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침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침범'을 본 첫인상은 강렬한 물과 불의 이미지였다. 그 속에서 배우들은 물이 됐고, 불이 됐다. 20년이라는 시간의 경계를 두고, '침범' 속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란히 놓여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죽은 동물을 보고 '또 다른 동물을 키우면 된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친구를 위로하는 대신 입을 막아버리는 남들과 다른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이야기다. 그리고 고독사한 분의 공간을 청소하는 특수청소업체 직원 민(권유리)과 그를 딸처럼 생각하는 현경(신동민), 그리고 두 사람의 사이에 갑자기 들어온 해영(이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각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두 가지 이야기는 하나의 줄기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강하게 관객의 마음에도 '침범'하게 된다. 미술을 공부해 온 김여정, 이정찬 감독은 고립된 순간 영화감독을 꿈꾸었다. 그렇게 각자 쓴 두 편의 시나리오는 하나의 이야기가 됐다. 김여정 감독이 쓴 '나의 아이'가 첫 번째 이야기의 토대가 됐고, 이정찬 감독이 쓴 '손톱'이 두 번째 이야기의 토대가 됐다. 김여정 감독과 이정찬 감독은 11년 지기 친구이다. 그리고 김여정 감독은 이정찬 감독의 절친한 친구이자 '약한 영웅'을 연출한 유수민 감독과 오는 4월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 낸 어마어마하게 남다른 인연은 계속 이어질 거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 편의 작품을 위해 서로 "많이도 양보했고", "치열하게 싸웠고", 서로 "많이도 의지했다." 촬영 현장에서 아빠이자 엄마였던, 물이고 불이었던, 두 친구의 서로 다른 결은 처음 만나보는 '심리 파괴 스릴러' 장르를 가장 근사한 모습으로 완성해 냈다. -
Q. 두 편의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다는 것이 굉장히 독특한 시도다.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각자의 시나리오도 궁금하고,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
이정찬 감독(이하 '이 감독') "김여정 감독의 시나리오가 1부의 토대가 되었고, 제 시나리오가 2부의 토대가 되었다. 워낙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다. 1부의 소현이와 2부의 한 인물이 20년 전후의 모습이지만, 같은 인물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를 합쳐보면, 구성도 더 신선할 것 같고, 캐릭터에 대해 풍부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 2부의 토대가 된 제 시나리오 제목은 '손톱'이었다. 목욕탕 장면에서 보면 손톱이 나온다. 그것이 일상에서 '침범'당하는 단상같이 느껴졌다.
김여정 감독(이하 '김 감독') "제 시나리오 제목은 '나의 아이'였다. 저는 20년 전후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굉장히 임팩트 있고, 시너지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Q. '나의 아이'와 '손톱'이 20년이라는 시간의 경계를 두고 이어져 영화 '침범'이 됐다. 덕분에 '침범'은 인간성이나 모성애 등 다양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두 작품은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궁금한 이유다.
김 감독 "제가 2018년쯤 강아지를 키우게 됐다. 연인의 권유로 키우게 되었는데, 데리고 온 날 버리고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제가 생각한 '반려견 라이프'와 달랐다. '나의 아이'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생각이 났다. 모성애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수영장도 '양수'라는 생각을 하며 굉장히 깊이 이입해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영감이 되어준 반려견은 지금도 제 곁에서 잘 자라고 있다. (웃음)"
이 감독 "사람들이 사이코패스를 이해하기 쉽지 않지 않나. 영화에서도 그런 지점은 장르적인 도구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장르 성을 가져가면서도 좀 더 다른 결로 내면을 보여주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여성형 범죄자라서 더 좋았던 것도 있고, 실마리를 영화 곳곳에 배치해 인간성을 상실한 이런 범죄자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
Q. 두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면서 절대 양보할 수 없었던 지점도 있었을 것 같다. 동시에 촬영 전 많은 이야기를 통해, 1부와 2부의 연출을 나눠 하면서도 트러블이 없었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이 감독 "'침범'의 준비 과정은 모두 합의의 현장이었다. 양보라기보다, 하의 이야기에 저희 스스로 설득력이 있게 되어야 했기에, 뺄 수 없는 게 생기더라. 많은 소통의 과정 덕분에 현장에서는 오히려 편했다. 김여정 감독이 1부의 주 키를 잡고 배우들과 소통하면 제가 다른 제반 부분을 챙겼고, 2부에서는 그 반대로 제가 키를 잡고, 여정 감독이 다른 부분을 챙겼다."
