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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한 그릇 수행, 한 입의 지혜” 세계가 주목하는 정관스님의 사찰음식 철학

기사입력 2025.04.24 11:33
  • “그는 음식으로 수행의 지혜를 나누려는 사람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찰음식 대가이자, 셰프들의 셰프로 불리는 정관스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 문장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열일곱 살에 출가해 반세기 동안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찰음식을 연구하고 이를 세계에 알린 그는 최근 첫 에세이 ‘정관스님 나의 음식(윌북)’을 출간했다.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 지혜와 삶의 철학을 세상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책이다.

    정관스님은 이 책에서 단순히 조리법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마음으로 재료를 고르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자세로 음식을 대해야 하는가”에 주목한다. 그는 계절의 순리를 따르며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던진다. 이는 그가 요리를 수행의 일부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  ‘정관스님 나의 음식’책 표지
    ▲ ‘정관스님 나의 음식’책 표지

    책에는 사계절에 따라 섭취하면 좋은 총 58가지 레시피가 수록돼 있다. 봄에는 스님의 대표 메뉴인 ‘표고버섯 조청 조림’, 여름에는 상큼한 ‘토마토장아찌’, 가을에는 깊은 맛의 ‘우엉 고추장 양념구이’ 등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들이 계절별로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특히 스님이 강조하는 양념과 청(靑)은 사찰음식의 깊은 맛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풍미를 자랑한다. 모든 레시피는 간단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구성돼 있어 요리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다.

    정관스님은 사찰음식을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닌, 삶을 건강하고 평온하게 만드는 수행의 일부이자 깨달음을 돕는 지혜의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사찰음식은 불교의 수행 문화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건강한 식생활, 환경 친화적인 삶, 마음을 다스리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전통 식문화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러한 철학은 국내를 넘어 세계 식문화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출연 이후, 정관스님의 음식은 지속 가능한 식문화를 지향하는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각국의 미쉐린 스타 셰프들과 식문화 전문가들이 그를 찾아와 사찰음식을 배우고 있다.

  • 스님의 대표 음식인‘표고버섯 조청 조림’과 사찰음식의 꽃이라 불리는 각종 ‘부각들’/사진=월북 출판사
    ▲ 스님의 대표 음식인‘표고버섯 조청 조림’과 사찰음식의 꽃이라 불리는 각종 ‘부각들’/사진=월북 출판사

    많은 이들이 스님의 음식에 매료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균형 잡힌 영양과 깊은 풍미, 자연을 존중하는 조리 방식은 그 자체로 지혜로운 건강식이다. 특히 저속노화(slow aging)를 중시하는 요즘, 그의 음식은 단순한 요리를 넘어 몸과 마음의 속도를 조율하는 식문화로 부상하며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번 책은 정관스님과 스위스에서 한국 문화를 전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후남 셀만이 3년에 걸쳐 함께 집필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여기에 스위스 사진작가 베로니카 회거가 담은 백양사 천진암의 사계절 풍경과 요리 장면이 수백 장의 사진으로 더해지며, 한 권의 책이 마치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한다.

    정관스님은 “저는 셰프가 아니라 수행자입니다”라고 강조한다. 수행자란 곧 ‘행동과 습관을 바꾸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다. 언제나 바른 마음과 좋은 태도를 지니고자 하지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수행은 평생에 걸쳐 이어지는 치열한 자기 성찰의 여정이다.

    그렇기에 그가 전하는 ‘수행자를 위한 음식’은 단지 불가의 요리가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식사를 통해 자신을 돌보고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모든 이를 위한 삶의 지혜이자 따뜻한 응원이다. 결국, 정관스님의 사찰음식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마음의 속도를 조율하는 한 그릇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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