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어(魚)와 여(如)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5.02.19 06:00
  • 2024년 6월 19일 자 <물고기와 독서> 이야기에서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을 삼여도(三餘圖)라고 하였다. 그 뜻은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목표를 이룰 수 있다”이다. 그래서 <삼여도>는 도서관이나 공부방에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소개하였다.

    이번 그림에는 물고기가 많다. 마치 수족관을 그려 놓은 것 같은, 물고기가 망중한을 즐기며 헤엄치고 있는 듯한 이 그림은 무슨 뜻일까?

  • (왼쪽)<구여도(九如圖)>, 제백석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오른쪽)<구여도(九如圖)> /출처=바이두
    ▲ (왼쪽)<구여도(九如圖)>, 제백석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오른쪽)<구여도(九如圖)> /출처=바이두

    먼저 물고기가 몇 마리인가 세어 보자. 대충 보면 열 마리 같지만 두 그림의 물고기를 하나씩 세어 보면, 각 그림의 물고기는 아홉 마리다. 굳이 물고기 마릿수를 세는 이유는 그림의 속뜻을 읽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고기 아홉 마리를 그린 그림은 <구어도(九魚圖)>다. 이때 물고기 ‘어(魚)’와 같을 ‘여(如)’의 발음이 비슷한 점에 착안하여 물고기 아홉 마리를 그린 그림을 <구여도(九如圖)>라고 한다. <구어도(九魚圖)>를 <구여도(九如圖)>라고 하는 데는 전고(典故)가 있다.

    《시경(詩經)》은 중국의 주(周)나라 사람들이 부르던 많은 노래들을 공자가 편집했다고 전하는 책이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위의 그림 <구여도>가 《시경(詩經)》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구여(九如)라는 말은 《시경·천보(詩經․天保)》의 시에 ‘여(如)’ 자가 아홉 번 등장하기 때문에 생겼다. 이 시는 신하가 왕을 위해 아홉 가지 소망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내용이다. 아홉 가지 희망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여산여부(如山如阜) 높은 산과 같고, 큰 땅과 같이
    여강여릉(如岡如陵) 높은 봉우리와 같고, 높은 언덕과 같이
    여천지방지(如川之方至) 강물의 흐름과 같이
    여월지항(如月之恒) 한결같은 달과 같이
    여일지승(如日之升) 떠오르는 해와 같이
    여남산지수(如南山之壽) 영원한 남산(南山)과 같이
    여송백지무(如松柏之茂) 무성한 소나무와 측백나무와 같이

    자연계의 아홉 가지를 열거하고 그 특성과 같아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핵심은 “복 많이 받고, 장수하고, 영원히 빛나길 축원합니다!”라는 의미다.

    축원하는 말로는 더 이상 부연할 말이 없을 정도로 가장 좋은 소망만을 골라 모아 놓았다. 중국 사람들이 장수를 기원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수비남산(壽比南山)’, 즉 “남산보다 더 오래 사세요!”이다. 이때 남산이 바로 《시경》의 구여 중 하나이다.

    물고기를 많이 그린 그림을 만나게 되면, 그림 속 물고기가 모두 몇 마리인지 세어 보자. 만약 물고기가 아홉 마리라면 그 그림이 바로 <구여도>로, 그림 속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가 그림을 읽는 당신에게 최상의 축원을 담은 시경의 노래 한 자락을 불러주고 있는 것이니 마음의 귀를 열고 감상해 보기 바란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관련뉴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