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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술 코냑, 알고보면 영국의 술?

기사입력 2019.02.20 14:23
  • 프랑스에는 대표적인 고급 술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와인, 또 하나는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다. 브랜디 중에 가장 고가에 판매되는 것은 바로 코냑이다. 코냑이라는 이름은 지역을 뜻하는데, 도버해협과 이어지는 샤랑트 강이 흐르는 곳이다. 그런데 코냑을 프랑스 술이라고 하면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바로 그들의 등급 표시를 영어로 해 놓은 것이다. 나름 우리에게 친숙한 VS, VOSP, XO 등의 명칭들이다. 프랑스는 자국어에 대한 자긍심이 지극히 높다고 하는데, 왜 굳이 이러한 등급에 영어식 표기를 했을까? 정말 자긍심이 높다는 것은 맞는 말인가?
  • 헤네시 XO. 출처 위키피디아 재팬
    ▲ 헤네시 XO. 출처 위키피디아 재팬
    영어식 등급 명칭의 의미

    코냑의 등급 표기는 영어식 철자를 그대로 쓰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숙성연도를 나타내는 표시로 VS(Very Specia)급은 2년 이상 숙성시킨 원액으로 블랜딩했으며, VSOP(Very Special Old Pale)급은 4년 이상, XO(Extra Old)급은 10년 이상(최근에 6년에서 10년으로 변경) 숙성시킨 등급을 의미한다. 오다주(Hors d'âge)라는 등급은 있는데 이는 거의 XO 등급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XXO라는 14년 이상의 새로운 등급도 등장했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영어식 표기를 많이 쓰는 이유는 코냑의 최고 수출처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포도가 잘 나지 않는 영국 입장에서는 프랑스의 와인 및 코냑은 최고 사치품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렇게 영어 표기를 쓰는 이유로 오직 수출 하나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있는 것일까?
  • 코냑의 최고급 등급이라고도 불리는 XXO 등급. 14년 이상 숙성제품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비공식 등급이라고 알려져 있다. 출처 헤네시 공식 홈페이지
    ▲ 코냑의 최고급 등급이라고도 불리는 XXO 등급. 14년 이상 숙성제품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비공식 등급이라고 알려져 있다. 출처 헤네시 공식 홈페이지
    세계 5대 코냑 기업 중 3곳이 영국계에서 시작

    일반적으로 세계 5대 코냑이라고 불리는 유명 기업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헤네시(Hennessy), 레미 마르땡(Remy Martin), 마르텔(Martell), 쿠르보아제(Courvoisier) 그리고 까뮤(Camus)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5곳의 회사 중 3곳의 창립자가 영국 또는 영국령에서 왔다는 것이다. 세계 코냑시장의 39%를 차지한다는 헤네시는 아일랜드 출신의 장교였던 리처드 헤네시에서 출발했으며, 마르텔의 경우 영국해협의 채널제도의 저지섬에서 온 존 마르텔이 창업자다.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갈 때 가지고 갔다는 코냑 쿠루보아제는 원래 프랑스 기업으로 1809년에 설립되지만, 1909년 영국에서 와인 및 증류주 사업을 하던 영국의 사이먼 가문이 인수를 하게 된다. 5대 기업은 아니지만 고급 코냑으로 유명한 하디(Hardy)사도 1863년 영국인 엔소니 하디가 세운 증류소이며, 바롱 오타르(Baron Otard) 역시 아일랜드 계열이다. 다만 이 기업들이 철저히 프랑스식을 따른 이유는 프랑스라는 브랜드를 활용하면 제품을 고가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국적과 관계없이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를 따랐던 것이다. 쿠루보아제의 경우 영국인이 오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을 전면에 내세워 지금도 로고 자체에 그의 상징이 그려져있다.
  • 쿠르부아제의 코냑. 영국인이 오너였지만 로고는 나폴레옹이 새겨져있다.출처 flickr
    ▲ 쿠르부아제의 코냑. 영국인이 오너였지만 로고는 나폴레옹이 새겨져있다.출처 flickr
    교황이 최초로 마셨다는 브랜디, 영국식 청 코디얼 재료로

    코냑의 증류 기술은 스페인에서 유럽으로 북상했고, 13세기 순례길로 유명한 산티아고로 돌아온 십자군에 의해 프랑스 남부 지방까지 알려졌다고 전해진다. 이때 교황 클레멘스 5세는 1299년 증류한 와인, 즉 브랜디를 처음으로 치료제로 마시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브랜디를 생명의 물, 라틴어로 아쿠아비테(Aquavite)라고 불렀고, 이후에 오드비(Eau-de-vie)라는 프랑스어로 증류주를 뜻하는 단어로 이어지게 된다.

