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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노인과 사슴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4.12.25 06:00
  • 크리스마스다.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연말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날이다. 어린이에게는 꿈, 젊은이에게는 낭만, 중년에게는 여유, 노인에게는 추억이 함께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평화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독일군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함께 음식을 나누고, 전사자의 장례를 치르고, 캐럴을 부르는 등 전쟁을 중단했다고 한다. 어느 해보다 올해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가 상징하는 평화의 소중함이 무겁게 다가온다.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나라 전통 그림에도 사슴을 탄 노인이 등장했다고 한다. 어떤 사연의 그림이었을까?

  • (왼쪽)<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 작자미상,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오른쪽)<신선도(神仙圖)>-수성(壽星), 김홍도, 출처=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 (왼쪽)<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 작자미상,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오른쪽)<신선도(神仙圖)>-수성(壽星), 김홍도, 출처=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두 그림의 주인공은 노인과 사슴이다. 마치 동양의 산타클로스와 루돌프처럼 보인다. 저 노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는 바로 수성(壽星) 노인으로, 중국 민간에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는 남극성(南極星)이 신선으로 변신한 모습이라고 한다. 조선에서도 이러한 신선 사상의 영향으로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로 <수성노인> 그림이 유행하였다.

    수성노인이 그림과 같이 이마가 솟은 모습으로 정착된 것은 중국 송나라 이후라고 한다. 특히 명나라 오승은(吴承恩)의 소설 《서유기(西游记)》에 “수성노인은 손에 영지(靈芝)를 들고, 머리가 길고 귀는 크며 키가 작다”고 하였으며, 명나라 풍몽룡(冯梦龙)이 편찬한 소설집 《경세통언(警世通言)》에는 “수성노인은 흰 수염에 지팡이를 들고, 이마가 솟아 있다. 항상 사슴, 학, 복숭아 등과 같이 그려져 장수를 상징한다”고 하였다.

    왼쪽 그림을 보자. 이마가 산처럼 솟은 노인이 사슴을 탄 채 복숭아를 들고 있고, 그 뒤로 지팡이를 든 동자가 따르고 있다. 지팡이 윗부분은 목숨 수(壽) 형상이고, 불로초라 불리는 영지가 장식품으로 달려 있다.

    오른쪽 그림을 보자. 역시 생김새가 비슷한 삼등신 노인이 복숭아를 들고 있고, 허리에 찬 조롱박에는 불로초 영지가 달려 있다.

    두 그림 모두 십장생(十長生) 중 하나인 사슴이 노인과 같은 크기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두 그림은 모두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후기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정월(正月) 원일(元日)에 대한 풍속의 기록이 있다.

    “도화서(圖畵署)에서는 수성,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 임금에게 바치고 또 서로 선물하는데, 이것을 세화(歲畫)라고 하며 송축(頌祝)하는 뜻을 나타낸다.” “왕실과 양반가의 문짝에도 모두 이 그림들을 붙이고 여염집에서도 모두 이를 따라 했다.”고 하였다.

    이것은 새해를 맞이하여 소망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기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소망 중에 으뜸은 예나 지금이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그래서 장수를 기원하는 <수성노인도>가 유행하였다.

    크리스마스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탄 산타클로스가 나누어주는 선물이다. 창가에 양말을 걸어놓고 선물을 기다리다 잠든 모든 어린이에게 그 꿈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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