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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운영체제 ‘ROS’의 진화, 농사짓는 ‘항공모함’을 만들다

기사입력 2023.08.04 11:01
[AgTech in 실리콘밸리] ①에이팩스에이아이(APEX.AI)
얀 베커 CEO “고도화된 ROS 소프트웨어, 농기계 혁신 이끈다”
  • 인구 증가와 기후변화 등의 문제로 ‘식량 위기’가 전 세계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한국은 많은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식량 위기에 취약한 국가입니다. OECD로부터 식량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취약한 국가 1위로 꼽히기도 했지요. 이에 식량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알고자 미국 실리콘밸리로 향했습니다. 첨단 농업 기술을 뜻하는 ‘애그테크’(AgTech)를 탐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를 담은 기획이 [AgTech in 실리콘밸리] 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많은 독자분께서 국내 식량 위기의 심각함을 알고 스마트 농업에 관해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주
  • 얀 베커 APEX.AI CEO. /김동원 기자
    ▲ 얀 베커 APEX.AI CEO. /김동원 기자

    로봇과 모빌리티 분야에 익히 알려진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있다. ‘로봇 오퍼레이팅 시스템(ROS, Robot Operating System)’이다. 2006년 설립한 ‘윌로우 개라지’(Willow Garage)가 만든 이 로봇 운영체제는 수많은 로봇 기업이 만들어지고 지금의 로봇 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이 운영체제는 윌로우 개라지 창업자인 스콧 핫산과 더불어 11개 기관의 연구자들이 함께 만들었다. 그중 한 명이 얀 베커 에이팩스에이아이(APEX.AI)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ROS 연구를 이어가 주로 연구 단계에 있었던 이 ROS를 실제 상업화·제품화할 수 있게 고도화했다. 제품명은 ‘APEX.Grace’다. 이 운영체제는 ‘메타운영체제’(Meta-operating system)의 일종으로 ROS를 기반으로 개발된 자동차 운행 전용 운영체제다. 국제 자동차 기능 안전인 ‘ISO 26262’ 최고 수준인 ASIL-D를 달성했다.

    이 제품은 농업 분야의 혁신도 이끌고 있다. 수많은 전투기를 탑재하고 있어 ‘움직이는 공항’이라 불리는 항공모함과 같은 자율주행 로봇을 농경지에 출현시켰다. 미국 스마트 농업 기계 전문 제조업체인 ‘AGCO 코퍼레이션’(AGCO Corporation, 이하 AGCO)이 인수한 ‘펜트’(Fendt)와 에이팩스에이아이가 협력해 지난해 6월부터 개발하고 있는 ‘펜트 세이버’(Fendt Xaver)란 이름의 로봇이다. 이 로봇은 농경지를 다니며 작물 상태 데이터를 취합하는 정밀센서가 탑재된 로봇들과 이들을 싣고 다니는 큰 운송 로봇으로 구성돼 있다. 작은 로봇들은 서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작물 상태를 파악한다. 미국은 넓은 영토만큼이나 농경지 면적이 크기 때문에 사람이 일일이 작물 상태를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이 로봇들이 농경지 구석구석을 다니며 작물 관리 데이터를 관리 시스템에 전송한다. 

    전송 데이터는 작물 상태 데이터, 진단 분석 데이터, 로봇 위치 데이터 등이다. 농부는 여기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쉽게 작물을 관리할 수 있다. 이상 상황이 있으면 이를 분석해 물이나 영양제를 더 주거나 농약을 주는 등의 조치를 빨리할 수 있어 손쉽게 작물 생산량과 품질을 높일 수 있다. 농경지를 돌아다니는 로봇은 그 대수가 많지만 서로 충돌하거나 같은 영역을 중복해 다니는 일이 없다. 에이팩스에이아이가 개발한 APEX.Grace를 통해 로봇들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부들은 스마트폰에 설치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쉽게 제어할 수 있다. 

  • APEX.AI가 AGCO 코퍼레이션이 인수한 Fendt와 개발하고 있는 '펜트 자이버'의 모습. /APEX.AI 홈페이지)
    ▲ APEX.AI가 AGCO 코퍼레이션이 인수한 Fendt와 개발하고 있는 '펜트 자이버'의 모습. /APEX.AI 홈페이지)

    에이펙스에이아이는 개발자 친화적인 확장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개발·공급하는 업체다. 소프트웨어 차량과 모빌리티 시스템에 필요한 인증된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 트럭 제조사, 공급사 등에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제공해 고객이 자율 주행, 전기차 등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를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경기도 성남에 한국 지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해외 지사를 설립한 건 독일, 스웨덴, 일본에 이어 네 번째다.

