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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분명히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지만, 소년과 소녀가 서로를 마주 보며 직진하는 그 감정과는 다른 결이다. 소년은 소녀가 보지 않을 때, 곁눈질로 바라보며 마음을 키웠고, 소녀에게 직접 표현하지 못해 눈물을 보면서도 어깨 한 번 두드리지 못하고 머리 위에 손 우산을 씌워주는 걸로 마음을 표현한다. 간질간질하고 서툰 '그 시절' 진우의 첫사랑은 진영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진영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18살 소년 진우 역을 맡았다. 진우는 첫사랑을 머금은 소년이자,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기에 충분한 소년이다. '진우'를 맡은 진영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통해 공감을 배웠다.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진우의 모습에서 어느새 자신의 '그 시절'을 발견하게 됐다. 그때를 떠올리며 진영은 자신의 학창 시절 사랑 이야기까지 꺼내 왔다. 긴장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에 주저했던 과거의 그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 시절을 지나온 진영의 모습에 '진우'가 더 선명히 비쳤다. -
Q. 영화 '내 안의 그놈' 이후 약 7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감회가 남다른 것 같다.
"오랜만에 영화 작업을 해서 조금 설레는 것도 있었는데, 긴장이 많이 됐던 것 같다. 이렇게 오랜만에 한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스크린에 나온다는 자체가 의미 있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공식 초청을 받아서 처음 다녀왔다. 얼떨떨하고 정신이 없었다. 마냥 즐기지만은 못했는데, 영화가 상영되고 관객과 만나다 보니, 마음이 요동친 것 같다."
Q. 영화의 제목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지만, 사실 영화는 그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 '진우'의 시점으로 전개됐다. 그 소년이 그 자체로 '첫사랑의 아이콘'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저는 '첫사랑의 아이콘'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냥 첫사랑 진행 중인 학생으로만 생각했다. 준비하면서, 제가 어렸을 때 어땠는지, 어떤 감정으로 첫사랑에 대처했는지 등을 진짜 많이 생각했다. 처음에는 진우가 답답했다. 여러 가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저럴까, 표현을 좀 하지'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공감을 잘하지 못했다. 원작을 좋아했지만, 캐스팅된 후에는 원작을 보지 않았다. 캐릭터를 따라 하는 건 '모방' 밖에 안될 거로 생각했다. 감독님과 저를 그대로 녹여서 해보자고 이야기했다. 저에게 활발하면서도 헛똑똑이 같은 면도 있다. 그 이야기를 한 후에 더욱 제 학창 시절을 많이 떠올렸다. 흐릿했던 기억을 되짚어가다 보니, 진우의 모든 행동이 공감되기 시작했다. 그 시절 저도 누군가를 좋아할 때, 말하지 못했다. 결국 끝까지 말하지 못한 적도 있다. '좋아한다'라는 말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그 시절 저를 떠올리니 이해됐다." -
Q. 어떤 면에서 진우와 선아(다현)의 감정선을 이해했을지, 진영의 그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제 첫사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전학 온 친구였다. 그때를 첫사랑으로 하고 싶은 이유는 굉장히 선명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너무 마음에 드는데 말을 못 걸겠더라. 어쩌다가 그 친구의 '버디버디(온라인 대화창)' 아이디를 알아냈다.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오더라. 온라인으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너무 잘 맞았다. 정말 대화를 열심히 했다. '내일 보면, 인사하자'라고 했는데, 다음 날 만나면 눈을 마주쳐도 모른 척하더라. 서로 너무 부끄러웠다. 그게 반복됐다. 결국 '사귀자'는 말도 '버디버디'로 했다. 사귀기로 했는데도 학교에 가서 얼굴을 보면 인사를 못했다. 저희를 답답하게 본 친구 넷이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사귀고 그때 처음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말을 못 했다. 헤어지자는 말도 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않나. 그런데 어릴 때를 생각하면 이런 것도 가능했다. 진우가 너무 이해됐다."
