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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미묘하게 종합병원에서 저런 분을 마주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바쁜 병원 라이프에 예쁘게 머리를 꾸밀 새 없어, 그냥 냅다 파마머리를 하고 눈에 가리지 않게 질끈 묶어버리고, 일을 야무지게 착착 해내서 계속 눈으로 좇게 되는 사람. 딱, 천장미 같은 사람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는 말 그대로 한국대학교 병원 중증외상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대 출신은 아니지만, 실력만은 드높은 천재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부임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중증외상팀은 위급한 상태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다른 과와 달리 사람을 많이 살릴수록 병원에 적자가 쌓이는 구조로, 병원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환자의 생명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백강혁, 양재원(추영우), 천장미(하영), 그리고 마취과 박경원(정재광)까지의 발걸음에 보는 이들의 응원이 더해진다. -
그 속에서 천장미는 사실상 중증외상팀에서 가장 오래 머무른 인물이다. 대학병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팀이자 가장 바쁘게 돌아가고, 어찌 보면 가장 험한 상황을 가장 많이 마주해야 하는 그 팀에서 5년을 보낸 그는 이미 너무나 단단해졌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중증외상팀에 1호로 합류한 양재원의 고민을 너무나 당연하게 나눈다. 왜냐, 자신도 했던 고민이기 때문이다.
하영은 단단하게 고정한 비주얼만큼, 천장미의 몫을 단단하게 챙긴다. 굳게 다문 입술과 고래고래 소리치는 목청, 가장 오래 중증외상팀에 자리하며 이를 지키고자 하는 모습과 동시에 백강혁의 한 마디에 언제라도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빠른 발은 조화롭게 어딘가 기묘한 천장미 그 자체다. 하영은 화면에 예쁘게 비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에게 늘 가장 중요한 것은 '천장미'가 되어 자리하는 것이라는 듯 화면 속에 위치한다. -
1분 1초가 위급한 환자 앞에서, 당직 끝날 시간을 버텨보겠다고 뭉그적거리는 마취과 의사 앞에서 참지 않는다. 누구 한 명 알아주는 이 없지만, 그가 중증외상팀에서 버텨낸 5년에는 그렇게 살려낸 생명이 있었다. 옥상 환풍구 앞에서 버럭버럭 소리 지르면서 버텨낸 시간이었다. 이를 중증외상팀에 1호로 합류한 양재원(추영우)에게 시범을 보이며 알려줄 때, 그는 선배였다. 모두가 기피하는 중증외상팀으로 양재원을 영입하려는 백강혁에게 "휴머니스트" 조언을 건넬 때 그는 전략가였다. 그리고 백강혁(주지훈)의 빈자리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양재원을 바로 세운 건 "집도의 재원 쌤이에요"라는 천장미의 단단한 한마디였다. 홍일점으로 불릴 수도 있지만, 그는 홍일점보다는 늘 그렇게 '동료'의 어깨를 내어줬다. '중증외상센터'가 그 흔한 러브라인보다 '원 팀'으로 자리하는 건, 그 누구보다 굳건히 자신의 자리에 천장미처럼 존재하는 당찬 하영의 면모에 기반하는 건지도 모른다.
당찬 면모가 때로는 주저하는 때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영은 그 지점을 가장 잘 보여준다. '천장미' 간호사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2022년 방송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두 번째 에피소드인 '흘러내린 웨딩드레스' 에피소드에서도 그랬다. 그는 마지막에 당차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결혼을 해야한다면"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이랑 할 거야"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향한 공포와 죄책감과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떨림이 10초라는 순간에 교차했다. -
시련은 있더라도, 하영은 이를 눈앞에 가장 밝은 사람으로 풀어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 하는 캔디가 아닌,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 그때그때 다른 질감으로 스케치하며, 자신의 두발로 우뚝 서서 말이다. 앞으로 배우 '하영'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하영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학과 출신으로, 지난 2019년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로 데뷔했다. 이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모범형사2', '이두나!' 등의 작품에서 열연했다.
하영의 당찬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리즈 '중증외상센터'는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다.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중증외상센터'는 지난달 30일을 기준으로 '오징어 게임2'을 제치고 TV쇼 부문 전 세계 2위를 차지했다.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멕시코, 칠레 등 19개국에서 1위를 기록한 ‘중증외상센터’는 특히 넷플릭스 최대 가입자를 보유한 미국에서 9위에 랭크되는 등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화제를 모았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