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헬스

웨어러블, 병원 밖 건강의 표준이 되다

기사입력 2025.05.22 06:00
에이지테크 Part 2-1
일상으로 확산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 손목에 찬 시계가 심장마비를 예측하고, 손가락에 낀 반지로 수면무호흡증을 감지한다. 이제는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내 몸 착용한 작은 기기로 생체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해석해 건강 상태를 관리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웨어러블 기기는 사용자의 신체 변화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해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게 돕는 전자기기다. 주로 심박수, 혈압, 수면 패턴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사용자가 스스로 건강 상태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사용된다. 

  • 스마트워치, 스마트링, 심전도 패치, 스마트 의류 등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가 일상 속 건강 관리를 지원한다. /이미지=OpenAI DALL·E 기반 자체 생성
    ▲ 스마트워치, 스마트링, 심전도 패치, 스마트 의류 등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가 일상 속 건강 관리를 지원한다. /이미지=OpenAI DALL·E 기반 자체 생성

    가장 보편적인 손목형 스마트워치부터 24시간 혈압을 측정하는 스마트링, 심전도 분석이나 연속 혈당 측정이 가능한 피부 부착형 패치, 호흡 패턴을 감지하는 스마트 의류까지 웨어러블 기기의 형태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으며, 응급 상황 모니터링, 재활치료, 고령자 낙상 예방 등 활용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초기 웨어러블 기술은 운동과 피트니스 중심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했지만, 최근에는 만성질환 관리 등 의료 목적에서도 활용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제 웨어러블은 병원 중심의 건강 정보 수집을 넘어서, 일상 속 자율적인 건강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전 세대를 위한 기술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웨어러블 기기 보유율은 전체 인구의 25.9%로, 2019년 대비 약 7배로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50.6%로 가장 높았으며, 50대는 19%, 60대는 7.6%로 집계됐다.

    물론 웨어러블이 만능은 아니다. 기술이 확산할수록 데이터 과잉 해석이나 불필요한 의료 이용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도 함께 대두되고 있다. 그럼에도 웨어러블 기기는 고령화 사회의 진전과 맞물려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추세다.

    2024년 12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은 단순한 인구구조 변화를 넘어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설계를 요구받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00억 원의 예산을 웨어러블을 포함한 에이지테크 분야의 연구개발과 실증사업 지원에 편성했다. 24시간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웨어러블 기기가 고령화 사회의 주요 위험 요소인 만성질환 조기 발견과 예방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심장협회(AHA) 보고에 따르면, 스마트워치 사용자 중 약 17%가 심박 이상 알림을 계기로 병원을 방문했고, 이 중 일부는 심방세동과 같은 심장 질환을 조기에 진단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웨어러블이 바꾸는 건강 관리 패러다임

    웨어러블 기술은 건강 관리의 방식과 흐름을 근본적으로 뒤바꾸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닌, 의료와 건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완전히 재정의하는 ‘패러다임 시프트’다.

    이제 건강 정보를 병원에서만 획득하던 시대는 끝났다. 스마트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사용자는 집에서도 자신의 혈압과 심박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이 데이터는 의료진과 즉시 공유되어 조기 대응이 가능하게 돕는다. 실제로 최근 국내 다수의 병원에서 스마트워치를 활용한 고혈압 관리 연구가 시도되고 있으며, 웨어러블 기기 사용자가 비사용자보다 약물 복용 순응도(처방받은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비율)와 혈압 조절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는 웨어러블을 활용한 실시간 데이터 공유가 고혈압성 합병증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자각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생체 신호 변화를 감지해 건강 이상을 조기에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은, 웨어러블 기술이 건강 관리 방식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로 평가된다. 웨어러블 기기가 생체 신호를 자동으로 기록하고, 이상 징후를 분석해 사용자에게 알려줌에 따라 주관적 증상 보고에 의존하던 건강 관리 방식은 객관적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되고 있다.

