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인구 절벽 시대] 아이는 낳으면 알아서 자란다?... “양육비용, 돌봄 등 걱정이 태산인데”

기사입력 2023.09.25 06:00
  • 최근 국내 합산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 15년간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8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효과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정책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대책은 무엇이고, 어떤 부분에서 비판 받는 걸까? 정부가 제시한 주요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이미지 제공=픽사베이
    ▲ 이미지 제공=픽사베이

    “아이는 낳으면 알아서 자란다”는 말은 이제 옛 말로 통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소요되는 막대한 양육 비용과 양육자의 경력 단절 우려 등, 낳기만 하면 알아서 자란다고 하기에는 아이 한 명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너무도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 비중은 2018년 이후부터 꾸준히 증가해 2022년 기준 53.5%에 달했다.

    이에 정부는 육아 및 돌봄을 위한 예산을 확대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내년도 예산 15조 4천억 원 중 약 41%가 ‘돌봄·교육’ 분야(1조 3246억 원), ‘일·육아 병행’ 분야(2조 1531억 원), ‘양육비용 부담 경감’ 분야(2조 8887억 원)에 편성됐다. 또한, 기존에 지원하고 있던 아동수당이나 첫만남이용권 제도는 그대로 유지될 예정이다.

    ‘양육 비용’ 지원

    정부는 ‘건전 재정’을 강조하며 현금 지원 정책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양육비 지원에 있어서는 현금 지원 예산을 확대하는 추세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막대한 양육 비용으로 인한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 출산을 장려한다는 의도다.

    정부는 올해 초 양육비 지원을 위해 ‘부모급여’를 신설했다. 부모급여는 출산 또는 양육으로 인한 소득 감소를 보전하고, 양육자가 가정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장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을 실현한 제도로 만 0~1세 아동을 둔 부모에게 매달 지급된다. 내년에는 지원 대상과 금액이 대폭 강화되어 만 0세 기준 월 70만 원에서 월 100만 원으로, 만 1세 기준 월 35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대폭 인상됐다.

    그러나 부모급여가 이미 급감한 출산율 증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부모급여는 자녀의 생에 초기에 집중된 경향이 있어, 기존의 현금 지원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단순한 현금성 지원 제도만으로는 출산율 하락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익히 겪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지원의 연속성이나 수혜자의 체감도가 점차 감소해 양육비용에 대한 국가적 지속 지원을 위한 적정 수혜 연령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7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인구위기 대응을 위한 저출산 정책 및 재정사업 분석’에 따르면, 실제 자녀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양육 비용(어린이집·유치원 이용료, 공교육비, 사교육비, 자녀 돌봄비용, 의복, 용돈, 의료, 교통비 등 모두 포함)은 영유아 시기 이후에 점차 늘어났다. 영유아의 경우 월평균 60.6만 원이지만 초등 시기 78.5만 원, 중·고등 91.9만 원 등으로 지출이 커진다. 사교육비를 제외하더라도 초등시기의 경우 1인당 36만 원, 중고등 41만 원 수준으로 발생하는 양육비는 여전히 가구의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이밖에 부동산 상승으로 인한 주거 문제,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 등을 비롯해 여성에게 과중 되는 가정 내 돌봄 부담 등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단기적 지원 정책만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일·가정 양립’ 지원

    가정마다 실질적인 ‘아이 돌봄’을 수행할 양육자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출산을 망설이는 큰 이유로 작용한다. 통계청이 22일 공개한 '2022년 상반기 기혼여성의 고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15~54세 기혼여성 중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직장을 그만둔 사유는 ‘육아’가 42.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정부는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육아휴직 급여기간을 12개월에서 18개월로 확대하고, 부모가 공동 휴직 시 급여 인센티브를 월 최대 450만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일터에서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전담 신고센터를 신설하고, 근로감독도 확대할 예정이다. 또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부모가 경력단절 없이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만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대상을 현행 만 8세까지에서 만 12세까지로 높이고, 기간도 최대 24개월에서 36개월까지로 확대했다.

    아울러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아이를 돌봐주고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늘봄학교’도 오는 2학기부터 전국 214개교에서 459개교로 두 배 이상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내년 2학기부터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운영한다는 목표로 시도교육청과 협의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제도도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일고 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와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된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는 극히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다.

    우선 근로시간단축제도는 현재 사용률이 극히 낮아, 제도가 확대되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근로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 제기된다. 고용노동부의 ‘2021년 일·가정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용 실적이 있는 사업체 비율은 7.4%에 불과했으며, 지난해 제도 사용자 수는 1만 9466명으로 집계됐다.

  • 이미지 제공=통계청
    ▲ 이미지 제공=통계청

    육아휴직 제도는 “있어도 못 쓴다”는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회사에서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출생아 100명당 출생아 부모 중 육아휴직자 수는 29.3명에 그쳤다. 

    남성의 육아휴직 비율이 여성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현행 육아휴직 제도는 부모가 각각 1년씩 사용할 수 있으며, 배우자가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간은 소멸하는 방식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6일 발표한 ‘2023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근로자는 3만 7884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 약 30%에 그쳤다. 이러한 현상은 가정 내 양육 부담이 여성에게 치중되어 있는 사회 분위기와 육아휴직 급여액의 현실적인 소득대체율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가 돌봄정책의 핵심으로 제시한 ‘늘봄학교’는 교육부가 전국 확산 시기를 당초 2025년에서 1년 앞당기도록 시도교육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에 나서면서 교원단체의 반발을 일으켰다. 

    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 8월 2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늘봄학교 확대 정책을 폐기하고 현장의견을 반영할 것을 주장했다. 학교는 돌봄기관이 아닌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육기관으로서, 돌봄은 학교의 책임이 아닌 가정과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이 요지다.

    전교조는 “늘봄학교는 학생들의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며, 교육적으로도 옳지 않다”며, “학생들을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학교에 가둬놓는 정책은 발달 단계상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학대에 가깝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