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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두꺼비와 신선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5.02.12 06:00
  • 애주가들에게 사랑받는 술, 특히 서민들의 술은 역시 소주다. 소주를 대표하는 로고는 두꺼비이고, 두꺼비는 진로(眞露)다. 

    그러나 1924년 평안도 지역에서 진로 소주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로고는 원숭이였다. 한국전쟁 후 1955년 서울에서 새롭게 다시 진로 소주를 생산할 때 로고를 두꺼비로 바꾸었다. 당시 남한에서는 원숭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두꺼비가 재물과 다산, 행운을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전통 그림에도 두꺼비가 등장한다. 그런데 모양이 보통 두꺼비와 다르다.

  • (왼쪽)<해섬자희(海蟾自戲)>, 심사정, 출처=공유마당 (오른쪽)<하마선인(蝦蟆仙人)>, (傳)안중식, 출처=국립중앙박물관
    ▲ (왼쪽)<해섬자희(海蟾自戲)>, 심사정, 출처=공유마당 (오른쪽)<하마선인(蝦蟆仙人)>, (傳)안중식,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해섬자희(海蟾自戲)>-해섬이 혼자 놀다- 남루한 옷을 입은 괴상한 자가 개구리를 잡으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개구리에게 양꼬치구이를 먹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 그림의 내용은 중국의 전설 ‘유해희섬(劉海戱蟾)’이다. ‘유해희섬’이란 ‘유해라는 신선이 두꺼비와 놀다’라는 뜻이고, 유해를 유해섬(劉海蟾)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유해라는 신선은 엽전을 실에 꿰어 금두꺼비를 잡았다. 금두꺼비는 금을 토해냈는데, 유해는 그 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유해에게는 ‘세 발 달린 두꺼비’가 있었는데, 이 두꺼비가 그를 세상 어디든지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두꺼비가 가끔 우물 속으로 도망치곤 하여 그때마다 금전이 달린 끈으로 두꺼비를 끌어 올렸다고 한다. 

    전설 속의 두꺼비가 금을 토해 내거나 돈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두꺼비를 재물의 상징으로 여겼다. 중국 사람들은 한발 더 나아가 유해섬을 재신(財神)으로까지 숭배한다. 

    <하마선인(蝦蟆仙人)>은 ‘蝦蟆(두꺼비) 仙人(신선)’이란 뜻으로 유해섬을 가리키며, 위 전설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선 후기 두꺼비와 신선을 그린 그림은 대부분 세 발의 두꺼비와 중국식 복장을 한 신선이 등장하지만, 심사정이 그린 신선만은 걸인 모습이라 매우 특이하다. 

    두 그림은 모두 사람들이 가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희망의 표현이다. 그래서 민간에서 이 그림을 집에 붙여 놓는 것이 크게 유행했었다.

    2025년 서민들의 집집마다 두꺼비가 찾아가 금덩이를 하나씩 나누어주길 기원한다. 

    *유해의 본명은 유현영(劉玄英) 또는 유조(劉操), 호는 해섬자(海蟾子)로 중국 오대십국시기 실존 인물이다. 어느 날 속세의 영욕이 위태롭고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관직을 버리고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회자하였고, 중국 민간에서 그를 재신(財神)으로 숭상하였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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