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심형철의 실크로드 기행] #16 파미르 고원으로 가는 길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기사입력 2017.09.29 09:30
  • 백사산
    ▲ 백사산
    카스에서 파미르(중국식 음역은 파미얼(帊米爾), 의역은 총령(蔥岺). 파미르가 먹는 ‘파’와 ‘마루’의 합성어라고 하기도 한다.) 고원의 타스쿠얼깐까지는 약 400여㎞이다. 카스에서 남서쪽으로 중빠꽁루(中巴公路,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물이 마구 달려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는 계곡이 나타난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계곡의 물살이 예사롭지 않다. 5월 말부터 곳곳의 설산에서 녹아 흘러내린 물이 넓은 계곡을 이루며 나와는 반대방향으로 달린다. 같은 풍광에 지루함을 느낄 즈음 눈앞에 맑은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건너편 오른쪽은 초원이고 왼쪽은 흰색 모래로 된 백사산(白沙山)이다. 초원 위에는 말떼들이, 호수 안에는 또 하나의 산이 들어있다. 다시 산길을 따라 가다보니 눈앞에 마을이 보인다. 몇 가구 집들 사이 작은 마당에 타지커족 아녀자들이 모여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밀가루를 반죽하여 파전만한 두께와 크기로 만든 후 화덕 안 벽에 붙여 낭을 굽고 있다. 며칠 동안 먹을 낭을 한 번에 굽고 있는지 광주리에 낭이 쌓여 있다. 낭이 익는 냄새만큼은 정말 향기롭다. 시집살이의 고단함과 남편에 대한 불만도 낭과 함께 화덕에 넣고 굽기 때문이 아닐까?

  • 낭만드는 여인들
    ▲ 낭만드는 여인들
    다시 차를 타고 정상을 향해 출발하였다. 중간에 몇 번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화장실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는 일에 바쁜 나머지 그대로 차에 타기를 반복했다. 그래서인지 호수를 보는 것보다 화장실 가는 것이 더 급해 초조해질 무렵 상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호수가 턱하니 나타났다. 그러나 호수를 보는 것보다 더 급한 일 때문에 차에서 내리자마자 전방 약 100m 앞의 돌로 쌓은 야외 화장실을 향해 내달렸다.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은 것도 용서할 수 있었다. 급한 원초적 생리현상을 해결하자 갑자기 현기증과 함께 등 뒤로 땀이 흐르면서 두 다리의 힘이 빠진다. 아차, 여기가 어딘가. 해발 3,600m의 높이에서 너무 급한 나머지 전력질주를 하였으니. 겨우겨우 식당에 들어가 물을 마시고 한참을 쉰 후에야 평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 카라쿠리호
    ▲ 카라쿠리호
    ‘카라쿠리’는 커얼커즈족 언어이고, 그 뜻은 ‘검은 호수’이다. 따라서 중국어로 표기하는 카라쿠리호는 호수라는 동의어를 반복한 셈이다. 커얼커즈어를 음역하여 한자로 표기했을 때, 뒤에 ‘호(湖)’ 자를 붙이지 않으면 호수라는 것을 알지 못할까 우려했나 보다. 카라쿠리호는 맑고 파랗기만 한데 검은 호수라는 뜻을 지녔다니 참으로 기이하다. 그 원인은 이곳의 지리적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호수 뒤로는 7,509m의 높이를 자랑하는, 빙산(氷山)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무스타꺼 봉우리가 있다. 이 봉우리의 순백색 빙설과 깊은 호수의 색깔이 대조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호수의 이름을 ‘검은 호수’라고 부른단다. 주위의 푸른 초원과 무스타거 봉우리의 빙설, 그리고 호수 안에 비친 또 하나의 거대한 봉우리는 절묘하게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원래 이 호수는 두 개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자매호(姉妹湖)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호수와 관련한 커얼커즈 목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호수 안에 거대한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정오가 되면 심술을 부린다. 물고기가 심술로 몸을 한 번 뒤집으면 호수에는 거센 물결이 일어 배를 띄울 수 없다. 그래서 이 호수를 ‘신호(神湖)’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름다운 호수 카라쿠리호에도 슬픈 전설이 녹아 있다. 호수가 생겨나게 된 전설을 알고 나면 호수의 색깔이 신비하게도 슬프게 보인다.

  • 커얼커즈족 청년
    ▲ 커얼커즈족 청년
    옛날 아름다운 선녀가 이 곳을 지나다가 멋진 청년을 보았다. 선녀는 그 청년에게 반하였고 청년 역시 선녀에게 반하여 둘의 사랑은 깊어만 갔다. 그러나 선녀와 청년의 피 끓는 사랑도 천신(天神)의 반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선녀는 마음의 병을 얻고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끝내 선녀는 죽어 현재의 무스타꺼 빙산이 되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그녀의 눈물에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 카라쿠리호가 되었다.

  • 타지커족 가옥
    ▲ 타지커족 가옥
    근래에는 관광객이 많이 늘어서 일까? 꽤 많은 커얼커즈족, 타지커족들이 다가와 말을 타보라고, 물건을 사라고 따라 다닌다. 더구나 최근에는 무스타꺼 봉우리를 등반하기 위한 사람들이 몰려와 이 호수 주위의 산장을 베이스캠프로 활용한다고 한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면 오염원도 늘어나게 마련인지라 원시상태를 보전할 대책이 필요할 듯하다.

    소년들이 물건을 사라고 조르기도 하고, 기념품 하나쯤 가지고 돌아가 책상 위에 놓고 보면 좋을 것 같아 적당한 것을 골라보았다. 몸체는 붉은 옥과 초록 옥으로 장식하고 뚜껑은 수공으로 세밀하게 동물을 조각한, 아주 작은 세발 주전자 두 개를 구입하였다. 하나를 사면 외로울까 두 개를 사고 보니 마치 원래부터 한 쌍인 듯 잘 어울린다. 작은 주전자에 파미르 고원의 하늘과 바람과 호수를 담아 오랫동안 두고두고 음미해야지. 

  • 장신구 가판대
    ▲ 장신구 가판대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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