    그렇다면 에이팩스에이아이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한국 스마트 농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관련 내용을 알기 위해 국내 스마트 농업 전문가인 이경환 전남대 융합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농업생산무인자동화연구센터장)와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에이팩스에이아이 사무실을 방문해 얀 베커 에이펙스에이아이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얀 베커 CEO는 자동차, 로봇 프로토타입 개발에 활용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ROS 개발에 기여한 연구자 겸 기업인이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25년 이상 종사하며 다양한 연구 성과를 냈다. 폭스바겐에서는 로봇이 운전석에서 스티어링 휠을 잡고 페달을 밟고 운전하는 테스트 용도의 자율주행차를 개발했고, 보쉬에서는 운전자 지원 시스템을 개발했다. 2006년에는 스탠포드대에서 DARPA 어번 챌린지 레이싱 팀의 일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로봇 연구소, 기술 인큐베이터인 윌로우 개라지에서 지금의 로봇, 자동차 회사들이 프로토타입 개발에 사용하고 있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ROS 개발에 참여했다.

  • 얀 베커 CEO는 자동차, 로봇 프로토타입 개발에 활용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ROS 개발에 기여한 연구자 겸 기업인이다. /김동원 기자
    ▲ 얀 베커 CEO는 자동차, 로봇 프로토타입 개발에 활용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ROS 개발에 기여한 연구자 겸 기업인이다. /김동원 기자

    - ROS는 자동차, 로봇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다. 직접 개발에 참여했다고 알고 있는데.

    “ROS는 일종의 로봇 운영체제다. 오픈소스로 공개한 이 소프트웨어는 수많은 로봇 기업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사실 많은 로봇 공학자 중에 ROS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ROS는 윌로우 개라지에서 많은 연구자가 모여 만들었다. 이 회사는 스콧 핫산이 창업했다. 구글을 만든 여섯 멤버 중 한 명으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다. 핫산은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더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로봇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윌로우 개라지를 설립해 로봇을 연구하고 놓치고 있는 기술 분야는 무엇인지 탐구했다. 여기서 그는 로봇 발전 분야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할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오픈소스로 공개된 ROS다. 이 프로젝트는 총 11개의 기업 및 대학이 참여했다. 당시 나는 보쉬에서 로봇 분야 담당자로 근무하고 있어서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로봇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당시 참여했던 11개 기관은 모두 연구용 목적 로봇을 모두 받기도 했다.”

    - 현재 에이팩스에이아이는 주로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ROS 사용자가 실제 제품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운영체제를 공급하고 있다. 자동차나 로봇 분야에서 ROS는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사용되는 부분은 대다수가 프로토타입이고 실제 제품화에서는 ROS가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2017년 APEX.AI를 설립해 ROS로 제품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2018년과 2019년을 거치면서 훨씬 더 신뢰있고 실시간 지원이 가능한 고도화된 ROS를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2021년에 1차 제품인 APEX.OS를 출시했다. 현재 APEX.Grace라고 부르는 제품이다. 이 제품은 차량용 신뢰성 등급, 인증을 받았고, ROS 기반 프로토타이핑, 양산차에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차량 등급 인증도 획득했다.”

    - APEX.Grace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

    “쉽게 말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그 과정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개발 지원 기술이다. 아이폰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폰에는 사진을 찍는 카메라나 화면 밝기를 조절하거나 색상을 바꾸는 기술이 있다. 그런데 아이폰에 탑재된 기능이 이게 달까? 당연히 아니다. 아이폰에서 사용자들이 이용하는 기능은 수많은 앱이다. 이 앱들을 아이폰에서 운영하게 하는 것은 사실 상당히 복잡한 기술이다. 그런데 애플이나 안드로이드는 이러한 앱들을 스마트폰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앱을 이용할 때 별도 자판을 누르는 프로그램 등을 따로 만들 필요 없이 쉽게 운영할 수 있게 해놓았다. 자동차와 로봇에서 이처럼 복잡한 기술들을 쉽게 응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운영체제가 바로 APEX.Grace라고 보면 된다. 자동차든 트랙터이든 이동용 설비에는 다 적용할 수 있다. 농업 분야에서 자율주행 로봇이나 트랙터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안전인데, 우리 앱을 사용하면 앱 개발자가 안전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더 안전한 앱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

    - 농업 분야에 APEX.Grace가 사용된 사례를 알고 싶다.

