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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눈이 뒤덮인 길 위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고 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소녀는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콧노래까지 부르며 추운 길을 걸어갈까.
그 소녀의 이름은 소현(기소유)이다. 소현이는 7살이고, 엄마 영은(곽선영)과 함께 산다. 영은은 수영 강사다. 남편과 이혼하고, 소현을 홀로 키우며 살아간다. 남편과의 이혼의 중심에는 딸 소현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소현의 섬뜩할 정도의 폭력적인 성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졌다. 남편은 도망치듯 떠났다. 엄마인 영은은 소현을 돌볼 수 있다고, 달라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며 집에 달마도도 걸어보고, 교회도 나가보고, 병원도 다니며,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버틴다. 하지만, 연이어 소현이 벌이는 사고들은 그를 주저앉게 한다.
그리고 ‘20년 후’라는 글자와 함께 민(권유리)의 모습이 등장한다. 민은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 청소 업체 직원으로, 이날도 현장을 청소하고 있었다. 고인의 가구에서 지갑이 발견돼 주머니에 쓱 넣은 순간 그는 거울을 통해 집 밖의 해영(이설)을 만난다. 해영은 웃으며 등장해 싹싹한 성격으로 특수 청소 업체 직원 모두를 사로잡으며, 민이 자신을 딸처럼 받아준 현경(신동미)과 살고있는 집 안으로 '범‘해 들어온다. 20년을 뛰어넘는 두 이야기 속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
’침범‘은 곱씹을수록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의 이미지만 해도,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엄마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만 흐를 수 있다는 것, 영화 속 대사처럼 “발차기를 하지 않으면 결국 가라앉고 만다”는 거스를 수 없는 한계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물에 자꾸만 돌을 던져 파장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딸, 소현이다. 그런 면에서 ’침범‘은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이 생기며 달라진 삶을 마주하게 되는 여행가 에바(틸다 스윈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떠올리게도 된다.
하지만 20년 후 민(권유리)과 현경(신동미)의 관계는 또 다른 모성을 보여준다. 딸을 잃은 현경은 민을 ‘딸처럼’ 품는다. 딸이 아닌, 딸 ‘처럼’은 어떤 깊이의 감정일까. 민과 해영(이설) 역시 과거 아픔이 있는 인물이다. 이들은 “이모”라고 부르며 ‘엄마’처럼 따르는 현경과 가족이 될 수 있을까. 같이 밥 먹고, 자는 식구가 될 수 있을까.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가족‘처럼’ 남을 구할 수 있을까. 영화 ‘침범’은 커다란 두 개의 줄기가 얽히고설키며 관객에게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
‘침범’은 20년 전에는 모녀 호흡을 맞춘 영은(곽선영)과 소현(기소유)의 에너지로 관객의 신경을 자극한다. 현악기 소리 없이도 두 사람은 현악기의 날카로운 고음 위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그리고 20년 후에는 비슷한 아픈 과거를 지나와 거울을 보는 듯한 민(권유리)과 해영(이설)의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모습이 긴장감을 더한다. 결국 두 이야기가 한 줄기로 모아지는 순간, ‘침범’해 내달린다. 그럴수록 곽선영, 기소유, 권유리, 이설의 낯선 얼굴들이 마음에 깊이 심겨지는 이유다.
불로 대표되는 붉은 색의 이미지나, 얽히고설킨 덩쿨의 이미지,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로 보여주는 시간대 등 영화 ‘침범’은 곳곳에 연결고리를 찾아가며 맞춰보는 재미를 더한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끝맛까지 쫀쫀한 스릴러 영화 임에 틀림없다. 김여정, 이정찬 감독은 함께 연출하면서 자신의 지점을 굳건히 지켜가며 시너지를 더했다. 상영시간 112분, 15세이상관람가, 3월 12일 개봉.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