    실제로 해외 연구에서는 스마트링을 활용한 수면 데이터 분석이 수면무호흡증 조기 진단에 기여한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특히 미국 UCSF(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캠퍼스) 연구진은 오우라(Oura) 스마트링이 수면 중 산소포화도 및 심박수 변화를 포착해, 수면무호흡증의 위험 신호를 조기에 감지할 수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데이터는 병원, 의료진, 디지털 플랫폼 간 상호 연동되어 맞춤형 진료와 예방 중심의 건강 관리를 실현한다. /이미지=OpenAI DALL·E 기반 자체 생성
    ▲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데이터는 병원, 의료진, 디지털 플랫폼 간 상호 연동되어 맞춤형 진료와 예방 중심의 건강 관리를 실현한다. /이미지=OpenAI DALL·E 기반 자체 생성

    웨어러블 기기는 건강 관리의 중심축을 치료에서 예방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특히, 조기 발견과 생활 속 관리를 통해 만성질환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점에서 웨어러블의 가치는 고령층에 더욱 부각된다. 2023년 인천시 부평구는 만성질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스마트워치를 활용한 건강관리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참여자는 주기적으로 혈압과 심박수를 측정하고, 이상 수치가 확인될 경우 보건소 전문 인력이 건강 상담과 병원 연계를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인천시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고혈압 등 만성질환의 조기 발견과 관리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고됐다.

    이렇듯 웨어러블은 건강 관리 방식을 병원에서 일상으로, 증상에서 데이터로, 치료에서 예방으로 변화시키며, 의료 서비스의 제공 방식뿐만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갖는 책임감과 주도권까지 재정의하고 있다. 웨어러블 기술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새로운 건강 관리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병원과 연동되는 디지털 헬스 시스템

    웨어러블 기기의 확산은 병원 시스템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의료기관에서는 단순한 건강 데이터 수집을 넘어, 이를 실시간으로 받아보고 진료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웨어러블 기반 디지털 헬스 기술의 가능성을 검증하는 실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24년에는 질병관리청 과제로 정신건강 모니터링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으며, 암 환자 대상 스마트폰 건강관리 앱의 효과 검증 연구도 수행 중이다. 이러한 실증 프로젝트는 병원 중심의 통합 플랫폼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탐색하는 초기 단계로, 웨어러블 기기의 의료 현장 연계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해외에서도 미국의 보험사인 존 행콕(John Hancock)을 포함한 일부 보험사가 웨어러블 활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험료 할인이나 연간 최대 1,000달러 수준의 리워드를 제공하며, 가입자의 건강 행동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웨어러블 기술이 단순한 건강 모니터링을 넘어, 보험 산업과 연계되어 건강한 생활을 유도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불필요한 검사를 줄여 의료비 감소를 돕고, 인공지능(AI) 기반 위험 예측 모델과 연계하여 의료진의 정밀한 진료 판단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미국 의료정보관리협회(IHRIM)와 InsurTech 플랫폼 분석에 따르면, 웨어러블 기기 사용자는 의료비가 약 42.1% 줄고, 재입원율도 43% 낮아지는 효과를 보였다. 보험료는 최대 25%까지 할인됐다. /이미지=OpenAI DALL·E 기반 자체 생성
    ▲ 미국 의료정보관리협회(IHRIM)와 InsurTech 플랫폼 분석에 따르면, 웨어러블 기기 사용자는 의료비가 약 42.1% 줄고, 재입원율도 43% 낮아지는 효과를 보였다. 보험료는 최대 25%까지 할인됐다. /이미지=OpenAI DALL·E 기반 자체 생성

