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

[심형철의 실크로드 기행] #1 실크로드에 가다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기사입력 2015.10.14 10:32
  • 실크로드, 그곳에는 모래를 먹고 덮고 자는 사람, 보잘것없는 한 끼의 식사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 초원 위에서 홀로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는 사람, 당나귀 수레에 앉아 졸고 있는 사람, 낯선 이방인에게 나이차(奶茶)를 내어주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한 잔 술과 음악에 취해 한(恨)을 노래하고 신명나게 춤을 추는 사람도 있다. 거대한 풍력발전소와 꺼지지 않는 유전의 불꽃이 있는 곳도 실크로드다.

    중국 사람들은 말한다. 중국의 과거를 보려면 서안에 가고, 현재를 보려면 북경에 가고, 미래를 보려면 상해에 가라. 그러나 나는 이렇게 권한다.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보고 싶으면 실크로드를 따라 가라.

    실크로드는 동아시아, 서아시아를 거쳐 지중해까지 연결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역통로이다. 실크로드라는 멋진 이름은 중국의 비단이 전파된 길이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Ferdinand von)이 명명하였다.

  • 서역으로 떠나는 장건 조각상
    ▲ 서역으로 떠나는 장건 조각상
    처음 실크로드가 개척된 목적은 상업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다. 한(漢) 무제(武帝)가 북방의 흉노족(匈奴族)을 몰아내기 위해 당시 중앙아시아의 따위에쓰(大月氏)와 연합하려고 장건(張騫)을 파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장건은 현재 실크로드의 대부분을 개척하였는데, 그의 활약은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즉, ‘장건이 있어 실크로드가 개통되었고, 서역(西域)의 통일은 장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후 실크로드는 중국과 서역, 인도, 페르시아, 유럽,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이 교역되는 무역 통로가 되었고,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4대 발명품인 비단과 양잠기술, 제지술, 화약, 나침반 등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또한 동서양의 문화를 상호 이해할 수 있는 신천지가 열리게 되었다.
  • 실크로드의 출발지 안정문
    ▲ 실크로드의 출발지 안정문
    실크로드의 출발지이자 종점인 시안(西安)은 천 년의 고도답게 고색창연(古色蒼然)한 빛이 감도는 곳이다. 세계의 중심이 유럽이 되기 이전까지, 적어도 8세기까지 창안[長安, 시안의 옛 이름]은 세계의 중심이자,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 가장 번영했던 당나라 때, 창안에 상주하는 외국인이 2만 명을 넘었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창안은 세계를 포용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 있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그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활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줄 알았던 당나라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분명 실크로드와 연결되어 있다. 창안은 서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의 출발지이자 종점이기 때문에 문화의 전파자인 동시에 문화의 수용자이기도 하다. 중국인의 잠재의식 속에 깃들어 있는 유교와 도교에서부터 불교, 유대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가 허용되었고, 이민족과의 통혼도 배타적이지 않았다. 문화는 물과 같아서 고이면 썩게 마련이다. 문화는 흘러들어와 섞이고 다시 흘러나가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진리를 고도 창안에서 보았다.
     
    실크로드를 답사하기 위해 제일 먼저 시안을 찾은 이유는 진시황의 병마용을 보기 위해서도 당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 놀음한 별장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 이유는 실크로드의 첫걸음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시안의 성문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안정문 통로
    ▲ 안정문 통로
    아침 일찍 안정문(安定門)을 찾았다. 안정문은 시안의 서대문으로, 현재의 성문은 당나라 때 지어진 것을 명나라 때 성벽을 확장하면서 전보다 남쪽으로 약간 이동한 것이다. 안정문에는 서역의 안태강정(安泰康定)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안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안정문을 통과하며 실크로드 답사가 안전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였다. 그리고 서안 시내에 있는 실크로드의 개척자 장건이 한무제가 하사한, 밀사임을 밝히는 깃발을 펄럭이며 말을 타고 서역으로 출발하는 조각상을 찾았다. 이 역시 그가 험난한 여정을 극복하고 귀환했던 것처럼 성공적 답사를 기원하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 여행을 떠나기 전 심형철 박사
    ▲ 여행을 떠나기 전 심형철 박사
  • 중국 민족학 박사 심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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