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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인터뷰] 무채색 일상에 던지는 질문, ‘피브레노’ 임성민 대표가 말하는 색의 힘

기사입력 2025.04.18 09:25
  • 언제부턴가 우리는 블랙, 화이트, 그레이 같은 무채색에 익숙해졌다. 한때는 블루, 옐로우, 그린처럼 선명한 색들을 거리낌 없이 고르던 내 안의 소년·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이런 무채색 일상에 색상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49가지 컬러 팔레트를 앞세운 피브레노(FIBRENO)다.

    “컬러는 단순한 시각 요소가 아니라, 취향과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언어”라고 말하는 피브레노의 임성민 대표는 사람마다 다른 컬러 취향을 존중하며, 각자가 자신의 컬러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는 브랜드를 꿈꿨다.

    색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힘을 믿는 임 대표의 철학을 들어봤다.

  • 컬러 차트를 살피며 브랜드의 색을 고민하는 피브레노 임성민 대표. /사진=권연수
    ▲ 컬러 차트를 살피며 브랜드의 색을 고민하는 피브레노 임성민 대표. /사진=권연수

    Q. 피브레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컬러’를 브랜드 정체성으로 삼은 이유?

    피브레노(FIBRENO)는 제가 이탈리아 유학 시절 거주하던 ‘Via Fibreno 10’이라는 주소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그곳은 제게 배움과 도전, 그리고 취향이 축적된 의미 있는 공간이었죠. 브랜드의 시그니처 컬러인 ‘로마 옐로우(Roma Yellow)’도 로마의 해 질 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내며 강렬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컬러에 대한 애착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브랜드를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컬러’를 정체성의 핵심 언어로 삼게 됐습니다. 저에게 컬러는 단순한 시각 요소를 넘어, 취향과 감성,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Q. 매달 새로운 컬러 아이템을 선보이는 전략이 인상 깊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직 문화가 있나?

    핵심은 ‘사람’입니다. 피브레노는 다양한 취향과 관점을 존중하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조직 문화를 지향합니다. 작은 아이디어도 자유롭게 오가며, 그 아이디어가 곧장 제품 개발과 마케팅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컬러를 통해 고객에게 영감을 주는 브랜드이기에 내부에서도 크리에이티브와 실행력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Q. 일상에서 영감을 주는 컬러나 장면이 있다면?

    여행지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타마니 그린’은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한 울창한 자연과 평화로운 기억에서, ‘두바이 블루’는 두바이 출장 중 고층 빌딩에 반사된 바다의 깊고 신비로운 색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습니다.

    Q. 초기 23가지에서 49가지로 확장된 컬러 중, 특별한 의미를 지닌 컬러가 있다면?

    저에게 가장 특별한 컬러는 ‘그린’입니다. 피브레노의 브랜드 컬러였던 옐로우와 남편이 운영하던 브랜드의 블루가 만나 제 아들의 이름 ‘그린’이 되었죠. 컬러는 제게 삶과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이자, 고객이 자신만의 색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 임 대표의 가방 속 작은 소지품들, 피브레노의 아이코닉한 제품들로 채워져 있다.
    ▲ 임 대표의 가방 속 작은 소지품들, 피브레노의 아이코닉한 제품들로 채워져 있다.

    Q. 대표님의 데일리 스타일과 가방 속 애정템이 궁금하다.

    저는 셔츠를 즐겨 입습니다. 셔츠를 입으면 자연스럽게 마음가짐이 단정해지고, 스스로에 대한 태도와 자세도 더 무게감 있게 느껴져요.

    오늘 들고 온 가방은 피브레노의 바게트 백이에요. 안에는 휴대폰, 명함지갑, 선글라스 케이스, 이어폰 케이스, 동전지갑, 액세서리 지갑, 파우치 등 저희 SMALL LEATHER GOODS 라인 제품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아이템은 ‘필(Pill) 케이스’인데요. 원래 약통 보관함으로 만들어졌지만, 약통을 빼면 작은 소지품을 담을 수 있어 백인백처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실용성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피브레노다운 제품이라 더욱 애정이 갑니다.