    영국으로 수출을 하게 된 이유는 중세 유럽 시대부터 한자 동맹 등으로 상업이 발달했던 네덜란드의 상인이 저장 및 관리가 어려운 와인 대신 획기적인 제품을 취급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발견된 것이 증류주인 브랜디였다. 이때 수입한 제품명이 브랜드 바인(brandewijin)으로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burned wine’, 즉 구운 술이었고 이것이 나중에 브랜디가 됐다. 영국의 가정에서는 우리나라의 청과 비슷한 코디얼(Cordial)이란 음료를 자주 만들었는데, 당시의 코디얼은 브랜디에 당분 및 허브를 넣어 마시는 것이었다. 또 영국은 이제 막 증류한 코냑 원액을 수입, 영국에서 숙성해 판매도 했는데, 이러한 코냑을 얼리 랜디드 코냑(early landed cognac)이라고 불렸다. 증류는 프랑스에서 숙성은 영국에서 판매는 네덜란드가 하는 독특한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 유럽식 코디얼. 우리나라로 치면 청과 같은 느낌이다. 사진 출처 명욱
    ▲ 유럽식 코디얼. 우리나라로 치면 청과 같은 느낌이다. 사진 출처 명욱
    프랑스 자국에서는 소비가 적은 코냑, 결국 수출이 사업의 사활

    17세기 말에는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쫓겨난 영국 왕 제임스 2세가 프랑스로 망명을 하게 되면서 브랜디 무역이 줄게 되고, 반대로 영국의 왕이 된 네덜란드인 제임스 3세는 영국에 자국의 술인 진(Gin)을 보급시킨다. 하지만 브랜디의 밀수입은 계속되고, 결국은 수익이 되는 것을 본 아일랜드 및 영국인이 코냑 사업을 직접 하게 된다. 네덜란드인이 시작한 사업을 결국은 영국인이 빼앗은 것이다.

    현재 코냑의 제1 수출국은 미국(약 8,000만 병), 그리고 중국(2,500만 병), 영국은 이들에 이어 3위(1,000만 병)를 나타낸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 자체에서는 코냑을 지극히 적게 마신다는 것이다. 연간 450만 병만 소비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영국과 비교해도 반도 안 마시는 수치다. 미국 및 중국이 코냑을 다양한 칵테일 형태로 즐긴다면 프랑스에서는 너무 격식을 따지기에 트렌드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따라서 코냑은 자국의 소비보다는 해외 수출이 사업의 사활을 쥐고 있으며, 따라서 등급 표기 등도 영어식으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숙성창고에서 거미를 죽이지 않는 이유

    코냑 관련해 숙성창고에 거미줄 또는 거미를 없애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유는 거미가 오크통을 지키기 때문이다. 숙성용 오크통을 만들 때 버드나무줄기로 매듭을 지는데, 진드기가 와서 버드나무줄기를 갉아먹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오크통에서 코냑이 다 새어 나와 다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거미가 있으면 이 진드기를 먹어버리고, 한번 오크통을 만들어 놓으면 몇 십 년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금은 버드나무줄기로 오크통의 매듭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지만, 거미줄을 코냑의 좋은 친구로 여전히 치우지 않는다고 한다. 나름의 전통인 것이다.
  • 오크통. 출처 Pixabay
    ▲ 오크통. 출처 Pixabay
    그래도 코냑이 프랑스의 술인 이유는

    일반화를 시켜서는 안되지만 프랑스 코냑의 기원은 이슬람에서, 판매는 네덜란드인이, 상업적 발전은 영국이 시켰으며, 소비는 미국이 하는 아주 복합적인 문화 상품이라는 느낌이 든다. 다만 중요한 것은 프랑스 외에 그 어느 나라도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유는 코냑이라는 브랜드를 프랑스가 입혔기 때문이다. 루이 14세가 즐긴 술이며, 나폴레옹이 좋아한 상품이라는 특별한 스토리가 오직 코냑에만 있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급스러운 문화를 즐긴다는 만족감이 드는 것이며, 이를 통해 판매자 입장에서는 고가에 팔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외국에 주류수출을 많이 한다. 그런데 외국에 우리의 술을 팔면서 국적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그 나라의 제품인 양 전시해야 판매가 된다는 것이다. 일본으로 수출한 한국 맥주 등이 대표적이다. 브랜드를 숨기고, 한국산인 것을 숨기고 판매를 한다. 주류에 있어서 국가 브랜드가 낮아서 OEM 등으로 판매를 한 것이다. 결국 해당 제품은 일본 내 최저가로 판매될 수밖에 없었다. 고부가가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모습을 하나씩 탈피해가야 한다. 우리를 알리고,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야 될 시기가 오고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문화적 강국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단순한 현대의 모습이 아닌 옛 것의 가치를 발굴하고, 그것을 소비자와 소통해야 한다. 단순히 전통주를 잘 지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식문화 전체는 물론, 인물과 지형, 역사, 민속학까지 모든 것이 스토리화되어 기억되어야 한다. 그리고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지난 것을 잘 지키고 보존하여 세계 고급 시장을 이끄는 프랑스의 코냑, 앞으로의 100년을 계획하며 문화적 강국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좋은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 프랑스 술 코냑, 알고보면 영국의 술?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일본 릿쿄(立教) 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0년 전 막걸리 400종류를 마셔보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포털사이트에 제공했다.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전통주 코너를 2년 이상 진행하였다. 최근에는  O tvN의 '어쩌다 어른'에서 술의 역사 강연을 진행하였으며. '명욱의 동네 술 이야기' 블로그도 운영 중이다. 현재는 SBS 팟캐스트 말술남녀와 KBS 제1 라디오 김성완의 시사야에서 <불금의 교양학> 코너에 고정 출연 중이며, 숙명여자대학교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과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에서 외래교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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