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리스가 축구하는 이야기'라는 한 줄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런데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재미도 감동도 느꼈고,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생각에 선택한 것 같습니다."
영화 '극한직업'으로 무려 1,626만 명이 넘는 관객을 매료시킨 이병헌 감독이 신작 '드림'을 가지고 관객 앞에 섰다. 먼저 '드림'은 이병헌 감독이 소개한 것처럼, '홈리스 축구단'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굳이 장르로 나누자면, 휴먼 드라마에 가깝고,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은 '이병헌 감독식 말맛'이다.
이병헌 감독은 영화 '스물'보다 먼저 쓴 '드림'의 시나리오를 무려 10년 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 역시 "왜 내가 이렇게 대번에 한다고 했을까. 저도 궁금해요"라고 할 정도로 관심을 갖게된 이야기였다. 축구단의 선수인 홈리스들의 이야기는 직접 인터뷰를 통해 쌓아 올려졌고, 이들에게 다가가는 장치로 축구선수 홍대(박서준)와 다큐멘터리 PD 소민(아이유)를 기용했다. 주연이 조연을 소개하는 이야기, 보통을 향해가는 조금 뒤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병헌 감독이 죽을 때까지 생각날 영화, 그것이 '드림'이다. -
Q. 제작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스물', '극한직업' 등 수많은 '이병헌 감독 표' 히트작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왜 달라졌고, 그 시간 동안 어떻게 달라졌나.
"저는 홈리스가 축구하는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을 거라고 설명이 될 줄 알았는데요. 생각보다 잘 안됐고요. 캐스팅이나 투자에서도 부침이 있었고요. 시나리오는 초고와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실화이기도 하고,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담기도 해서 조금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코미디 허용 범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초고에 많은 부분을 담고, 회의와 모니터를 거쳐 덜어내는 식으로 작업을 하거든요. 분량상 너무 길어지거나,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 등은 거둬내는 작업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초고와 방향성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Q. 캐릭터들을 구축하는 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특히, 사연을 가진 홈리스 축구단이 아닌 홍대(박서준)는 창작된 인물이다. 어떤 고민이 있었나.
"사실 '드림'은 홈리스 축구단 팀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거든요. 그런데 대중영화로서의 재미도 필요했어요. 조연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주연을 만든다면, 어떤 캐릭터가 되어야 할까. 그 고민을 했어요. 홈리스 축구단 선수들은 경기장 밖에 내몰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들을 조명하는 사람들은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경기장 안에 있는 사람이 그 울타리 밖의 사람과 만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최대한 편한 캐릭터를 만들려고 한 것이 홍대였어요." -
Q. 그래서인지, '드림'을 보면서 오히려 이병헌 감독의 작품 중 고유의 색을 덜어내고 대중성 더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일단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드림'의 결말이 정해져 있었어요. 경기 내용이나, 가장 못 하는 팀인 '대한민국'을 현지인들이 응원한 것도 실화거든요. 여기에 제 기교로 엮어 넣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병헌 감독 작품이라는 걸 관객들에게 안 들키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건 어렵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저라는 걸 드러내며 작업을 했는데요. 대중성이라는 건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한다는 뜻이잖아요. 식상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온 가족이 함께 봐도 편하게 볼 수 있거든요. '익숙함을 겁먹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Q. 소민 역에는 아이유를 염두에 두었나. 캐스팅이 결정됐을 때 느낌도 궁금하다.
"소민이는 사실 홍대(박서준)보다 나이가 많은 설정이었어요. 시나리오가 나오고, 캐스팅 회의를 했는데요. 스태프 중 한 분이 리스트업 가장 상단에 아이유를 올려놨더라고요. 이유를 물으니 정말 진심 어린 모습으로 '팬심'이라고 하더라고요. 수긍이 되더라고요. '그렇지, 나도 팬이지. 미친 척 넣어보자. 한다고 하면 수정을 하겠다'라고 하고 제안했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 수정을 했죠. 깜짝 놀란 것도 있지만, 그분이 '드림'의 의미를 알아준 게 고마웠죠. 사실 타이밍도 괜찮아서 내심 기대했거든요. 밝은 캐릭터에 갈증이 있다고 해서요. 캐스팅 확정된 후 너무 좋았죠. 영화 사이즈가 커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
