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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헌의 의뭉스러운 '히든 페이스'에 대하여 [인터뷰]

기사입력 2024.12.07.00:01
  •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성진 역으로 열연한 배우 송승헌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성진 역으로 열연한 배우 송승헌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히든 페이스'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아직도 송승헌 하면 '숯검댕이 눈썹'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지난 1996년 방송된 MBC 시트콤 '남자 셋 여자셋'에서 그가 보여준 이미지였다. 잘생겼고, 어딘가 4차원인 이의정을 향한 지고지순한 캠퍼스 로맨스를 보여준다. 그 모습은 드라마 '가을동화', '여름 향기' 등의 작품에서 이어졌다. 송승헌도 느꼈고, 대중도 느꼈던 그의 전환점은 영화 '인간 중독'에서였다. 김대우 감독과 함께한 작품에서 그는 후배의 아내 종가흔(임지연)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지고지순한 과거의 오빠가 불륜이라니. 그의 변신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영화 '히든페이스'에서는 사라진 약혼녀 수연(조여정)의 후배 미주(박지현)와 사랑에 빠지는 지휘자 성진 역을 보여줬다. 가느다란 현처럼 미완성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했다. 결핍, 콤플렉스, 그리고 욕망덩어리인 인물 속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송승헌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만나면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친구"였다.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영화 속에서 송승헌은 그 자체의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스며들었다.

  •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성진 역으로 열연한 배우 송승헌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성진 역으로 열연한 배우 송승헌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Q. 영화 '대장 김창수' 이후 약 7년 만에 선보이는 한국 영화다. 동명의 원작이 있는 작품인데,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오랜만에 시사회도 하고, 관객분들도 만나고, 너무 좋죠. 영화를 만들고, 관객을 직접 만나게 되는 그날이 가장 기다려지고 좋은 날 같아요. 드라마는 직접 소통하기가 어렵잖아요. 원작이 있는 작품인 건 알고 있었어요. 세 남녀라는 설정만 가져왔고, 이들의 서사나 관계는 원작에는 없잖아요. 김대우 감독님의 장치들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원작도 보긴 했지만, '우리 시나리오가 훨씬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대우 감독님이 원하는 욕망, 비틀어진 본능의 단면 들, 그런 지점들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고, 생각지 못한 반전도 있잖아요. '괜히 김대우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시나리오부터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Q. 성진은 분식집 아들에서 유명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우뚝 선 인물이다. 수연의 엄마(박지영)의 말처럼 여자를 잘 만나,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어떤 인물로 그리고 임했나.

    "김대우 감독님과 오랜만에 함께하는 것도 좋았고, 더 좋은 건 성진이라는 캐릭터가 기존에 제가 한 역할들보다 현실적이고, 콤플렉스도 많고, 욕망도 많은 인물이라는 점이었어요. 그러면서도 그건 대놓고 티는 안 내고요. 감독님은 '의뭉스럽다'라고 표현하셨어요. 촬영 현장에서 제가 '성진이 너무 별로다. 이런 스타일 너무 별로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을 연기하는 거잖아요. 재미있었죠. 사회적으로 만났을 때 좋아할 수 없는 친구죠. 제가 정의롭고, 정직한 캐릭터를 많이 보여준 반면에 현실적이고 발이 땅에 닿은 캐릭터는 처음 해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저에게 연기하면서 계속 새롭고 즐거웠습니다."

  • 영화 '히든페이스'스틸컷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 영화 '히든페이스'스틸컷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Q. 실제로 만났다면, 친해질 수 없었을 것 같은 성진을 연기하며 연기적으로 고민한 지점도 있었을까.

    "성진은 절대 감정을 터트리지 않아요. 수연이 밀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바로 유리를 깨고 그를 구하지 않고 망설인단 말이에요. '나오고 나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잖아요. 김대우 감독님께서는 '성진이는 끝까지 참고, 감정을 눌러야 한다'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어요. 설거지하면서 수연(조여정)에게 '날 왜 이렇게 창피하게 만들어?'라고 불만을 표현할 때도 너무 내지르면 안 되었어요. 선을 지키면서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 감독님의 의도였어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나중에는 미주를 두고 수연과 성진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잖아요. 너무 섬뜩하잖아요. 정말 셋 중 정상적인 사람은 없죠. 사실 안에 있는 미주에게 성진이 '미안해, 나는 나대로 살게, 너는 너대로 살아'라고 독백하는 장면도 있었는데요. 그 독백이 편집됐어요. 성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보다 그 장면이 없는 게 섬뜩함을 더하는 것 같아요."

