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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 분쟁, 디지털 전환, 경제 질서 재편 등 글로벌 위기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다자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유엔(UN)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5월 28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오션뷰에서 열린 「제20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의 일환으로 ‘현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는 다자협력 증진: 유엔의 가교 역할’을 주제로 한 세션이다.
유엔은 지난 80년간 다자협력의 중심축으로서 국제사회의 공동 행동을 조율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원국 간 이해 대립과 현안에 대한 신속한 대응 부족 등으로 실효성과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번 세션은 중동부 유럽 지역의 대표적 외교안보포럼인 블레드전략포럼과 제주평화연구원이 공동 주관했으며,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다자협력 기구로서 유엔의 지속적인 의의를 살펴보고, 다자주의의 회복과 재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됐다.
이날 토론은 김숙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재단 상임이사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아담 루펠 국제평화연구소 부소장 겸 COO, 멜리타 가브리츠 슬로베니아 외교부 다자·경제외교·개발협력담당 차관,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필립 베르투 주한 프랑스 대사 등 유엔 전문가 4명이 패널로 참석해 다자협력의 쇠퇴와 유엔의 기능 약화를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유엔 개혁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했다.
아담 루펠 국제평화연구소 부소장 겸 COO는 대국 간 분열을 넘어 중소국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전환의 시기에 우리는 모두를 위한 유엔 체제를 재구상하고, 이는 일부 국가만이 아닌 전 인류를 대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기후 위기, 기술 혁신 등으로 대표되는 많은 영역에서 유엔 체제가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음을 언급하며 “이러한 성과는 다수의 유엔 회원국들이 이 체제를 실질적으로 지지하고, 존재 자체에 생존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며, 앞으로 이들의 리더십은 다자주의적 해법과 협력을 증진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멜리타 가브리츠 슬로베니아 외교부 다자·경제외교·개발협력담당 차관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국제법, 국제 인도법, 국제 인권법 등 기본원칙들을 강조하며, “이러한 원칙에 다시금 전념하는 것은 곧 유엔이 다자주의적 세계 협력 질서의 중심이 되기를 원한다는 우리의 의지를 다시 천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의지를 모아 “우리는 지금이 유엔 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중대한 전환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유엔 전체 회원국의 공통된 우선순위에 따라 향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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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거버넌스 강화도 주요 이슈로 제기됐다.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은 유엔 시스템 전체는 일정 수준의 세계 거버넌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유엔 개혁을 통해 세계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가 주권 평등 원칙’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우리는 권력과 인구라는 요소를 고려하면서 국가 간 평등 원칙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런 고민과 함께 ‘세계 시민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가 세계의 미래와 인류의 미래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필립 베르투 주한 프랑스 대사는 허위정보가 넘치는 세계에서 매우 드물게 독립적인 정보 출처로 기능하고 있는 유엔의 가치를 강조하며 “AI, 사이버 공간, 신기술 등 새로운 분야에서 유엔의 목소리는 반드시 필요하며, 유엔은 이 영역에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아무런 규제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유엔 안보리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다만,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국가들이 유엔 헌장의 핵심 원칙을 훼손하거나 바꾸려 하는 움직임이 있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매우 경계해야 한다”는 당부도 전했다.
패널들은 유엔의 역할과 체제의 혁신과 강화에 뜻을 모았으며, 현 시대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함께했다.
- 송정현 기자 hyun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