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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의 눈빛이 섬뜩하다"…우민호 감독, 역사에서 이어진 '하얼빈' (스포有) [인터뷰]

기사입력 2025.01.04.00:01
  • 영화 '하얼빈'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 / 사진 : CJ ENM
    ▲ 영화 '하얼빈'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 / 사진 : CJ ENM

    * 해당 인터뷰에는 '하얼빈'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조선이란 나라는 수백 년간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


    영화 '하얼빈' 메인 예고편에 등장한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의 말이다. 영화 '하얼빈'이 기대작으로 등극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으로 한류스타로 우뚝 선 현빈이 안중근 장군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부터 영화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로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해 온 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까지. 그리고 개봉한 '하얼빈'을 마주했을 때, 가장 가슴을 울린 것은 역시 '사람들'이었다. '영웅들'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처럼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하는 민초들이 현실과 맞물려 영화의 온도를 높였다.

  •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Q. 안중근 장군을 그린 영화는 처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왜 안중근 장군이었나.

    "서점에서 안중근 장군의 자서전을 읽게 됐다. 거사를 치른 당시, 그분이 30세였다. 놀라웠다. 그렇게 젊다니. 익히 들었지만, 저도 그분을 몰랐다. 신아산 전투에서 그런 결정을 내려서 패장으로 고통받았다. 내가 알고 있는 '영웅'이 아니었다. 이분도 처음 '실패자'였구나, 그 점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영화 속에도 내레이션으로 나오지만, '10년이든, 100년이든 목적을 갖고 끝까지 가야 한다, 싸워야 한다'라는 안중근 장군의 말씀이 개인적으로 제 삶에 크게 다가왔다. 위로도 되고, 힘도 확 됐다. 이 마음을 '관객분들도 느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제작사 하이브 미디어코프가 '하얼빈' 대본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대표님께 '감독을 구했나?'라고 연락했다. 이기철 시나리오 작가가 쓰신 대본을 받았다. 그 대본은 케이퍼 무비에 가까운 오락 영화였다. 그런데 저는 묵직하게 찍고 싶었다. 제작사와 논의해서 새로 (시나리오를) 썼다. 다른 가공의 인물이나 사건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오락영화처럼 담을 수 있지만, 모두가 아는 안중근 장군의 이야기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

    Q. 직접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순간은 언제였을까.

    "대본이 안 풀렸다. 그때 시대의 공기를 잘 모르겠더라. '이 공기를 어떻게 담아야 하지?'라고 고민하고 있을 때, 아내가 '좀 쉬면서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어보라'라고 조언해 줬다. '토지'에 그 시대가 담겨있다. 간도 지역에서 독립군도 등장한다. 그 책을 보며 가닥을 잡았다. '우리 민족의 생선은 모질구나, 짓밟혀도 사는구나'라는 점을 느꼈다. '하얼빈'이라는 영화 역시 '우리가 짓밟히고, 침략당하고, 또 짓밟혀도,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며 나아가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다고 생각했다."

  •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Q. 그런 배경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우리 민족을 언급한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의 대사가 등장하는 걸까.

    "조사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이토 히로부미가 한 말을 발견했고, 착안했다. 초대 통감으로 총독부에 나갈 때, 마차를 타고 가면서 '여기 왕과 유생들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저 저잣거리 민초들의 눈빛, 내 마차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서늘하고 섬뜩하다'라고 말했다. 거기에서 착안해서 쓰게 된 거다."

    Q. 전투 장면이 초반에 배치되었고, 한 발자국 가까이에서 다가서 뒤엉킨 인물들의 감정이 정말 '처절하게' 담겨있었다. 어떤 지점을 의도한 건가.


    "홍경표 촬영 감독님도, 배우분들도 동의하신 거지만, 전 이 프로덕션은 '현장감을 살리자'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대본과 콘티가 있지만, 거기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 실제 모든 장면을 (세트가 아닌) 로케이션에서 찍었다. 통제가 불가능하다. 자연에서 자연광으로 찍었다. 보통 조명을 치는데, 이번 작품은 빛을 기다리면서 찍었다. 신아산 전투는 광주에서 촬영했는데, 많은 눈이 내리는 곳이 아닌데 당시 폭설이 내렸다. 사유지인 어느 목장에서 그 장면을 찍었는데, 처음 갔을 때, 눈이 온 그곳이 너무 아름답더라. 그런데 당시, 다 빼앗긴 땅이었지 않나. 국권, 주권, 땅, 사람, 자유, 나무, 동물, 식물 등 전쟁이 나면 다 파괴되는 거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땅에서 신아산 전투 장면을 통쾌하게 못 찍겠더라. 이겨도 이긴 게 아닌 거다. 그 자체가 비극이었다. 촬영하다 보니 눈이 녹아 진흙으로 배우들의 몸에 뒤엉켰다. 아군과 적군의 구별도 잘 안됐다. '이렇게 아름다운 땅에서 싸움을 하는 이 자체가 비극이구나' 생각했다. 되게 처절하고 찍고 싶었다."