Q. 초등학교 6학년 때, 버디버디에서 이야기하던 친구를 학교에서 만나 곁눈질하던 그 시선이 진우에게 담겨 더 짙은 '첫사랑'의 감정이 되었나 보다.
"표정이나 시선 처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특히 어릴 때는 눈 마주치기도 힘들지 않나. 눈 맞춤보다 '지금 내 상태가 괜찮을까?'부터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이 앞서다 보니, 눈 맞춤이 부끄럽기도 하고, 시선을 피하기도 한다. 중요하게 생각한 표정 중 만족감이 높았던 장면이 있다. 그때가 진우가 선아(다현)에게 호감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좀 이기적이고 자기만 알 것 같은 별로였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놀란 거다. 진우가 선아 옆에서 기마자세로 벌받을 때, 무언가 말을 할 것 같은 성격인데 희한하게 대사가 없다. 선아는 울면서 웃고 있다. 진우가 몰래 선아를 힐끗 쳐다보는데, 그때 그 표정이 저에게 굉장히 중요했다. 정말 진짜로 보이게 하고 싶었다. 그 느낌을 주고 싶어서 욕심났던 장면이다." -
Q. 그렇게 소중했던 선아를 빗속에 홀로 두고 가버렸다. 그때 진우의 감정은 뭐라고 생각했을까.
"진짜 너무너무 유치하지만, 저는 거기에서 진우가 선아에게 또 한 번 고백했다고 생각했다. 고백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왜냐하면, 진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해야 할 말을 잘 못한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너한테 잘 보이려고, 너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거다'라는 말을 한다. 진우에게는 너무 중요한 장면이었다. 유치하고, 작은 것에 질투하고, 실망하고, 그런 게 우리의 청춘이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 같다. 연인도 정말 커다란 문제보다는 작은 문제로 다투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로 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장면이었다."
Q. 영화의 말미 강렬했던 두 번의 키스 장면도 인상 깊었다. 손우현, 다현 배우와 연이은 키스 장면은 어떤 마음으로 임했나.
"그 장면이 코믹하게도 보이지 않나. 거기에서 관객들이 많이 웃으셨다. 충격적이기도 하고. 저도 처음에는 웃었는데, 볼수록 제일 슬픈 장면 같다. 생각해 보면, 진우는 선아에게 '좋아한다'라는 말도 할 수 없던 사람 아닌가. 그 정도로 좋아했던 사람의 결혼식에 가서 축하해주는 것, 정말 힘든 일 같다. 자기가 좋아했던 여자가 '마지막을 추억한다면, 내 남편과 하는 만큼 나랑도 할 수 있다'라고 하는데, 모든 게 폭발했다 싶었다. 그게 정말 선아에 대한 마음 같다. 신랑(손우현)과 키스하는 장면도 있지만, 그만큼의 마음을 담아 선아(다현)와 키스하는 판타지도 보이지 않나. 말하면서도 그 장면이 슬프다." -
Q. 부담감은 없었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너무나 다행히도 다현 씨 팬 분들은 너무 좋은 분들이고, 쿨한 분들이라고 하시더라. 저는 '괜찮을까요?'라고 걱정했다. 손우현 배우님과 키스 장면을 먼저 촬영했다. 먼저 정신이 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다음 다현 씨와 키스 장면을 촬영해야 했는데, 다현 씨가 처음이다 보니 긴장하고 걱정을 많이 하셨더라. '금방 지나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고, 같이 화이팅 해봅시다!'라고 잘 다독이며 진행했다. 저는 현장에서 말을 놨는데, 다현 씨는 절대 말을 놓지 않으시더라."
Q. '그 시절'을 통해 배우 진영의 성장을 발견했는지 궁금하다.
"사실 (진우에게) 공감했다는 부분이 저에게 와닿는 것 같다. 제 작품이고, 제 캐릭터인데, 공감하지 못하면 조금 실패한 게 아닌가 싶다. 그 사람이 되어서라도 공감하며 시작해야 하지 않나. 처음에 저는 진우에게 공감하기 어려웠는데, 이해하려 노력했다. 보통 저는 캐릭터와 입장을 바꿔가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저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진우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돼 조금 더 만족스럽다. 원작이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고, 저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저도 그 작품의 팬이라서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저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내려고 했기에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Q.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OST 작업도 했다. 그만큼 '가수 진영'의 행보도 궁금하다. 올해 음반 계획이 있을까.
"올해 음반을 하나 내고 싶다. 음악을 계속 못 했다. 제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팬분도 계시고, 저도 음악 작업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 작업을 못 해서 아쉬웠다. 이번에는 올해 안에 앨범이나 곡을 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제가 생각보다 욕심이 많아서 검열이 심하다. 약간 트렌디함에서 벗어나면 다시 작업하고 싶어진다. 요즘 워낙 흐름이 빠르지 않나. 그래서 써놓은 곡은 많이 있지만, 잘 다듬고 만들어서 공개하고 싶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