    Q. 하루의 루틴이나 창의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오히려 특별한 순간보다는 일상에서 더 자주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하루를 시작할 때 작은 루틴을 꼭 실천하려고 해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이미지화해요. 일종의 모닝 리추얼처럼, 해야 할 일들을 그림처럼 그려보는 거죠. 그걸 다시 카카오톡 메모에 정리해 두고, 하루를 그 메모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지금 제가 맡은 일들은 창의적인 감각과 논리적인 사고를 동시에 요구하는 복합적인 상황이 많습니다. 예술적 감성과 체계적 사고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이 아침 루틴이 큰 도움이 돼요.

    Q. 현재 피브레노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제품군은?

    가방과 SLG(Small Leather Goods) 그리고 백꾸(가방 꾸미기) 아이템입니다. 피브레노의 컬러 플레이와 감각적인 디자인을 더 해, 고객 각자가 자신의 개성을 담은 가방을 완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액세서리와 옵션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가방 판매를 넘어, ‘나만의 백을 만들어가는 경험’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향후에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개인화 제품군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 안국 본점에서 만난, 알록달록한 색감이 돋보이는 가방들.
    ▲ 안국 본점에서 만난, 알록달록한 색감이 돋보이는 가방들.

    Q. 안국 본점, 광화문 D타워, 코엑스몰 등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 곳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매장별 운영 전략이 궁금하다.

    저희는 매장 입지 선정 시 브랜드 철학과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안국 본점은 피브레노 철학을 전달하는 핵심 공간으로, 광화문 D타워점은 직장인을 위한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컬러 제품을 제안합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고객이 다양한 가방과 액세서리를 조합해 볼 수 있는 'Bag Bar' 테마의 컨셉스토어입니다. 최근 오픈한 코엑스몰점은 49가지 컬러를 큐레이션한 ‘컬러 라이브러리’ 콘셉트로 피브레노의 색을 직관적이고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했습니다.

    Q. 올해 주목할 만한 신제품이나 라인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이번 S/S 시즌에는 ‘VIA FIBRENO’ 로고를 중심으로 한 RTW(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젊고 경쾌한 무드의 디자인을 통해, 피브레노의 컬러 철학을 패션 영역에서도 확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Q. 7월에 예정된 브랜드 13주년 전시는 어떤 방향성과 메시지를 담고 있나?

    2025년 7월,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브랜드 창립 13주년을 기념한 전시를 엽니다. 이번 전시는 저희가 지향해온 ‘컬러는 나만의 언어이고 경험’이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자투리 원단을 활용한 아트워크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브랜드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하는 자리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Q. 국내와 해외 시장에서 각각 어떤 브랜딩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고객 반응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국내에서는 오프라인 매장과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에 집중하고 있어요. 매장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브랜드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운영하며 고객과의 관계 형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반면 해외 시장에서는 지리적·문화적 제약을 고려해, 대형 유통 채널과 온라인 플랫폼, 팝업스토어 등을 통해 피브레노만의 컬러 경험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품 반응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국내 고객은 블랙, 카라멜 등 데일리 컬러에 높은 관심을 보이지만, 해외 고객은 피브레노 특유의 컬러 플레이가 돋보이는 아이템에 더 주목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시장별 맞춤 전략을 한층 세분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Q. 현재 진출한 해외 시장과 향후 글로벌 확장 계획은?

    현재 피브레노는 전 세계로 해외 배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공식 유통 파트너를 통해 온라인 판매 중입니다. 최근 동남아시아 고객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당 지역의 오프라인 매장 진출도 검토 중입니다. 동남아,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컬러풀한 아이템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일상에 색채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문화 덕분에 피브레노의 컬러 철학에 공감하는 고객들이 많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Q. 브랜드 운영 과정에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가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외국인 고객 비중이 높았던 안국 본점의 매출이 급감했지만, 매일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고객과 소통하며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갔습니다. 이 시기를 통해 피브레노의 본질, 즉 고객과의 취향 공유와 컬러를 통한 삶의 작은 기쁨 전달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됐습니다.

    임성민 대표는 피브레노 창업이 ‘좋아하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브랜드와 자신을 분리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한다.

    팬데믹을 비롯한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그는 동료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브랜드의 자생력을 키워왔다. “결국 오래 하는 사람이 남는다”라는 그의 말처럼, 진심을 담은 고민과 지속적인 방향성 추구가 브랜드를 좀 더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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