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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은 때로는 개인의 히스토리 속에서 죽음보다 큰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럼데도 삶은 계속된다. 연극 '터칭 더 보이드'는 안데스산맥 시울라 그란데에 조난된 등산가 '조'를 통해 조명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배우 김선호, 신성민, 이휘종 등이 그려내며 울림을 더한다.
20일 서울 아트윈씨어터에서 연극 '터칭 더 보이드(Touching the Void)'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터칭 더 보이드'는 삶을 향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선보여온 '연극열전9'의 세 번째 작품으로, '터칭 더 보이드'는 함께 안데스 산맥 시울라 그란데 빙벽을 사이먼(오정택, 정환)과 함께 등반하던 조(신성민, 김선호, 이휘종)가 홀로 조난된 뒤, 누나 새라(이진희, 손지윤)의 환영을 마주하며 삶에 대한 끈을 잡고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프레스콜은 설산을 연출한 무대로 꾸며진다. 실존하는 산은 없지만, 비스듬하게 세워진 무대는 배우들의 힘, 섬세하게 연출된 빛, 그리고 연극 무대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서라운드 사운드로 점차 커다란 산으로 비친다. 그 산을 만들어낸 배우들은 이를 오르고, 매달고, 기어가며 생존에 대한 의지를 처절하게, 때로는 달빛처럼 아름답게 그려낸다. -
프레스콜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 시작 전, 김선호는 홀로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여자친구와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진 후, 몸담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이후 취재진 앞에 선 첫 공식 석상이다. 긴장한 모습의 김선호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취재진 앞에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전한 뒤, 물을 마셨다. 그는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서 나왔습니다"라고 입을 열며 눈물을 떨구었다.
김선호는 말을 이어갔다. 그는 "프레스콜 자리에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기자님들께 드리는게 송구스럽고 죄송합니다.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 많은 분들이 노력하며 이 연극을 만들었고요. 이 자리에서 제가 누가 되는 것 같아 다시 한번 팀들과 우리 모두에게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동안 시간을 돌이켜보며, 제 부족한 점을 많이 반성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점점 더 나아지는 배우이자,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와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합니다"라고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
이후 김동연 연출가를 비롯해 출연진이 무대에 올랐다. 김동연 연출가는 "대사와 이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이 이야기를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라며 "산,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에 닿으려는 의지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모든 관객이 같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겠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닿으면 큰 의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어떻게 하지 하고 후회했다. 스태프와도 회의를 많이 했다. 조난당하는 꿈을 꿀 정도로 고민이 많았다"라고 속내를 전했다.
조난 사고로 설산에 고립된 '조' 역에는 배우 신성민, 김선호, 이휘종이 맡았다. 신성민은 "상황 안에서 최대한 집중하려고 했다. 인물이 가진 캐릭터보다 조난되고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상황을 생각했다. 그런 부분들이 이 작품을 하면서 좀 더 중요했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어 "다같이 클라이밍 장도 갔다.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것이 과연 영상 같은 것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막 빙벽 90도가 넘는 길을 가시고 하는데 너무 놀라웠다. 처음 하는 경험이었는데 존경심이 생기더라"라고 산악인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전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조는 누나 '새라'의 환영과 대화하며 삶에 대한 불꽃을 일으킨다. 새라 역의 손지윤 배우는 "저희가 시연한 것들을 보시면 아시지만 산을 구체화할 수 없어서 연습실에서 많은 시도가 있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통해 만든 것이 이 공연으로 만들어졌다"라고 남다른 노력을 전했다. 이어 "다행인 건 그런 시도들을 하면서 팀원들이 믿고 의지했다. 누군가 의견을 내면 '해보자' 하고 실패하고, 다시 '해보자' 하고 실패하고, 이런 수많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공연이다"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
'조' 역의 이휘종 역시 수많은 고민을 함께 나누었음을 전했다. 그는 "'어떻든 산이라는 것이 있다, 오르다, 그 온도나 이런 걸 관객들도 상상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화면 분할처럼 루프를 각기 다른 위치에서 올리고 내리는 장치도 있다. 사실 무대 위에서 저희는 정말 덥다. 바람막이 점퍼까지 입고 정말 덥다. 그런데 조와 사이먼은 영하의 온도에 있지 않나. 호흡이나 동상에 대한 것 등을 실제처럼 표현하기 위해 함께 탐구하고 같이 공유했다"라고 밝혔다.
김선호는 가슴에 와닿는 대사로 "(산에) 왜 오르냐가 아니라, 왜 오르지 않느냐고 물어봐야지"라는 대사를 꼽았다. 그는 "그 대사를 읽으며 많은 사람의 관점과 질문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오르지 않냐'라고 물어보면 삶이 다른 관점으로 비칠 수 있겠다는 작품의 메시지를 다른 누군가에게도 전달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작품에 임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김선호는 연극 '얼음'(2021)이후, 오랜만에 오른 무대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한다.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조'는 김선호 그 자체로 비쳐지기도 한다.
해당 대사와 함께 작품 속에는 '황홀경에 빠진 사람과 물에 빠진 사람 모두 두 팔을 들고 있다' 등 카프카의 문구가 인용된다. 김동연 연출가는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는 숙제가 되길 바란다"라며 "여기에는 삶과 죽음, 경계에 서있는 인간의 부조리한 면이 있다고 본다. 마치 살려고 하지만 그 자체가 죽음보다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겨내고 앞으로 나가려 하는가. 그거에 대한 은유 상징이지 않을까. 그 문구를 보고 각자 생각하는 면은 다르다고 생각한다"라고 '터칭 더 보이드'가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에 대해 밝혔다.
한편, '터칭 더 보이드'는 지난 7월 8일 대학로 아트윈 씨어터 2관에서 막을 올린 뒤, 오는 9월 18일까지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