    웨어러블, 아직 넘지 못한 한계

    웨어러블 기기의 발전은 의료와 건강 관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도 존재한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한계는 데이터의 정확성과 신뢰도다. 일부 웨어러블 기기는 심박수나 수면 패턴과 같은 기본적인 생체 신호는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하지만, 혈압이나 산소포화도와 같은 정밀 데이터는 아직 의료기기 수준의 정밀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일부 기능은 한국 식약처나 미국 FDA의 인증을 받은 바 있다. 예를 들어, 애플워치 시리즈 4 이후 모델은 미국 FDA로부터 심방세동 조기 감지를 위한 심전도(ECG) 기능에 대해 의료기기 승인을 받았고, 삼성 갤럭시워치의 혈압 측정 기능은 한국 식약처의 의료기기 인증을 획득했다. 다만 전반적인 생체 데이터의 신뢰도는 기기 간 차이가 있어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법적·제도적 공백도 문제다. 웨어러블 기기로 수집한 데이터를 진료나 보험 적용의 근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의 정비가 필요하다. 현재는 대부분의 웨어러블 기기가 ‘비의료기기’로 분류되어 있어, 의료 현장에서 보조적 수단 이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 문제도 지속적인 우려를 낳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가 수집하는 생체 데이터는 민감정보에 해당해 유출 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암호화 수준이나 사용자 동의 절차가 기기나 서비스 제공자에 따라 달라 표준화된 보안 체계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디지털 격차의 해소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기술 발전의 수혜가 특정 계층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령층과 정보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헬스 리터러시(건강 관련 기술과 정보를 이해하고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서울시와 인천시 등 일부 지자체가 웨어러블 기기 사용법을 안내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스마트워치 대여 사업을 시범 운영 중인데, 이러한 실천 사례는 향후 전국적 확산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웨어러블 알림이 과잉진단이나 불필요한 의료 이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사용자 교육과 의료진 안내 체계 구축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진짜 의료기기가 되기 위한 조건

    현재 웨어러블 시장은 심전도, 혈압 측정, 수면 분석 등 다양한 헬스 기능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페리컬 인사이트(Spherical Insights)에 따르면, 전 세계 웨어러블 의료기기 시장은 2023년 약 399억 달러(약 52조 원) 규모로 평가되며, 2033년까지 1,148억 달러(약 150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연평균 성장률(CAGR) 약 11.15%에 해당하며, 국내 시장 역시 이와 유사한 성장 흐름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글로벌 시장과의 연계, 보험 연계 서비스 확대, 의료기기 인증(정부가 해당 기기가 의료적 효능과 안전성을 갖췄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절차) 확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향후 시장 확대 가능성도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웨어러블 기술이 제시한 가능성을 진정한 의료 혁신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술 외적인 과제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정책적 기반 확대가 필요하다. 웨어러블 데이터가 진료와 예방, 보험 체계에서 실질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인증 체계와 데이터 활용 기준이 보다 정교하게 마련돼야 한다. 단순한 측정 장치가 아닌, 의료 시스템에서 신뢰받는 데이터 출처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둘째, 산업 전반의 표준화와 상호운용성(기기와 시스템 간 데이터를 문제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호환성) 확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다양한 기기와 플랫폼 간 연동이 원활해야만 병원, 보험사, 사용자 간 통합 건강관리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 산업계, 의료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셋째, 사용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동기 설계도 중요하다. 단순 측정이 아닌 행동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보상이나 인사이트가 제공되어야 하며, 특히 고령층 등 기술 약자를 위한 ‘쉬운 기술’, ‘친근한 경험’ 디자인이 병행돼야 한다.

    결국 웨어러블은 기술이 아니라 문화다. 건강을 병원 밖으로 확장하고, 데이터를 일상의 언어로 바꾸는 새로운 생활 방식의 시작이다. 진정한 변화는 기기의 사양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연결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음 편에서는, 일상 속 웨어러블 기기가 어떻게 ‘의료기기’로 진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병원과 연계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문턱을 넘어야 하는지를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또한, 국내 기업의 기술 개발 노력과 의료기기 인증 절차, 데이터 신뢰성 확보 과정을 살펴보며, 이를 기반으로 병원과의 연계 가능성과 실제 의료 현장에서의 적용 사례를 다루고자 한다.

    ※ 본 기사는 디지틀조선일보 창립 30주년 특집 ‘에이지테크 시리즈’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