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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SNS 중독 시대, 정신의학 전문의가 파헤친 ‘도파민 중독’의 실체는?

기사입력 2025.03.11 15:05
'도파민의 배신' 저자 박선영 교수 인터뷰
  •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SNS 알림에 즉각 반응하며, 온라인 쇼핑의 쾌감을 찾는 현대인의 일상.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보이지 않는 충동에 휘둘린다. 이 모든 행동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도파민은 우리 뇌의 즐거움과 보상 시스템에 관여하는 중요한 물질이지만, 강하고 반복적인 자극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조종하고 중독을 유발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최근 출간된 '도파민의 배신'은 이러한 도파민의 작용이 현대인의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책의 공동 저자인 강웅구 교수와 박선영, 안유석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도파민이 일으키는 자극의 메커니즘을 심도 있게 풀어내며, 작은 습관이 어떻게 중독으로 변해가는지, 우리 뇌는 왜 끊임없이 자극을 갈망하는지를 과학적 근거를 통해 깊이 탐구한다. 또한, 중독이 단순한 의지력의 문제가 아닌, 뇌 구조와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결과임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이자 국립정신건강센터 중독 전문의인 박선영 교수를 만나, 도파민이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그리고 중독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과 박선영 교수
    ▲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과 박선영 교수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중독 질환을 담당하는 전문의 박선영입니다. 우리 센터는 보건복지부의 책임운영기관으로,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특히, 민간 의료기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정신건강 문제와 중독 치료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Q 교수님께서는 정신건강의학과 분야에서 오랜 연구를 해오셨는데, 특별히 '중독'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중독’은 정신과 전문의에게도 다루기 어려운 복합적 질환입니다. 환자의 치료 거부, 높은 중도 이탈률, 법적 문제와의 연관성 등이 주요 난제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오히려 제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중독 환자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치료가 어렵다’는 편견과 달리 꾸준한 치료로 건강한 삶을 되찾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며 큰 보람을 느꼈고, 중독 치료를 제 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Q 이 책에서는 중독을 단순한 ‘의지력 부족’이 아닌 뇌의 보상 시스템과 사회적 요인이 결합한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중독에 빠질까요?

    중독의 핵심은 중독성 물질이나 대상의 존재에 있습니다. 이는 당연해 보이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중독성 아이템은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조절 능력을 충분히 획득하지 못한 강한 자극입니다. 생존에 필수적인 음식이나 물과 달리, ‘적당히’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로운 중독 요소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이러한 '즐거움'을 조절하도록 설계되지 않아 중독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Q 도파민은 원래 생존을 돕는 필수적인 신경전달물질인데, 왜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중독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할까요?

    도파민은 단순히 ‘행복’을 주는 물질이 아니라, 특정 자극에 대한 ‘꽂힘(wanting)’을 만들어내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중독성이 강한 아이템을 접하면 도파민이 분비되어 그 자극을 반복해서 찾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중독된 아이템만 떠올리거나 비슷한 것을 보기만 해도 도파민이 먼저 분비됩니다. 이것이 중독된 대상에 집착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병적인 자극 추구와 정상적 자극 추구는 같은 도파민 회로에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사랑하고, 즐겁게 노는 것도 도파민 덕분입니다. 반면, 도파민을 차단하는 항정신병 약물을 장기간 복용한 만성 조현병 환자들은 무감각해지고,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Q 알코올, 마약, 도박뿐만 아니라 SNS, 쇼핑, 음식 중독까지 중독의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중독이 공통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있을까요?

    중독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작동 원리는 같습니다. 본래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자극들이 우리의 뇌가 적절히 조절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질 때, 도파민 시스템의 균형(항상성)이 무너지며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과거에는 술과 도박이 주였지만, 최근에는 SNS, 쇼핑, 음식 등으로 확장됐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중독 요소는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 도서 '도파민의 배신' /사진=포르체 출판
    ▲ 도서 '도파민의 배신' /사진=포르체 출판

    Q 도파민이 과하게 분비될 때와 부족할 때 나타나는 문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도파민 과다 분비의 대표적인 질환은 조현병입니다. 도파민이 특정 자극에 강한 몰입을 유도하기 때문에, 조현병 환자는 평범한 상황에서도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며 피해망상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조현병 치료제는 도파민 신호 전달 경로를 차단합니다.