김 감독 "오히려 편했던 것 같다. 저희는 스스로 듀얼 코어라고 불렀다. 배우들도 저희 둘 중 한 명이라도 없으면 불안해했다. 제가 없으면 '오늘 엄마 왜 안 오세요'라고 물었다. (웃음)"
Q. '침범' 속에는 물과 불의 부딪힘이 강한 상징성을 만들어냈다. 이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김 감독 "소현(기소유)이가 불을 다루는 아이이지 않나. 모든 살인을 불로 했다. 그래서인지 물을 무서워한다. 반면, 엄마 영은(곽선영)을 나타내는 게 물이기도 하다. 엄마는 물을 무서워하는 소현을 물속에서 살리고, 살아가게 하려고 (수영장을) 훈육의 장소로도 사용했다. 결국 소현이는 저수지로 엄마를 만나러 가지 않나."
이 감독 "수영장을 중심으로 톤 앤드 매너를 잡아갔다. 물에 공포를 가진 소현이가 성장하며, 자기가 연약한 소녀일 때는 할 수 없던 것을, 불을 이용해서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2부에서는 더 컨트라스트를 강하게 했고, 소현의 존재감이 드러날수록 불의 레드 컬러도 도드라지게 했다. 집을 보면, 붉은 느낌만 있다가, 점점 붉은 색이 되어 간다. 마지막에는 붉은 점퍼까지 입어버린다. 관객들이 이를 찾아가며 재미를 느끼시길 바랐다." -
Q. '침범'은 콧노래를 부르는 소현(기소유)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성장한 그가 저수지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수미쌍관 구조를 띤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
김 감독 "이야기가 분절적이다 보니, 영화의 액자, 외피가 단단해야 할 거로 생각했다. 진짜 합의 과정이 힘들었다. 소현이가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않나. 끝부분에서 소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걸 엄마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구성하게 됐다."
이 감독 "인간성을 상실한 캐릭터가 저지른 행동의 이유에 대해 관객들은 물음표를 가지고 '침범'을 볼 거로 생각했다. 정확한 답은 아니라도, 실마리를 줄 수 있는 장면이 있기를 바랐다. 소현이가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벌어진 일들로 점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 결말까지 이어지게 됐다. 1부와 2부를 엮어줄 장치를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김 감독 "소현에게 변론의 기회를 줬지만, 누구든지 그의 감정을 이해할 수는 없을 거로 생각한다. 소현이는 그런 캐릭터다. 그리고 그의 변론은 '또 다른 집에 가서 침범할 거다'라는 열린 결말을 내고 싶었다."
Q.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시사회에서 곽선영 배우에게 '냉미녀'의 모습, 기소유 배우에게 '훌륭한 감정연기', 권유리 배우에게 '외로움', 이설 배우에게 '웃을 때 보이는 아기 사자 같은 느낌'을 각각 캐스팅 이유로 언급했다. 이들이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낸 치열한 에너지가 '침범'을 만든다. 작업 후 느낌도 궁금하다.
김 감독 "사실 KBS2 '드라마스페셜 2021 -보통의 재화'를 보고 곽선영을 동경하게 됐다. 영은이 차가운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곽선영의 얼굴을 빌리고 싶었다. 현장에서는 제가 많이 의지했다. 곽선영은 큰 그림을 본다. 굳이 많은 디렉션을 드리지 않아도, 다 아시고, 보여주신다. 테이크마다 제가 할 이야기를 미리 해주신다. 현장에서 놀라웠고 감사드렸다. 소현 역은 기소유에게 어려운 역할이었을 거다. 기소유가 훌륭한 배우인 만큼, 정말 힘들었을 거다. 전문가의 자문은 당연히 구했고, 스태프들도 그렇고, 현장에서 모두가 상처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기소유의 어머니에게는 전체 대본을 드렸지만, 기소유에게는 소현 부분만 전달했다. 칼이 없는 손잡이만 촬영에 사용하고 칼은 CG(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만들었다. 기소유는 촬영 당시 7살이었는데,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프로페셔널했다. 현장에서 고마웠다." -
이 감독 "권유리는 소녀시대 멤버로 예능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 뵈었을 때 생각보다 묵직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스릴러 장르를 워낙 좋아했다. 첫 미팅 때 '이런 시나리오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밑바닥, 날 것 같은 감정까지 다다를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하는 작업이 힘들었지만 뿌듯했다. 마지막 액션 장면이나 오열하다가 분노로 변화하는 모습은 한 번에 촬영했다. 감정 소모가 엄청났을 텐데,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이설은 원래 독립영화계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유명했다. 처음에 민 역에 어울릴 거라 생각하고 제안했다. 그런데 해영을 너무 좋아하더라. 해영이 사랑스럽다고 말해서 놀랐다. 저조차도 해영이 입장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완전히 동의하지 못하는데, 배우가 거기에 완전히 동의해 줬다. 제가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았다."
