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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는 사막 가운데 야자수 몇 그루와 옹달샘이 전부인 그런 만화 같은 곳이 아니다. 거칠고 메마른 황무지를 가로질러 가다보면 도저히 마주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드넓은 녹지대를 만나게 된다. 숲이 있고 밭이 있고 강도 흐르는 곳이 바로 오아시스이다. 오아시스의 면적은 작게는 읍 단위, 크게는 도시만하다. 시안(西安)을 출발하여 서역으로 가는 길에 처음 마주치는 오아시스는 둔황(敦煌)이다. 광활하지만 쓸모없는 땅 고비사막 위의 거대한 오아시스 둔황에 도착하여 모래산인 밍사산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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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사산(鳴沙山)은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라 동서로 40㎞, 남북으로 20㎞에 걸쳐 분포한 모래 구릉을 모두 지칭한다. 자료에 의하면 가장 높은 곳이 약 1,650m라고 하지만 지면 자체가 고지대이기 때문에 실제 모래 산의 높이는 300m 남짓하다. 밍사산은 한자로 ‘鳴沙山’이지만 간혹 ‘溟沙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전자는 모래가 울음소리를 낸다는 뜻이고 후자는 물이 절대 부족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니 둘 다 지역의 특성인 모래와 연관이 깊다.
밍사산의 일출은 바다와는 또 다른 장엄함과 신비감이 있기 때문에 새벽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입구에 몰리지만 제대로 된 일출을 보기란 쉽지 않다. 이방인에게 밍사산의 가장 커다란 묘미는 낙타를 타고 모래 능선을 따라 모래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장 높은 모래 언덕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모래 능선을 바라보며 모래 바다의 파도를 감상한다. 모래 파도 밖으로 오아시스 도시 둔황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발바닥을 간질이는 모래를 느끼며 능선 하나쯤 걸어보는 것도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다. -
질리도록 모래 숲을 헤매다 돌아오는 길에 초승달샘을 굽어볼 수 있다. 모래 산과 모래 산 사이에 아늑히 자리 잡은, 돋아나는 달 모양의 작은 호수 월아천(月芽泉). 어찌 그리 이름과 모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지 직접 본 사람은 모두 감탄하고 만다. 갈대와 풀꽃들은 샘의 곡선을 따라 둘러친 울타리 같기도 하고, 햇빛에 반사될 때에는 달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초승달의 움푹한 호선을 끼고 들어앉은 월아산장(月芽山莊)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월아산장은 제법 오래된 티가 나기도 하지만 사실은 최근에 새로 조성한 건축물이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샘 주위에는 몇 가구의 농민이 살고 있었다. 둔황시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샘물의 양도 점점 줄어들자 샘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농민을 쫓아내고 관광객을 의식하여 그럴듯한 산장을 지은 것이다. 월아천 옆에는 인공호수를 조성하고 줄어드는 샘물을 보충하고 있다.
초승달샘을 바라보며 썰매를 타고 가파른 모래 언덕을 내려오는 기분도 참 상쾌하다. 썰매라는 것이 공사판에서 사용하는 판자 같아 미덥지 않지만 가속도가 붙으면 제법이다. 타는 사람마다 예상 밖의 썰매 속도에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좋아한다. -
쌓아 놓은 모래 산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사람이 지나가기 전의 모래 능선은 칼처럼 날이 섰지만 지나간 자리는 평평한 길이 되고 만다. 더구나 모래 썰매를 타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모래 산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사람이 발길이 잦아질수록 모래 산은 사라지고 평탄한 지면으로 바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자연의 오묘함은 이런 나의 생각을 기우로 만들었다. 밍사산에 밤이 찾아오면 바람이 밑에서 위로 불기 때문에 낮 동안 흘러내린 모래를 다시 추슬러 원위치로 올려놓는단다. 갑자기 잊혀진 제목의 소설이 떠오른다. 절망을 안고 인생의 끝을 찾던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밍사산을 여행하면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는 얘기는 매일 밤마다 모래를 다시 올리는 이곳의 바람 때문이 아니었을까?
인생이 이곳의 모래처럼 언제나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면, 이곳의 바람 같은 벗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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