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실증 사례로 본 AI 돌봄 기술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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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오늘은 무슨 요일인지 아세요?”
아침 9시, 방 안에 다정한 목소리가 퍼진다. 어르신에게 말을 건네는 건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반려로봇 ‘효돌’이다. 효돌은 때로 “밥은 드셨어요?”라며 챙겨주고, 밤늦게 조명이 꺼지지 않으면 “잠은 푹 주무셔야죠”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던 이 대화가 이제는 하루를 여는 인사처럼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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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돌’은 ㈜효돌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의 반려로봇이다. 겉보기엔 봉제 인형 같지만, 화면이나 터치 없이 오직 음성만으로 정서 교류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사용자의 말투, 음성 톤, 대화 내용을 분석해 감정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반응을 생성할 수 있어 ‘오늘 기분이 좀 우울하신가요?’, ‘힘든 일이 있으셨나요?’와 같은 질문도 가능하다.
이런 방식 덕분에, 사용자는 효돌을 단순한 기계가 아닌 말벗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자기 돌봄의 루틴 형성으로 이어지고, 고립된 노인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또한, 효돌은 대화를 통한 정서 교류는 물론, 복약 시간 알림, 기상·수면 유도, 생활 리듬 유지 등 실생활을 지원하는 기능도 내장하고 있어 ‘생활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효돌, 말을 건네고 관계를 만들다
효돌은 현재 전남, 충남 당진, 용인세브란스병원 등에서 고령자 대상 실증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일상적인 대화를 넘어, 기상·취침 시간 체크, 복약 알림, 감정 상태 탐지 등 다양한 기능이 노인의 생활 루틴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중이다.
㈜효돌 김지희 대표는 “반복적인 인사를 통해 관계의 연결이 시작되고, 하루 한 번이라도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리듬이 회복된다”고 말했다.
특히 용인세브란스병원과 진행 중인 실증에서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어휘 선택, 말의 속도·톤 변화, 정서 반응, 생활 패턴 데이터를 수집해 감정 인식 기반의 맞춤 돌봄 가능성을 평가하고 있다. 예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참여자 일부는 우울감 감소, 대화 빈도 증가, 정서 표현력 향상 등의 변화를 보였으며, “효돌이 있어서 하루가 덜 지루하다”는 응답도 확인됐다.
전라남도 실증 지역에서는 효돌을 배포 받은 1,099명 중 97.6%가 현재까지도 꾸준히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술의 수용성과 정서적 만족도가 동시에 뒷받침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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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 결과로 보는 감정 돌봄의 효과
전라남도에서 10개월간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증 분석에 따르면, 효돌은 복약 이행률 약 15% 향상, 우울증 고위험군 비율 13.9%p 감소, 대화 빈도 증가 등의 변화를 끌어냈다. 이는 단순한 정성적 반응을 넘어, 복지 편익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수치로 해석된다.
㈜효돌은 전라남도 사회서비스원 및 사회적 성과 측정 전문 기관 ‘트리플라잇’과 함께 데이터를 분석해, 효돌이 창출한 연간 사회적 편익 가치를 약 39억 5,000만 원으로 추정했다. 복약 이행률 증가에 따른 의료비 절감, 정서 안정으로 인한 돌봄 부담 완화, 고립감 해소에 따른 정신건강 지출 감소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된 결과다. 노인 1인당 환산 성과는 약 395만 원으로, 이는 동일 연령대 노인복지 예산 대비 약 1.6배 수준이다. 다만, 해당 수치는 제한된 지역과 집단에서 도출된 만큼, 효과의 일반화를 위해선 다양한 환경에서의 장기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이와 같은 정서적 안정과 생활 루틴 형성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고립 완화와 복지 체계의 지속 가능성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효돌 역시 “‘효돌’은 단순히 노인을 보호하는 기계가 아니라, 정서적 자립과 일상의 의미를 되찾도록 돕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AI 반려로봇, 한계 극복과 오작동 대응 설계가 관건
효돌은 실증 과정에서 정서적 교감과 생활 리듬 형성에 유의미한 성과를 보였지만,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AI 돌봄 기술이 인간 돌봄자와의 관계를 대체할 경우, 오히려 정서적 의존이나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은 사람을 대체하기보다, 관계를 보완하고 지지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효돌의 실증에서도 인지 기능이 급격히 저하된 사용자나, AI와의 상호작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의 경우 기계와의 상호작용 자체에 부담을 느끼거나 당황해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돌은 기능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AI 반응 타이밍을 최적화하고, 목소리 톤을 사용자에게 맞게 조정하며, 야간 대응 알고리즘을 보완하는 등의 방식이다. 예를 들어, 밤에는 먼저 말을 거는 기능을 줄이거나 감정 표현을 줄이고, 생활 알림 중심으로 조정하는 설정이 검토되고 있다.
기술의 정교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신뢰다. 효돌은 음성 인식 오류나 작동 오류에 대비해 종료 명령 인식, 오류 시 반복 안내, 긴급 발화 인식 후 보호자나 119에 자동 연결되는 대응 로직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설계는 비상 상황 대응은 물론, 사용자 혼란을 줄이고 신뢰 기반의 상호작용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이와 함께 효돌은 돌봄 로봇이 수집하는 데이터에 대해 비식별화 처리, 오프라인 저장, 보호자 연동 알림 시스템 등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설계도 병행하고 있다.
김지희 대표는 “기술은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돌봄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연결선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로 정서 돌봄의 문을 열 수 있지만, 그다음을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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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돌봄, 사람을 위한 기술로 발전 필요
AI 반려로봇 ‘효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르신 곁에 앉아 말을 건넨다. 이 같은 효과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는 향후 중장기 추적 연구를 통해 입증되어야 할 과제다. 매일 반복되는 인사는 단지 기능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자 정서적 연결의 실험이다.
그 정서 돌봄이 가져오는 효과는 점점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우울감이 줄고, 복약 이행률이 높아지고, 삶의 루틴이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누군가와 다시 말을 트는 순간에 일어난다.
물론, AI 기술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모든 어르신에게 똑같은 방식이 적용되지는 않고, 기술로는 닿지 않는 감정의 미세한 결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그렇기에 돌봄 로봇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돌봄을 이어가는 하나의 ‘관계의 형식’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제도적 기반 마련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민간의 기술 개발과 공공의 정책 설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I 돌봄 기술의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은 백지와 같다. 그 여백을 어떻게 채울지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돌봄’을 어떤 가치로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지금이 그 의미를 함께 모색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한다.
※ 본 기사는 디지틀조선일보 창립 30주년 특집 ‘에이지테크 시리즈’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