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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백합과 여의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5.01.22 09:06
  • 만사여의형통(萬事如意亨通)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통쾌함이 밀려온다.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그런 통쾌함을 맛볼 수 없기에 그 느낌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모든 일은 고사하고 한 가지만이라도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 만사(萬事)까지는 아니어도 백사(百事)가 여의 형통하기를 기원하는 그림이 있다. 그림의 소재가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보자.

  • (왼쪽)<백사여의(百事如意)>, 류승애 /출처=개인소장 (오른쪽) <백사여의(百事如意)>, 왕진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 (왼쪽)<백사여의(百事如意)>, 류승애 /출처=개인소장 (오른쪽) <백사여의(百事如意)>, 왕진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두 그림의 제목은 모두 <백사여의(百事如意)>다. 같은 제목이지만 얼핏 보아도 각 그림의 소재가 다르게 보인다.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지만 화가에 따라 소재를 달리 선택했다.

    류승애의 <백사여의(百事如意)>를 보자. 위에서부터 측백나무, 감, 여의가 그려져 있다. 측백나무 백(柏, bǎi)은 발음이 같은 일백 백(百, bǎi)으로 읽는다. 그리고 감은 한자로 시(柿, shì)인데 일 사(事, shì)와 중국어 발음이 같아 사(事)로 읽는다. 마지막으로 맨 아래 구둣주걱처럼 생긴 것을 여의(如意)라고 하는데, 그 뜻이 ‘뜻대로 되다’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예부터 사대부들이 소장하는 물건이었고, 오늘날 중국인들의 가정에서도 관상용으로 하나씩 갖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그림 중 다양한 물건을 그린 정물화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에도 이 여의가 그려져 있다. 

    측백나무+감+여의=백(百)+사(事)+여의(如意)가 된다. “백 가지 일이 뜻대로 되세요!” 즉 모든 일이 뜻대로 잘 풀리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왕진의 <백사여의도(百事如意圖)>를 보자. 그림이 마치 동화책의 삽화 같기도 하고, 어린아이 솜씨 같기도 해서 ‘이게 유명 화가가 그린 작품이 맞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림의 소재 중 감과 여의는 왼쪽의 그림과 같지만, 나머지 하나는 무엇일까? 마늘같이 생긴 것이 무엇인지 알면 해결될 것 같은데, 마늘은 아니다. 고민을 줄이기 위해 정답을 공개하면 그것은 바로 백합 뿌리다. 중국 식당에 가면 백합 뿌리를 넣은 음식이 적지 않다. 다른 재료와 궁합이 잘 맞아 건강에 좋은 음식 재료로 각광받는다. 식감은 아삭하고 약간 쌉싸름하고 특유의 향도 있다. 

    백합은 한자로 百合(bǎihé)다. 측백나무 대신에 백합 뿌리를 그렸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리하면 백합 뿌리+감+여의=백(百)+일 사(事)+여의(如意), 이 역시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길 기원한다!”라는 뜻이다.

    독자 여러분! 을사년(乙巳年) 백사여의형통하세요!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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