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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왕비를 통해 후사를 얻지 못하다가 후궁인 공빈 김씨를 통해 두 명의 아들을 얻었다. 그 사람이 바로 장남인 임해군과 둘째 아들 광해군이다. 선조는 왕의 직계가 아닌 방계, 즉 서자였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아들이었기에 즉위할 때 많은 반대와 어려움에 부딪혔었다. 이와 같은 열등감 때문인지 선조는 임해군과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세자 책봉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 임해군 VS. 광해군
선조의 장자 임해군과 둘째 광해군
임해군은 선조의 장자로 첫 번째 서열이었지만 서자였기에 장자로서의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정치적인 상황에 많이 노출되었다. 이 때문인지 임해군은 성질이 난폭하여 왕으로서 적합하지 않았다. 반면 광해군은 자질은 충분했으나 장자가 아니었고 역시 서자였기에 선조는 세자로 책봉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공빈 김씨보다는 인빈 김씨를 더 신임하게 된 것도 한 몫 했는데, 선조는 인빈 김씨를 통해 낳은 아들 신성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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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
세자 책봉을 계속해서 미루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신성군은 피난길에 죽게 된다. 또 계속해서 밀고 올라오는 왜군으로 인해 분조(조정을 나누는 것)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더는 미루지 못하고 평양에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게 된다. (현재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세자 책봉 후 파천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후 광해군은 성공적으로 세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임진왜란을 막는데 큰 공을 세운다. 반면 임해군은 왜의 장군 가토에게 포로로 잡히는 등 수모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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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후에 명나라는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광해군이 세자가 되는 것을 반대했고, 적자인 인목왕후의 아들 영창대군이 태어나면서 광해군의 세자 자리는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선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결국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게 된다. 왕이 되는데 있어 많은 반대를 겪은 광해군은 왕의 자리에 오르자 정적들을 숙청하기 시작한다. 장자인 임해군은 교동으로 유배 보내어 살해하고,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유배 보낸 뒤 살해한다.
이처럼 피를 나눈 형제마저 죽이는 잔인한 모습을 보인 광해군이지만 임진왜란 동안 큰 공을 세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임진왜란 발발 후 수세에 몰린 조선이 그려지고 있는 드라마 '징비록'은 이번 주 이순신과 광해군의 활약으로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