    Q. 미주(박지현)와의 정사 장면을 촬영할 때, 밀실 속 수연(조여정)의 존재로 인한 감정의 부딪힘이 있었을까.

    "실제로 밀실 안에서 조여정 배우가 있었던 장면도 있었고, 박지현 배우와 둘만 촬영하는 장면도 있었어요. 조여정 배우가 나오는 장면도 필요했었거든요. 그래도 의식하지 않고 연기했죠. 의식해서도 안 됐고요. 미주는 알고 있었지만, 성진은 오롯이 집중하고 있던 상황이기에 상황에만 집중했습니다."

  • 영화 '히든페이스'스틸컷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 영화 '히든페이스'스틸컷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Q. 결국 세 사람은 가장 욕망하던 하나씩을 갖고,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이어가게 됐다. 성진을 연기한 배우로서 결말에 관한 생각이 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성진이 제일 피해자 같아요. (웃음) '난, 뭐야' 싶고요. 그렇게 발버둥 치며 살아왔는데, 두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나 싶고요. 감독님과 촬영 현장에서도 그런 농담을 했죠."

    Q. 과거 자신의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을 '인간 중독'으로 꼽기도 했다. 김대우 감독과 두 번째 만나게 됐는데, 왜 '배우 송승헌'을 찾는지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음란서생', '방자전', '정사' 등 감독님의 전작을 너무 재미있게 봤었어요. 원작 '춘향전'도 감독님을 통해 약간 비틀어 풍자적인 재미 요소를 가미하는 것을 너무 잘하시잖아요. 이번에도 그랬고요. 촬영 내내 감사했습니다. '인간 중독' 속 김진평이 제 전환점이 된 인물이라고 이야기해 왔는데요. 그 작품 이전에는 송승헌은 멋지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고, 정의롭고, 바른 이미지였거든요. 그런데 김진평은 부하의 아내를 사랑하는, 불륜을 저지르는 인물이에요. 노출도 노출이지만, 제가 캐릭터를 선택할 때 더 폭이 넓어졌어요. '이런 재미가 있구나'라는 것을 찾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해낼 수 있잖아요. 일탈하는 역할을 한 거죠."

  •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성진 역으로 열연한 배우 송승헌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성진 역으로 열연한 배우 송승헌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Q. 앞서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서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데 도움을 받았던 팬의 편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현재 배우로서 만족감을 찾았나.

    "배우로 만족은 평생 못 할 것 같아요.(웃음) 편지는 정말 답이 많이 되었습니다. 데뷔 전에 저는 TV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 줄 알았어요. 다른 세상 이야기였던 것이죠. 그런데 갑작스럽게 시트콤에서 연기를 하게 되고, 1, 2주 만에 방송에 나가게 됐거든요.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변하게 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자고 일어나니, 사람들이 알아보고 박수쳐주니까 '이게 뭐지?' 생각하며 붕 떠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20대가 지나갔어요. 준비한 게 아니라, 하다 보니 첫 직업이 연기자가 된 거예요. 어릴 때부터 준비한 것도 아니니, 얼마나 못했겠어요. '해야 해'라는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했죠. 그렇게 지내다 편지를 받게 된 거예요. 나는 별생각 없이 일로 한 건데, 누군가는 크게 받아들여 준 거죠.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던 30대 초·중반이었던 것 같아요. '쉽게 생각하면 안 되겠다'라고 느꼈어요. 나는 일로만 생각하던 작품이 누군가에는 감동을 준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좀 더 진실되게, 열심히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했습니다. 되게 소중한 편지였죠."

    Q. '히든 페이스'를 통해 욕망에 사로잡힌 배우 송승헌의 '히든 페이스'를 꺼냈다. 대중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을까.

    "성진은 제가 해보지 못했던 캐릭터이고, 현실과 발 닿아있는 캐릭터였잖아요. 박수받을 캐릭터는 아니죠. 백마 탄 왕자님처럼 겉모습은 멋져 보일 수 있지만 욕망과 콤플렉스 덩어리인 인물이죠. 제가 연기했지만, 제가 봐도 성진은 '내 과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배우 송승헌이 이렇게 의뭉스러운 캐릭터는 처음인데, 그런 캐릭터도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으면 좋겠습니다."

  •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성진 역으로 열연한 배우 송승헌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성진 역으로 열연한 배우 송승헌 / 사진 :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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