021년 흑자전환, 그 이후부터는 흑자 폭 확대를 예상했다. 하지만 상장 후 한 번의 흑자를 내지 못했다. 영업을 통한 자체 자금 조달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인력투자를 하는 것은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다.
더 큰 문제에 처한 기업은 제이엘케이와 신테카바이오다. 제이엘케이는 지난해 34억 원의 매출을 냈다. 전년보다 9% 감소한 수치다. 수익 면에서도 86억 원의 적자를 내며 전년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신테카바이오 성적은 초라하다. 지난해 2억 원의 매출을 냈다. 다른 AI 기업과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이마저도 전년 3억 원의 매출보다 22% 줄어든 수치다. 이 회사는 2009년 설립된 바이오 벤처 회사다. 2014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유전체 빅데이터용 슈퍼컴퓨팅’ 기술을 출자받아 ETRI 연구소 기업이 됐다. 이후 2019년 기술특례상장에 성공하며 ETRI 연구소기업제도의 성공 모델이 됐지만, 수익 활로를 찾지 못하면서 상장폐지의 위기를 겪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신테카바이오는 실적 부진으로 관리종목 지정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다”며 “기술특례상장 기업으로 내후년까지 상폐 유예기간을 적용받지만, 전망은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솔트룩스, 미디어젠, 플리토, 마인즈랩 등의 기업은 전년보다 높은 매출을 기록했지만, 수익 면에선 여전히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브컴퍼니는 36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182억 원의 손실을 내며 전년보다 적자 폭이 커졌다.
- 김동원 기자 thea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