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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광주', 가장 평범한 이들이 선사하는 먹먹한 울림

기사입력 2020.11.03.17:54
  • 뮤지컬 '광주' / 사진: 라이브(주),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 뮤지컬 '광주' / 사진: 라이브(주),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우리의 이름을 잊지 말아 주세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열흘간의 이야기, 가장 보통의 시민들이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40년 전의 그날이 관객 앞에 펼쳐졌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모티브로 한 '광주'는 80년대 광주 시민들이 군부 정권에 대항한 5.18 운동을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작품은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기획된 것으로,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패럴림픽 개·폐막식 연출을 맡은 고선웅 연출가가 합류해 기대를 모았다. 5.18운동을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 '나는 광주에 없었다' 등으로 먹먹한 감동을 안겼던 그가 다시 한번 오월의 광주를 다룬 것. 이번 작품에 극작가로도 참여한 고선웅 연출은 실존 인물 윤상원, 박영숙 씨 등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에 가상의 인물을 더해 드라마틱한 서사를 완성했다.
  • 작품은 신군부세력의 독재 속 민주화를 외친 시민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편의대원 '박한수'의 고뇌를 담았다. 독재자의 죽음을 틈타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는 정권 찬탈을 위한 명분을 얻기 위해 광주를 타깃으로 정한다. 민주화의 불씨가 지펴지던 찰나, 505부대 편의대원들이 광주로 향한다. 사복을 입고 시위대 내부에 잠입, 유언비어를 퍼트리거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조직된 편의대는 광주 시민들 사이에 섞여 평화시위을 폭력시위로 만들려 한다.

    극을 이끄는 '박한수'(테이·민우혁·서은광)는 505부대의 에이스다. 박한수는 "엮으면 엮인다니까"라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데모를 모의하는 시민들 틈에 잠입한다. 한수는 시민군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야학교사 '윤이건'(민영기·김찬호), 광주 시민의 대변인 '정화인'(장은아·정인지), 야학교사 '문수경'(정유지·이봄소리·최지혜) 등 광주 시민들을 만나고, 무고한 이들에게 가해지는 참상을 목격하며 신념의 갈등을 겪는다.
  • '님을 위한 행진곡'은 작품의 큰 틀을 이룬다. 극 초반에는 원곡의 초반부가 담기고, 극이 전개되면서 완곡에 다다르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당대 흔하게 불렸던 '훌라송', '님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이 만든 추모곡 '검은 리본 달았지'로 현실감을 더했다. 트로트풍의 넘버 '마음만은 알아주세요'에서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 시민군을 위해 십시일반 보조금과 식량을 준비해온 주민들의 모습으로 하나 된 광주의 풍경을 담아냈다.

    초연인 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송스루 형식 탓에 전개상 설명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또, 40여 곡의 넘버가 빼곡히 진행되다 보니 집중도가 떨어지는 점, 주요 시점을 담당하는 박한수를 내세우지 못한 서사도 아쉽다. 광주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는 의도는 보이나, 중심 캐릭터가 모호해 전개가 산만하다는 평을 피할 수 없겠다.
  • 그럼에도 '광주'를 봐야 하는 이유는 배우들의 호소력 짙은 가창력과 앙상블일 터다. 그간 비투비 활동뿐 아니라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해온 서은광은 전역 후 더 각 잡힌 모습으로 군인 '박한수'에 걸맞은 연기를 선보였다. 때로는 권력 앞에 선 나약한 인간으로, 때로는 상부의 명을 거역하는 강단 있는 인물로 변화하며 입체적 캐릭터 '한수'를 표현했다.

    연기 시너지는 말할 것도 없다. 서은광은 넘버 '아니, 아니야'에서 동생처럼 여기던 용수의 죽음 후 울분 섞인 보컬로 관중을 매료했고, '왜 나를 흔드는 거냐'에선 505부대 특무대장 '허인구'로 분한 이정렬 배우와 서늘하면서도 강렬한 대립를 보여줬다. 시민군의 주축이 되는 야학교사 '윤이건'을 연기한 민영기는 넘버 '맹세'에서 민주화 운동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캐릭터의 서사를 절절한 감정으로 표현, 관중을 압도했다. 항쟁의 마지막까지 시민을 독려한 '정화인' 역의 장은아, 투철한 신념을 가진 '문수경' 역의 정유지는 여성운동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극을 풍성하게 채웠다.
  • '광주'는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재회하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완성한다. 마치 살풀이를 연상케 하는 거리천사의 안무와 '뻥 뚫리냐. 이제 그만 쉬어'라는 마지막 외침이 먹먹한 울림을 자아냈다.

    오월의 광주에 있던 그들을 기억하게 할 뮤지컬 '광주' 서울 공연은 오는 11월 8일(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상연되며, 11월 14일부터 경기, 부산, 전라, 광주 투어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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