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목련과 모란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5.03.12 09:27
  • 봄이다.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나무들이 꽃 피울 채비를 하고 있다. 요즘은 전과 달리 봄은 짧고 여름은 길다. 그래서 그런지 나무들은 깜박 졸다가 자랑할 시기라도 놓칠세라 한꺼번에 꽃을 피워 눈과 마음을 황홀하게 한다. 봄을 맞아 순서대로 피던 꽃이 서로 먼저 피겠다고 아우성치는 듯하다. 

    전통 그림 중에 꽃이 주인공인 그림이 많다. 그리고 그림 속의 꽃들은 곤충이나 새 등과 함께 그려져 그림의 의미가 다양하게 확장된다.

    이른 봄 우아한 목련이 피고, 농익은 봄에 화려한 모란이 피고, 늦은 봄이면 향기로운 해당화가 피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그림 한 폭에 목련, 모란, 해당화가 함께 활짝 피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왼쪽)<옥당부귀(玉堂富貴)> 장신(張莘)/출처=바이두, (오른쪽)<꽃과 새>, 심사정(沈師正) /출처=국립중앙박물관
    ▲ (왼쪽)<옥당부귀(玉堂富貴)> 장신(張莘)/출처=바이두, (오른쪽)<꽃과 새>, 심사정(沈師正)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그림 <옥당부귀(玉堂富貴)>를 보자. 여백이 미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그림의 위에서부터 아래로 목련, 모란, 해당화가 활짝 피어 있다. 봄날을 가득 채운 꽃들의 향연이 자연의 이치와는 어긋나지만,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그림의 작가는 과연 자연의 이치를 몰랐을까? 그럴 리 없다. 누구보다 예민한 눈으로 자연을 관찰했을 예술가들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그림을 그린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목련(木蓮)은 나무에 피는 연꽃이다. 꽃이 옥(玉)과 같아 ‘옥련(玉蓮)’이라고도 하고, 난(蘭)꽃을 닮아 ‘옥란(玉蘭)’이라고도 한다. 연꽃을 축소하면 목련이고, 난꽃을 확대하면 목련이 된다는 것이니, 목련으로서는 그리 달가운 이름이 아니다. 목련은 옥련 또는 옥란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옥당(玉堂)을 상징한다. 옥당이란 옛날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과 더불어 삼사(三司) 중 하나였던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이다. 홍문관의 관원은 요직 중의 요직으로 조선시대 정승과 판서 중에 홍문관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옥당에 들어간다는 것은 출세가 보장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해당화(海棠花)의 ‘당(棠)’은 집(관공서) ‘당(堂)’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해당화는 목련과 함께 그려져 옥당(玉堂)의 의미를 확실하게 해준다. 경우에 따라 해당화를 그리지 않고 목련만을 그리기도 하는데, 목련 하나만으로도 옥당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모란(牧丹)은 부귀(富貴)를 상징한다.

    그래서 목련, 해당화, 모란을 함께 그리면 <옥당부귀도(玉堂富貴圖)>가 된다. 이 그림의 뜻은 “관직에 나가 승승장구하고 부귀해지라”는 축원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옥당부귀도>에 활짝 피어 있는 꽃송이마다 정당한 방법으로 관직에 나가 나라를 위해 공명정대하게 일해야만 자신의 인생도 활짝 필 수 있다는 교훈이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관련뉴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