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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로 ‘치꽌이옌(氣管炎)’이란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글자 그대로 ‘기관지염’이 된다. 한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어휘를 새삼스레 여기에 소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관지염을 뜻하는 ‘치꽌이옌(氣管炎)’이라는 단어와 발음은 거의 같지만 한자가 다른 ‘치꽌이옌(妻管嚴)’이란 어휘가 있다. 그 뜻을 풀이하면 ‘아내가 엄격하게 관리한다’가 되는데 여기서 관리 대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남편이다. 따라서 ‘치꽌이옌(妻管嚴)’은 우리말로 ‘공처가’가 되는 셈이다. 만약 어떤 중국인에 대해 “그는 ‘치꽌이옌(氣管炎)’에 걸렸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치꽌이옌(妻管嚴)’이야”, 즉 “그는 공처가야”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치꽌이옌(妻管嚴)’이라는 어휘에서 중국의 뭇남편들이 아내를 상당히 무서운 존재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배경에는 과연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있는 것일까?
현재 중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여권(女權)이 신장되어 있다. 실제로 중국 여성은 아주 당당하여 고전적 의미의 여성미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이 고전적 의미의 여성미라는 말도 여성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중국의 여성은 당당함이 지나쳐 ‘억척스럽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실제 가정 생활에서 여성은 집안 대소사의 결정권을 가지며, 남자가 집안 일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 출생한 아기에게 부모의 성(姓)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게 하는데 엄마의 성(姓)을 물려받은 아이가 약 10%에 달한다고 한다. 중국에서 남자가 집안 청소와 육아는 물론, 요리를 담당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풍경이며 퇴근하는 길에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는 일 역시 남편들의 중요한 일상사이다. 부부동반 모임에서도 아내의 수발을 들고 아내의 말에 귀기울여 순종(?)하는 남편이 상식적인 남편이다.
이러한 중국 남성의 ‘여성 모시기’ 현상은 결혼 후에 생긴 것이 아니라 연애할 때부터 시작되는데 남부지방으로 갈수록 더하다고 한다. 중국 남자는 연애할 때 여자가 좋아하는 ‘꽝지예(逛街)’ 즉, ‘아이 쇼핑’에 군말 없이 따라다녀야 하고, 약속 시간에 여자가 늦는 것도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 일체의 연애 자금도 남자가 거의 부담하며 때로는 여자가 쇼핑한 물건값까지 지체없이 지불해야 한다. 백화점이나 번화한 상가에 가보면 여자가 여러 가지 옷을 입어보고 맘에 드는 옷을 살 때까지 남자는 자질구레한 짐을 들고 기다리다 군말 없이 옷값을 지불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중국 여성은 이러한 것을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얼마나 자신의 말을 잘 듣느냐하는 것을 배우자 선택의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여긴다.
중국은 1949년 공산화된 후 봉건주의적 사고방식과 종교, 구습을 일소하고 새롭게 사회를 개혁하면서 여성해방 운동을 급속하게 진행하였다. 중국에서의 여성해방은 이미 태평천국 운동에서도 주요한 한 부분이었다. 현재 남경의 총통부 내에는 이 때 지은 것으로 알려진 정자 한 채가 있는데 이 정자에는 남녀평등을 상징하는 지붕 두 개가 나란히 놓여져 있다. 이는 근세까지 중국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인권이 얼마나 무시되어 왔는가를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하나의 예일 것이다. 공산주의 운동이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성의 인권과 여성의 사회적 평등을 주창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의 길을 걸어온 지 이미 50년이 넘었고 특히 문화대혁명의 기간 10년 동안에는 과거의 전통이 수도 없이 사라져갔다. 그 결과 지금은 유교의 본산지인 중국에서 오히려 우리나라로 유학(儒學)을 배우러 오는 실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부도(婦道)니 부덕(婦德)이니 하는 말은 중국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말이 되었다.
실제로 내가 만난 중년의 중국 남자 중 대부분은 한국의 여자들이 비교적 동양의 전통적인 여성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러워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 남성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한국의 여성상이 현재 실제의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머릿 속에 그려진 한국의 여성은 그들의 직접적인 체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중국 TV에 방영된 10여년 전 한국 드라마 속의 여성상을 종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약 20년 전 한국의 모방송사에서 방영되었던 ‘사랑이 뭐길래(愛情是什么)’이다. 당시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시청률이 대단하여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데, 중국에서도 매우 인기를 누렸던 모양이다. 한중 수교 후 처음으로 중국에 소개된 한국 드라마라는 점에서 더욱 중국인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 만난 사람마다 88서울 올림픽과 ‘사랑이 뭐길래’는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연속극에서 다소 과장되게 묘사된 권위적인 대발이 아빠와 순종적 대발이 엄마를 보고 중국인들은 한국의 남자가 여자를 자주 때리며, 여자는 남자한테 꼼짝도 못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중국인은 내게 한국 여자들이 남편 앞에서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아야 하느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으며 한국의 여성은 결혼 후에 반드시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만 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중국인도 있었다. 나를 가르치신 40대의 여선생님은 그 연속극을 보면서 한국 여자를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게 됐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전족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열악했던 여성 인권이 지금처럼 달라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여성이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여자들의 경제권은 안정된 직장 생활과 고정적인 수입에서 비롯된다.
중국 여성의 사회 진출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이 1979년 개혁개방을 하기 이전에는 취업시 개인의 희망과 선택이 아닌 국가의 결정에 따라 남녀 모두에게 직장을 배분해 주었다. 따라서 중국은 공산화된 이후 모든 여성이 직업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개혁개방이 이루어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중국은 평균 임금이 낮기 때문에 남자 혼자 벌어서 자녀를 양육하고 여유있는 문화 생활까지 누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부부 두 사람이 모두 직장생활을 하니 함께 가사를 담당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휴일에 젊은 사람들에게 대단히 인기 있는 ‘麥當勞(맥도날드)’에서 아빠 혼자 아이를 데리고 와 ‘漢堡包(햄버거)’를 사 주는 광경은 매우 흔한 풍경이다.
중국에서 ‘치꽌이옌(妻管嚴)’에 걸린 남성들은 생각보다 많으며 그 정도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이다. 호사가들은 이처럼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설을 달기도 한다. 중국 여자들은 어려서부터 자전거 타기로 신체를 단련하고 그 결과 잠자리에서 남자를 압도하기 때문이라고.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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