Q. 박서준, 아이유와 작업을 하면서 연기에 놀란 지점이 있을까.
"준비를 너무 잘해왔어요. 평소에 제가 누구에게 먼저 말 걸고 이런 성격이 있는데요. 일적인 이야기를 할 때라도 대화하잖아요. 그들이 그냥 알아서 잘해서 디렉션 할 부분이 많지 않더라고요. 초반 대사 속도가 제 생각과 안 맞을 때, 그 외에는 디렉션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그들도 제 노동력을 줄여줬죠. '이 사람들도 참 잘한다'라고 생각했어요. 고민을 많이 해서 와준 덕분에 현장에서 되게 잘했고, 정말 똑똑하다 싶었어요."
Q. 홈리스 축구단 선수들 캐릭터는 어떤 고민을 가지고 구축했나.
"취재를 통해 나온 사연 중 가장 흔한 사연을 가져다 썼어요. IMF, 빚보증 등 이런 사연들이요. 그러면서도 개별성도 중요했어요. 너무 비슷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캐릭터성을 주는데,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쪽이 도드라 보이지 않게 비중이나, 할당된 시나리오 페이지 계산을 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작업을 했습니다. 사실 거리에 계신 분들은 전체 홈리스로 칭하는 분 중 5%도 안 돼요. 그런 5%의 사람들로 전체 홈리스에 대한 인상이 정해져 버리는 거죠. 201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홈리스 월드컵에 따라가기도 했어요. 한국팀을 응원하면서 같이 밥도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죠." -
Q. 제작하기까지도 어려웠고, 촬영 중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 등으로 인한 부침이 있었다. '킬링 로맨스'로 인터뷰를 했던 배우 이하늬도 "'드림'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라고 하더라.
"해외에서 홈리스 월드컵 촬영을 할 때가 7월이었는데요. 정말 한 달 내내 비가 왔어요. 현지에서 '관측 이래 최초'라는 말을 쓸 정도로요. 아무도 잘못한 게 없는데, 예산이 늘어나니, 그만큼 여유가 없어지더라고요. 그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장면들이 남았고요. 영화 속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찍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준비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도 공을 통제할 수는 없더라고요. 스태프들도 동분서주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있고요. 그 상황에서 감독인 제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있으려고 했어요. 찍다 보면, 장면을 수정하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다 찍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걸 참고 가만히 있는 게 참 힘들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죽을 때도 생각날 것 같아요. '아, 그때 부다페스트에서' 하면서 눈을 감을 것 같아요."
Q. '드림'은 분명 '휴먼드라마'의 느낌이 강하지만,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 코미디'가 빠지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코미디는 어떤 의미인가.
"제가 한 번은 호러 장르를 써봤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하루 종일 사람 죽이는 걸 생각하고,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으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밤에 작업하는데 자꾸 뒤 돌아보게 되고. 사람들이 코미디 영화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런데 박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코미디 영화의 의도는 관객이 한 번 웃으면, 그걸로 된 거거든요. 예술성도 중요하지만, 그건 잘하는 분들이 그런 걸 해주시면 되고요. 저는 관객이 한 번 웃기만 해도 의미를 챙겨가는 거라고 생각해서,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Q. '이병헌 감독 말맛'의 비법 재료가 있나.
"이것도 다양한 것 같아요. 제가 좀 잘 주워듣는 편이고요. 그렇게 주워 듣는 걸 잘 담아서 저장해놓고 '다음에 만들어봐야겠다' 하고요. 최종본보다 초고에 정말 지나치게 많이 쓰고, 수정작업을 하면서 또 많이 덜어내요. 그러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 같고요. 수정하는 시간과 기간이 정말 많습니다."
Q. '드림' 이후 차기작 계획이 있나.
"일단 차기작은 '닭강정'입니다. 그 작품은 원작이 있고요. 아마도 그다음 작품은 제 오리지널이 있는 드라마가 될 것 같아요. 가족 이야기인데, 한 가족의 일대기라고 해야 할까요. 소소한 이야기이고, 엄마와 딸, 남매, 아이들의 이야기인데요. 저는 사실 이번에 좀 잘 썼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대표작으로 삼아볼 만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