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연꽃과 연잎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4.05.01 07:00
  •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연말연시가 되면 새해의 달력을 넘기며 어느 달에 빨간날이 많은지 찾아보게 된다. 빨간날이 많은 달(月)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긴 연휴가 있는 달을 보면 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마주하면 미소보다 부담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오월의 주요 기념일만 꼽아도 근로자의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처님오신날,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런 기념일도 있었나?’ 할 정도로 생소한 유권자의 날, 식품 안전의 날, 국제간호사의 날, 금연의 날 등도 있다.

    수많은 기념일이 있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까닭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날에는 자녀와 손자 손녀에게 선물을 하고, 어버이날에는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러나 화목한 가정이 아니라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오히려 쓸쓸한 날이 되고 만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하화도(荷花圖)>, 오응정(吳應貞)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 <하화도(荷花圖)>, 오응정(吳應貞) /출처=<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 <연화도(蓮花圖)>, 강세황, 국립중앙박물관
    ▲ <연화도(蓮花圖)>, 강세황, 국립중앙박물관

    위 그림은 모두 연(蓮)을 그린 그림이다. <하화도(荷花圖)>는 중국 청나라 시기 오응정(吳應貞)의 작품이고, <연화도(蓮花圖)>는 조선 후기 강세황의 작품이다.

    하화(荷花)는 연꽃의 다른 이름이다. 즉, <하화도>나 <연화도>나 연꽃을 그린 그림이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꽃이다. 특히 유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받들고, 불교를 천시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연꽃을 그렸다는 것은 연꽃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바로 연꽃이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연꽃의 다른 이름이 하화(荷花, héhuā)이고, 연잎의 다른 이름이 하엽(荷葉, héyè)이다. 이때 연(蓮) 하(荷, hé)의 발음이 화목할 화(和, hé), 합할 합(合, hé)과 중국어 발음이 같다. 그래서 연꽃과 연잎을 그린 그림은 ‘화합(和合)’이라고 읽는다. 조선의 선비들은 연꽃 그림을 감상하면서 화합의 정신을 되새겼지만, 현실은 늘 화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군자는 화합하지만 남의 의견에 동화되지 않고, 소인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의견에 동조하지만 화합하지는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논어(論語)》<자로(子路)>편-라고 하였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혜가 있어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실천할 수 있다. 그래서 가정의 화목이 중요한 것이다.

    연(蓮)을 그린 그림을 집 안에 걸어두고 늘 마주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화목(和睦)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정이 화목하면 사회가, 국가가 지금보다 더 화합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쉬워 보여도 사실 이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집집마다 지지고 볶고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그늘이 있게 마련이다. <연화도>가 의미하는 화합을 생각하면서 그 그늘을 조금씩 지워나가면 좋겠다. 

    가정의 달은 5월이지만, 가정의 날은 언제나 오늘이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