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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고양이와 나비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4.05.08 06:00
  •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머니날은 1956년에 제정되었는데, 아버지날이 없다는 아버지들의 항의(?)로 1973년 어버이날로 바뀌었다. 다른 나라는 대부분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분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어버이날 하루로 정해져 있다. 

    요즘 부모님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현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어른들에게 적합한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처럼 어버이날도 없었을 당시에는 회갑이 가장 중요한 기념일이었을 것이다. 이때 가장 좋은 선물은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지 않았을까?

  •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김홍도
    ▲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김홍도

    위 그림은 김홍도의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다. 그림의 제목은 ‘누런 고양이가 나비와 놀다’로 의역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양이와 나비가 즐겁게 노는 장면을 실제 상황에서 볼 수 있을까? 

    바위 옆에 패랭이꽃이 피었고, 지나가던 고양이가 뒤에서 날아오는 나비를 의식하듯 뒤돌아보고, 고양이 아래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있는 이 장면을 과연 김홍도가 실제로 보고 그린 것일까? 단언컨대 이 그림의 장면은 실제 상황이 아니다. <황묘농접도>는 화가의 상상력으로 특별한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그 이유는 이른 봄에 피는 제비꽃과 초여름에 피는 패랭이꽃이 함께 그려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찍 피는 제비꽃은 꽃망울로, 늦게 피는 패랭이꽃은 활짝 핀 모습으로 그렸다. 두 꽃이 개화 시기가 다른데도 김홍도가 굳이 두 꽃을 함께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의 주인공은 고양이와 나비이고, 조연은 패랭이꽃과 제비꽃이다. 고양이는 한자로 묘(猫, māo)이고, 모(耄, mào)와 발음이 비슷한데, 모(耄)는 ‘70세’에 노인을 뜻한다. 그리고 나비는 한자로 접(蝶, dié)이고, 질(耋, dié)과 중국어 발음이 같은데, 질(耋)은 ‘80세’에 이른 노인을 뜻한다. 우리말 발음으로 볼 때 ‘접’과 ‘질’은 발음이 다르지만, 중국어로 읽으면 발음이 같다. 그래서 고양이와 나비가 주연인 그림을 <모질도(耄耋圖)>라고 한다. 그 뜻은 70~80세까지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다. <모질도>를 ‘모질게 오래 살아야 한다’고 풀이하는 것도 그림의 뜻을 기억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지금이야 80세가 경로당에서 심부름할 나이지만 100년 전만 해도 80세는 장수의 상징이었다. 

    패랭이꽃은 중국어로 석죽화(石竹花, shízhúhuā)다. 꽃 이름 중에 ‘竹(zhú)’의 발음에 주목해야 한다. ‘축원(祝願, zhùyuàn)하다’에서의 ‘祝(zhù)’과 발음이 비슷하다. 즉 패랭이꽃은 ‘기원하다, 바라다’라는 말을 대신한다. 언젠가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사극에서 패랭이꽃이 청춘을 의미한다고 해설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리고 그림 밑 부분에 제비꽃이 있다. 제비꽃이 마치 ‘세상이 왜 이렇지?’라고 질문을 던지는 모양으로 보인다. 제비꽃은 중국어로 여의초(如意草, rúyìcǎo)다. 그래서 제비꽃은 만사여의형통(萬事如意亨通)을 의미한다.

    김홍도의 <황묘농접도>는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고 오래오래 사시길 축원합니다!”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어버이날 부모님의 건강과 장수를 빌며 <모질도>를 선물로 드리면 어떨까?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