  •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Q. 그러면서도 감정을 강요하지 않았다.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역사물에서 기댈 수 있는 신파적인 요소들은 하고 싶지 않았다. 신파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이 그대로 마음속에 울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더 오래 남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임했다."

    Q. '하얼빈' 속에서도 밀정이 등장한다. 일제의 폭력에 무너지는 인물을 등장시킨 이유도 있을 것 같다. 특히, 그 모습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는다.


    "'밀정'의 존재는 어찌 보면 '하얼빈' 속 유일한 오락적인 요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얼빈' 속 밀정은 예를 들면 '암살'(2015)속 염석진(이정재)과는 다른 인물이다. 염석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변절했지만, '하얼빈' 속에서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좌절하고 꺾일 수밖에 없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살고 싶어서' 밀정이 됐다고 하지만, 이미 자신의 존엄성은 '죽었다'라는 걸 알고 있는 인물이다. 모리(박훈)이 던져준 고기를 먹을 때부터. 그의 정신과 모든 게 무너진 그런 모습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인물. 그걸 알고 있는 안중근은 '다시 한번 기회를 줘보자'라고 생각한 것 같다."

  •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 영화 '하얼빈' 스틸컷 / 사진 : CJ ENM

    Q. 언론시사회에서 영화 '하얼빈'을 "백 번 이상 봤다"고 말했다. 가장 '하얼빈'을 많이 본 사람으로서, 마음에 남는 배우들의 모습이 있었을 것 같다. 몇 장면 꼽아줄 수 있을까.

    "먼저 신아산 전투는 모두의 혼신의 힘이 느껴졌다. 추위에서, 눈 위에서, 얼음 위에서 다 같이 뒹굴었다. 거기에 담긴 '진짜 모습'들이 되게 인상적이었다."

    "우덕순(박정민)과 김상현(조우진)의 술집 대화 장면은 뭔가 서글펐다. 그런데 당시에 정말 그런 고민들을 했을 것 같다. 독립이 뭘까. 제가 들어본 바로는 다들 '독립이 안 될 거다'라고 생각했다더라.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속에 그런 고민들이 담겨있어 되게 좋았다."

    "안중근 장군(현빈)이 마지막 장면에서 걸어오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장면이 좋았다. '하얼빈'은 수미상관(首尾相關, 머리와 꼬리, 처음과 끝이 서로 이어 통함)의 영화다. 처음에는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실패한 자의 모습이다. 자기가 계속 가야 하는지,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거사는 성공했다. 마지막 장면은 다시 우리에게 오시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당부의 말씀을 하신 거다. 사실 알고 계셨을 거다. 저항이 거세어지면, 폭압도 더 거세어진다. 그렇다고 멈추면 안 된다. 싸워야 한다. 싸우는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안중근 장군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었으면, 이 영화는 정말 통쾌하게 끝났을 거다. 사실 그 이후, 더 힘들어졌다. 우리 민족성과 이름까지 다 뺏으려 했다. 그 역사를 알기에 통쾌하게 이 영화를 마무리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현빈의 마지막 얼굴이 그런 표정이다. 승리의 얼굴이 아닌,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얼굴인 거다. 저는 그 장면을 찍으면서 맨 처음 뒷모습은 혼자 유린당한 국토 같은 광활한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정면으로 다가올 때, 안중근 장군의 뒤로 동지들이 모두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지들까지 모두 함께 서 있는 느낌이다. 그것이 인상 깊었다."

  • 영화 '하얼빈'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 / 사진 : CJ ENM
    ▲ 영화 '하얼빈'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 / 사진 : CJ ENM

    Q. '하얼빈'이 개봉하는 시점 역시 묘하다. 12월 3일 비상계엄령 선포와 12월 4일 해제 이후, 거리에 선 국민들의 모습이 영화 '하얼빈'의 온도를 더 높였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제가 '하얼빈'을 처음 잡게 된 것은 개인적인 삶에 다가온 안중근 장군의 말씀 때문이었다. 그런데 삶과 시국의 곁에서 이 영화가 개봉하게 되며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그건 관객분들의 몫이다. 제가 시사회 당시 살짝 감정이 올라왔다. 그럴게 아닌데, 우리 배우들, 스태프들, 그리고 독립운동가분들께 정말 고맙고 죄송하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앞서 본 뉴스 화면이 겹쳐지며 갑자기 감정이 올라오더라.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렇게 많은 시민의 모습을 보면서 자긍심이 느껴졌다. 우리가 격동과 혼란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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