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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발칙한 야구이야기] '근거없는 믿음이 불러온 넥센의 참사' 준플레이오프 1차전

기사입력 2015.10.10 22:52
  • 넥센히어로즈 홈페이지 제공
    ▲ 넥센히어로즈 홈페이지 제공
    믿음에는 어떤 식으로든 근거가 필요하다. 왜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믿음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라면 믿음이라기보다는 차리리 요행에 가깝다. 설령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하더래도 마찬가지다. 운이라는 게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 까닭에서다.

    2015 한국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렸던 잠실야구장. 넥센은 8회 초 박병호의 희생플라이로 고종욱을 불러들여 1점을 앞서 나가자 8회 말 곧바로 조상우를 조기 투입했다. 동점을 허용하기는 했어도 6회 말 손승락과 7회 말 한현희를 올린 데 이어 조상우로 이어지는 필승조의 운용은 정석과도 같은 일이었다.

    문제는 조상우의 상태다. 사흘 전인 10월 7일 SK와 벌였던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에서 조상우는 3이닝 동안 49개의 공을 던졌었다. 적지 않은 개수의 공을 던졌고 시즌 내내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넥센으로서는 조상우 없이 경기를 마무리 짓거나 투입하더래도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출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단판 승부도 아니고 5차전까지 예정되어 있으므로 멀리 볼 필요도 있었다.

    이는 넥센 불펜에서 가장 듬직한 믿을맨인 조상우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조상우의 뒤를 받혀줄 만한 투수가 없다는 고민 때문이기도 하다. 조상우가 두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지켜준다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겠으나 만에 하나 동점을 허용해서 승부가 길어진다면 다음 투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손승락과 한현희라는 카드를 이미 써버렸다는 점도 불안한 부분이었다.

    김현수와 오재원에게 안타를 맞아 2사 1-3루 실점 위기에 몰렸던 8회 말에는 정진호 대신 타석에 들어섰던 대타 최주환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 위기를 넘길 때까지만 해도 넥센 벤치의 판단이 맞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9회에 우려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말았다. 특히 오재일을 유격수 플라이로 잡은 후 김재호를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내면서 급격히 흔들린 조상우는 정수빈와 허경민을 연속해서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었다.

    그래도 까다로운 민병헌을 삼진으로 잡아내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김현수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밀어내기 볼넷으로 끝내 동점을 허용하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 이는 단순한 1점이 아니었다. 조상우 뒤를 받혀줄 투수가 없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실점이었다. 조상우는 8회에 16개의 공을 던진대 이어 9회에만 32개의 공을 던져야 했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 출전마저 불투명해졌다.

    넥센은 6회 말 선발 투수 양훈이 실점에 이어 1사 2루 위기에 몰리자 손승락을 올렸었다. 믿음에 부응하듯 손승락은 김현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워 추가 실점을 막아주었다. 7회 말에는 손승락이 정수빈에게 2루타를 맞고 동점을 허용하자 한현희를 올려 허경민을 내야 땅볼로 잡아냈었다. 33개의 공을 던진 손승락의 교체는 타당해 보였지만 그 뒤를 이은 한현희에게 단 3개의 공만 던지게 하고 조상우로 교체한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조상우에 대한 넥센 벤치의 믿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믿음에는 그에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에서 적지 않은 공을 던졌고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활약이 필요한 조상우라면 투입 시기에 대해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했다. 이번 넥센의 결정을 황금알이 들었을 거라는 헛된 믿음으로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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