김 감독 "이설과 집도 가까이 살고 있다. 해영에 대해 이야기하며 밤 샌 적도 있다. 이설의 열정에 저희가 못 따라가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웃음)"
Q. '침범'은 네이버 웹툰으로도 연재됐다. 영화 개봉 전, 웹툰이 먼저 공개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을 것 같다.
김 감독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영화 제작을 위해 투자를 받기까지 어려웠다. 그때 팬데믹이 시작되며 전체적으로 축소가 됐다. 회사에서 웹툰 연재를 제안해 주셨다."
이 감독 "저희 시나리오를 원안으로 글 작가님이 합류했다. 저희의 시나리오에 살이 붙어서 50화짜리 웹툰으로 완성됐다. 솔직히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는 그렇게라도 안 하면 사라져 버리는 이야기가 될까 봐 그것이 저희에게 더 불안했다. 어떻게든 첫선을 보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웹툰이 도움이 된 것 같다."
김 감독 "미리 관객을 만나서 단점을 체크할 수 있었던 기회처럼 느껴졌다. 작가님이 다르기에 어떻게 각색이 되었을지, 어떻게 콘티를 짜셨는지, 관심을 가지고 바라봤다. 재미있게 써주셨더라." -
Q. 첫 번째 장편 영화를 세상에 내놓게 됐다. 두 분이 감독의 꿈을 꾼 것은 언제부터였고, 두 분의 인연도 궁금하다.
이 감독 "저는 원래 영화 미술 감독이 하고 싶었다. 제가 군대 있을 때, 처음 감독의 꿈을 꾼 것 같다. 군대에 갇혀있으면서 영화를 공부하다 보니, 영화는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최대치를 담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역하면 연출을 해야겠다고 꿈꿨다. 그때 만난 친구가 '약한 영웅'을 찍은 유수민 감독이다. 김여정 감독을 처음 만난 건, 유수민 감독이 자신의 여자 친구를 소개하면서다. (웃음)"
김 감독 "이제는 유수민 감독보다 제가 이정찬 감독과 친할 거 같다. 저도 미술을 전공했다. 도자기를 전공했는데, 그보다 더 넓게 미디어 아트나 사진 등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가 일본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 그 영향인지, 한국에서 학교를 그만두고 일본 유학을 가게 됐다. 그때 일본에서 영화감독의 꿈을 꾸게 된 것 같다. 학교도 영상 쪽으로 전공해 졸업하게 됐다."
Q. 치열하게 '침범'의 과정에 있었을 것 같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서로에게 느낀 장점이 있을 것 같다.
이 감독 "연출자마다 성향이 다르지 않나. 두 편의 시나리오를 하나로 합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그때 김여정 감독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구현해 낸다. 연출자로서 비전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 거기에 흔들림이 없다. 저는 많이 흔들리는 편이라, 좋은 부분이라고 느꼈다. 확실히 개성이 있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안 좋아한다. 창작자에게 도움이 되는 특성이 많이 있다."
김 감독 "관련해서 저는 집착하는 이미지를 위해 많은 것들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배우에게 사랑을 주고 노력해야 하는데, 제 성격상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정찬 감독 덕분에 늘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이정찬 감독처럼 다음 작품에서는 배우들을 많이 사랑해야겠다고 많이 배웠다." -
Q.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이나, 구체화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이 감독 "준비하는 것이 있다. 장르는 오컬트 물이다. 기억을 잃은 부마자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면서, 자신을 둘러싼 영적인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다."
김 감독 "저는 SF 장르의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가까운 미래에 해수면이 상승해서 한국에 전체적으로 물이 차는 설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펼쳐지는 인어 이야기이다."
한국 영화에 위기라는 말을 한다. 팬데믹 상황 이후에도 극장가 침체기가 이어지고 있고, 한국 영화에 대한 비관적인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를 꿈꾸고, 관객을 매료시킬 이야기를 깊이 고민하는 젊은 감독이 있다. 덕분에 관객들은 다시금 스크린 앞에서 깊은 '침범'을 느끼게 될 거다. 영화 '침범'을 볼 때처럼 말이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