    “AGCO라는 회사와 현재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펜트 세이버다. 항공모함과 같은 로봇에서 작은 로봇들이 나와 농경지에 심은 작물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진단하는 로봇이다. 여기에서는 처음엔 ROS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용 로봇에서 실제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생산용 로봇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우리 APEX.Grace를 사용하게 됐다. 현재 우리 연구자들과 이 로봇들이 현장에서 안전하게 성과를 낼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차량 로봇 외에도 드론이나 비행기 등 공중에서 활약하는 농기계에도 우리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아직 연구 단계로 정확하게 밝힐 순 없지만, ROS가 자동차뿐 아니라 비행기, 우주선 등에도 사용되는 만큼 이를 상업용으로 고도화한 APEX.Grace도 다양한 모빌리티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 얀 베커 CEO(맨 왼쪽)와 이경환 전남대 융합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맨 오른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동원 기자
    ▲ 얀 베커 CEO(맨 왼쪽)와 이경환 전남대 융합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맨 오른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동원 기자

    - 현재 단계에서 스마트 농업 고도화를 위해선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까.

    “지금까지 스마트 농업은 많은 발전을 이뤄왔다. 지금 로봇을 보면 씨를 심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20개 기능을 처리해낸다. 사실 하나의 로봇이 여러 작업을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실리콘밸리에 사용되는 농업 기계만 해도 하나의 작업만 할 수 있는 로봇이 많았다. 사과를 따거나, 햇볕에 맞춰 상추 방향을 옮기는 등 단일 행동만 하는 로봇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러 기술이 축적돼 로봇이 다양한 업무를 해내며 농업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로봇은 100% 자동화를 해내지 못한다. 95~98% 정도까지만 해낼 수 있다. 마지막 3%, 2%, 1%를 달성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현재 수준에서 100%를 달성할 수 있는 지름길은 인간과 로봇이 협업하는 것이다. 노동이 많이 필요하고 힘든 작업은 자동화하고, 구체적인 작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지금 공장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과 로봇이 협업하려면 안전 등 여러 조치가 따른다. 이러한 부분을 더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 한국에서는 농기계 발전을 위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선진 농기계가 많고 에이팩스에이아이도 협업하는 분야가 많다. 그렇다면 농기계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일까.

    “전기다. 전기로 움직일 수 있는 농기계를 만들어야 한다.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농기계는 환경에 치명적이다. 매연이 있는 밭에서 자란 식물은 친환경 농작물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전기로 움직이는 농기계는 그만큼 더 발전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전기차는 화석연료차보다 더 많은 기능을 탑재할 수 있다. 자율주행도 마찬가지다. 농기계도 원격 조절이 가능하고 자율주행 등이 완벽하게 하기 위해선 전기 기반이 돼야 한다. 농기계가 전기로 작동한다면 에너지 소비률도 줄어들고 환경오염도 덜 되며 생산량은 높일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은 미국보다 농지 규모가 턱없이 작고, 회사들도 대동·TYM·LS엠트론을 제외하곤 작은 곳이 많다. 이들 기업과도 협력이 가능할까.

    “물론이다. 우리가 사업적인 부분만 보면 사실 규모가 큰 기업과의 협업이 유리하다. 그래야 우리도 많은 제품을 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비즈니스 분야보단 기술적인 성장 가능성을 본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면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협력할 의사가 있다. 한국도 스마트 농업 단지를 구축하는 등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면(한국 스마트 농업에 관해선 이경환 전남대 교수의 설명이 있었다), 충분히 협력할 수 있는 성장 가능성 높은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 올해 한국 지사를 설립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한국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자율주행뿐 아니라 AI 등 다양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시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고, 시장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선 한국에 회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보았다.”

    - 한국 진출 이후 현재 자동차 산업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국 자동차 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자동차를 중점으로 시작했고 추후 사업 영역을 다각화할 계획이 있다. 한국에서 자동차 혁신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자율주행과 더불어 다양한 기술이 고도화되고 있다. 매우 놀라운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 자율주행과 관련해서 테슬라와 비교해 현대자동차그룹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회사마다 추구하는 비즈니스와 기술이 달라 비교 등급을 매기기는 어렵다. 특히 테슬라와 현대차는 추구하는 앱이 다르다. 테슬라는 자율주행차라기보다는 보조 드라이버 시스템이다. 반면 현대차는 진정한 자율주행을 발전시키려고 한다. 현대차의 특징은 소비자가 이 회사 차량을 구매했을 때 1주가 되든, 2주가 되든, 장기간이 되든 고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치는 안전성에 있다고 본다. 한국 회사의 이러한 가치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도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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