    반대로 도파민 부족 상황의 대표는 ADHD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중해야 할 대상에 몰입하지 못하고 주의가 쉽게 산만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ADHD 치료제는 도파민 양을 증가시켜 이를 보완합니다. 도파민 신호 전달 경로의 역할은 다양하므로 파킨슨병과 같은 다른 질환들도 연관이 있습니다.

    Q 교수님도 혹시 빠져본 적 있는 ‘무해한 중독’이 있을까요?

    스스로 ‘음식 중독’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원사업이지요. 음식 중독은 결코 ‘무해한 중독’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대에는 ‘여행 중독’인가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직업을 갖게 된 뒤로는 바빠서 저절로 치료됐습니다. 물론 여행 중독도 주머니 사정에 유해합니다. 요즘은 주변에서 ‘일중독’인 줄 아는 사람도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놀 궁리를 제일 많이 합니다.

    Q 특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약물이나 특정 행위에 중독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는데, 특히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더 취약할까요?

    술은 ‘잘 마시는 사람’, 도박은 ‘돈을 따 본 사람’, 마약은 ‘하이(high)를 느껴본 사람’이 중독됩니다. 누구나 그 짜릿함을 경험하면 중독될 수 있습니다. 특히 호기심이 강하고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충동적인 사람들이 위험한 중독성 아이템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고, 지속적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큽니다.

    Q 만약 내가 중독에 취약한 성향을 가졌다면, 스스로 이를 예방하거나 조절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중독성 자극들을 최대한 접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입니다. 중독은 일단 시작하면 조절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나의 취약성을 인지하고 예방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술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집에 술을 쟁여놓지 않고, 술 약속을 만들지 않으며, 부득이한 모임에서는 지인들에게 술을 먹지 않겠다고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Q MZ세대는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지만, SNS나 숏폼 콘텐츠에서는 알고리즘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중독을 피하면서 자기 결정권을 지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공부에 집중이 안 될 때, 심심할 때 습관적으로 SNS나 숏폼을 봅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사용자들을 매체에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앱에 접속하지 않거나, 들어가더라도 시간을 정해놓고 사용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사용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중독의 해결책은 완전한 금지가 아니라 조절’이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중독을 완전히 끊지 않고 건강하게 조절하는 실질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중독의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마약이나 불법 도박은 완전히 끊어야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술은 아예 못 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신 스마트폰이나 술 외에 다양한 취미 생활을 개발하고,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를 고민하며 중독성 자극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조절이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며 SNS를 확인하는 손길 / 사진=픽사베이
    ▲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며 SNS를 확인하는 손길 / 사진=픽사베이

    Q 중독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치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대중의 인식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오해는 ‘중독은 자신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도 중독을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의지’만을 강조하면 자존심이 상해 오히려 더 중독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오해는 ‘중독은 무조건 입원해서 치료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입원 치료는 한 가지 옵션일 뿐이며, 비자발적 입원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외래를 방문하고 면담 및 약물 처방을 받으며 생활 습관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중독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Q 중독의 치료 방법 중 약물 치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셨는데, 약물 중독을 또 다른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약물로 약물 의존을 치료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해롭지 않은 다른 약물 사용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수면 안정제를 처방하면 술로 인한 건강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갈망감을 줄여주는 약물을 사용하면 약물 사용을 쉽게 줄이거나 끊을 수 있습니다. 치료를 통해 습관이 바뀌면 주치의와 상의하여 치료 약물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Q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으로 교수님이 추천하는 습관이나 활동이 있을까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녀노소 취미 생활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와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여가 생활을 개발할 기회가 적은 것 같습니다. 운동이나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동네 공원 산책, 도서관 방문, 카페 탐방, 등산, 자전거 타기, 친구와 수다 떨기, 뜨개질 등도 좋은 취미입니다. 한 가지를 시도하다가 잘 안되면 포기하지 말고,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세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건강한 삶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 또는 이 책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중독을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보거나 중독된 사람을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중독은 비정상적인 뇌, 성격 장애, 도덕적 악행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부가 겪는 독특한 체험’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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