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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상황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다. '언제 죽는다'는 지옥행 고지를 받고, 그 시각에 정확히 지옥의 사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초자연적인 상황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을 담은 작품이다. 박정자는 '지옥'의 문을 활짝 여는 인물이다. 관객은 그로 인해, 공감과 연민으로 작품에 다가갔고, '지옥' 속 세상은 더 크게 열렸다. 이유 있는 각인, 배우 김신록의 몫이었다.
박정자는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런데 자신의 생일날, 천사에게 지옥행 고지를 받는다. 남은 시간은 단 5일. 그때 초자연적 상황 속에서 급부상한 새진리회는 거액의 금액을 주며 제안한다. 지옥의 시연을 생중계할 것을. 죽음에 대한 공포, 그 이상의 아이들에 대한 염려, 다양한 감정 속에서 박정자의 5일은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뜨겁게 '지옥' 속에 담긴다.
"연상호 감독님께서 촬영 전, 박정자는 지옥의 고지를 받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평범한 사람이 뭘까. 사람 한 명, 한 명은 구체적인 개인이잖아요. 박정자에게는 어떤 구체성이 있을까, 그의 환경은 어떤 세상일까, 여러 상상을 더 해갔어요. 사실 사람이 어떤 하나의 면만 가지고 있지 않잖아요. 돌발적인 많은 면모가 한 사람을 만드는데요. 그런 상황 속 모순되는 감정과 상태를 잘 배치해서 복합적으로 '박정자'의 모습이 표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박정자 역을 맡은 배우 김신록이 말했다. 박정자에게 중요한 키워드는 '엄마' 였지만, 김신록은 "엄마라는 것보다 밑바탕에 있는 것은 인간이라서요. 그걸 가져가려 했고요. 환경의 요소에 아이가 있는 거로 생각했습니다. 표현하려 한 것은, 죽음 앞에서 지킬 수 없는 걸 지켜내려는 한 인간의 전 존재를 건 노력과 애씀 같은 것들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 설명했다.
연상호 감독은 진행된 인터뷰에서 민혜진 변호사(김현주)와 정진수 의장(유아인)이 함께 박정자(김신록)의 집에 방문한 장면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이라고 밝혔다. 김신록은 "주요 인물들이 맞부딪히는 상황에 대해서, 연상호 감독님께서 지나가는 느낌으로 레퍼런스를 살짝 보여주신 적이 있어요"라며 촬영 당시를 회상한다.
"정확한 이름은 떠오르지 않지만, '인간극장' 같은 휴먼 다큐멘터리였어요. 한 할아버지가 방문한 사람들 앞에서 되게 주눅이 들어있으면서 눈을 못 들었어요. 계급 차이가 확 느껴지는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박정자도 민혜진 변호사와 정진수 의장이 집에 왔을 때, 이것저것 내놓잖아요. 그런데 집도 누추하고, 커피잔도 세트가 안 맞고, 집에는 커피 믹스밖에 없고, 이런 구체적인 것들이 순간 사람을 주눅 들게 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 집의 주인으로, 계약의 당사자로 품위를 잃지 않고 임하려는 상반된 감정이 드러났으면 했어요." -
"원래 원작 웹툰과 대본에는 박정자가 아이들을 안고 '제 죄는 아무거나 붙여주세요. 아이들을 위해 기회입니다'라고 하는데요. 그 정도의 긴 대사를 아이들 옆에서 하는 게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감독님께서도 '애들은 방에 있어야 할 것 같다'라고 말씀하셔서요. 어떻게 이 동선과 대사를 맞출지 고민하다가, 아이들을 혼내는 애드리브가 완성됐어요. 이 사람들 앞에서 아이들을 버릇없이 키우지 않았고, 이 사람들도 내 아이들을 예의 바르다고 생각했으면 한 거죠. 그런 복합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이 부딪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연기하고 보니, 그런 여러가지 것들이 부딪힌 좋은 순간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연기를 '주문'하기보다는, 여러 대화를 나눴다. 김신록은 연상호 감독과의 대화 속에서 '박정자'에 대한 팁을 얻기도 했다. 그는 "감독님께서 작품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에피소드나 일화를 툭툭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박정자의 생일에 아이들이 케이크를 준비하는 장면에서 감독님께서는 '우리 엄마는 이런 케이크면 화낸다, 왜 이렇게 비싼 거 샀냐고'라고 하셨어요. 그런 이야기가 캐릭터를 더 풍부하게 연기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라고 에피소드를 전한다.
어느 때보다 김신록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포털사이트 프로필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출신인 김신록은 2004년 연극 '서바이벌 캘린더'로 데뷔했다. 김신록은 배우로서의 시작이 대학, 혹은 그 이전이었다고 회상했다. -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대학생 때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였어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라는 작품의 리나 역을 했거든요. 그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리나도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20살이 채 되지 않은 소녀인데요. 그 인물을 연기하면서 '나도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 것 같아요."
"사실 63세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가 오랜 시간 한문 학원을 경영하셨는데요. 결혼하시기 전에, 연극배우 활동을 하셨대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가 '우정 출연' 형식으로 연극 무대에 선 걸 딱 한 번 본 적 있었어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 아버지 후배가 운영하는 극단을 소개해 주시면서 '연극을 배우라는 게 아니라, 인생을 배우라는 거다'라는 명언을 남기셨죠. (웃음) 막연하게 배우가 되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계속해올 수 있는 원동력은 아마도 '연기가 뭘까'라는 것을 계속 궁금해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김신록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 이어 쿠팡 플레이 시리즈 '어느 날'과 연극 '마우스피스'를 통해서도 대중과 만나고 있다. -
"굉장히 운이 좋게도, 시기적으로도 맞물리고, 캐릭터 적으로도 상반돼 있어서 보시는 시청자분들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시청자로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면서 서로 간에 시너지를 얻고, 영감을 얻고 하는 방식을 좋아했어요. 매체 연기와 연극 무대를 병행하면서, 상호 간에 도움을 주고 영감을 주거든요. 제가 연극 '마우스 피스'를 공연 중인데요. 그 속에서 맡은 캐릭터가 젊을 때 주목을 받다가 금새 자기 색을 잃어버린 애매한 작가 역할이거든요. 요즘 인터뷰를 하다 보니, 카페에서 혼자 쏟아내는 독백이 얼마나 잘되는지요. 저에게는 그런 미래가 오지 않기를. (웃음)"
쉴 새 없이 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신록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이를 "남편"이라고 말한다. 김신록의 남편은 연극배우 박경찬이다.
"지금 인터뷰하는 일도 또 다른 영감을 주고요. 그 시기 저와 맞물린 환경이 영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어떤 질문이 있을 때 책을 읽고 거기에서 힌트를 얻는 경우가 많이 있고요. 에너지와 영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남편이 배우인데요. 남편에게 많은 에너지와 영감과 조언을 얻고 있습니다. 남편이 제 연기를 2008년부터 봐왔는데요. '지옥'을 보고, 지금까지 한 연기 중에 제일 잘했다고 말해줬어요."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