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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소나무와 학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5.01.01 06:00
  •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요즘은 지인들에게 휴대폰을 활용하여 새해 덕담을 전한다. 최근에는 몇 줄 안 되는 문장도 길다고 느끼는지 이미지 한 컷으로 대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는 것이 세상살이의 자연스러운 변화라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情)이 살짝 부족해 보여 아쉽다.

    새해 연하장으로 가장 많이 주고받았던 이미지는 단연코 ‘소나무와 학’이었다. 소나무와 학은 새해를 여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에서 소나무에 앉은 학은 볼 수가 없다. 소나무와 학은 그림에서야 단짝이지만 실제로는 가까이하기엔 너무도 먼 사이다. 그림만 보고 학이 소나무에 둥지를 짓고 산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학은 주로 습지나 평지에 살지 산속에 살지 않는다. 만약 학처럼 덩치가 큰 새가 솔가지에 앉는다면 나무가 당해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학도 긴 다리와 긴 목이 나뭇가지에 이리저리 걸려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나무와 학을 굳이 같이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 (왼쪽) <송학도(松鶴圖)>, 전(傳) 조지운(趙之耘),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송령학수(松齡鶴壽)>, 당운,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 (왼쪽) <송학도(松鶴圖)>, 전(傳) 조지운(趙之耘),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송령학수(松齡鶴壽)>, 당운,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우리나라에서 학은 고고하며 기품이 넘치는 새(一品),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仙鶴), 천 년을 살아 장수를 상징하는 새(千年鶴) 등으로 길조(吉鳥)라고 여겨져 왔다.

    소나무와 학은 예로부터 십장생 중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한다. <송학도(松鶴圖)>와 <송령학수(松齡鶴壽)>는 소나무와 학처럼 살기 바라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소나무 나이만큼, 그리고 학처럼 장수하기를 바랍니다”의 뜻이다. 화가에 따라 제목을 <학수송령(鶴壽松齡)>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학과 소나무 중 어느 것을 앞에 쓰는지만 다를 뿐이다. 

    《논어(論語)》<자한(子罕)〉편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라는 말이 있다. 소나무는 계절적으로 1월을 상징한다. 화투(花鬪)에서 솔이 1월을 나타내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소나무는 새해를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그림 <송령학수(松齡鶴壽)>에는 소나무와 학 이외에 영지버섯이 오른쪽 하단에 그려져 있다. 영지(靈芝)의 령(靈)과 나이 령(齡)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소나무와 영지’를 그리고 ‘소나무의 나이’로 읽는 것이다.

    전통 그림에서는 자연계의 생태 환경과 맞지 않는 내용이 종종 등장한다. 이는 작가가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식물, 동물 등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실제 자연계의 학을 보고 싶으면 겨울날 철원 들판으로 가자.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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