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케어의 흐름은 예측과 조기 개입으로 이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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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병원에서’라는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 헬스케어 기술은 일상 속 데이터에 기반해, 병원 밖에서도 개인이 직접 건강을 관리하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5월 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막을 연 ‘Reha·Homecare 2025’에서는 병원 안에서의 진료를 넘어, 일상 속에서 조기에 건강 문제를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기술이 공개됐다. 예측 의료, 운동 보조, 자가진단 기기 등 ‘병원 밖 건강관리’ 흐름의 현실화를 앞당길 첨단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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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은 2023년 기준 6조 4,930억 원 규모로 성장했으며, 전년 대비 13.5% 증가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분야는 전체 산업 매출의 25.8%를 차지할 만큼 급성장 중이다. 이는 건강관리의 패러다임이 병원 중심에서 일상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번 전시에서 확인된 주요 트렌드는 ▲단일 기능에서 통합 플랫폼으로의 확장 ▲병원 중심에서 일상 기반 관리로의 전환 ▲단순 기록에서 예측 중심 데이터 활용으로의 진화다. 특히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기술 설계가 많았다는 점은, 디지털화의 방향성이 실질적 문제 해결에 맞춰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밀 분석 기반의 운동처방: 병원 밖에서도 실현되는 개인 맞춤
한국신체정보의 ‘Real PT’는 신체 균형 검사, 체형 분석, 운동 각도 측정을 통해 개인 상태를 정밀 진단하고 맞춤형 운동을 처방하는 솔루션이다. 검사-처방-이력 관리를 하나의 시스템 내에서 수행할 수 있으며, 일부 운동 콘텐츠는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다. 균형 감각, 체형 왜곡 등 운동 전 기초 데이터를 축적함으로써, 예방 중심의 운동 처방 도구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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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스템은 3D 카메라 기반의 비접촉 측정으로 신체의 정렬 및 가동 범위(Range of Motion, ROM)를 분석하면, 인공지능(AI)이 사용자 특성에 맞는 운동을 제안한다. 척추 정렬 이상, 무릎 관절 비대칭 등 문제를 조기에 파악해 병원 진료 이전 단계에서 선별 개입이 가능하다. 또한 반복 측정을 통해 운동 강도와 방향을 자동 조정함으로써, ‘검사-처방-이력관리’를 하나의 루프로 통합한 정량적 운동 처방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는 이 시스템이 향후 예방적 건강관리 영역에서 병원 밖 운동 처방의 실용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이픽셀의 AI 운동 코칭 앱 ‘엑서사이트 케어(EXERCITE CARE)’는 2,200여 개의 운동 동작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자세를 실시간 분석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한다. 병원 EMR(전자의무기록)과의 연동 기능은 단순한 운동 코칭을 넘어, 병원 내 데이터에 기반한 개인 맞춤형 운동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병원에 의존하던 건강관리 방식을 일상 속 자기주도형 관리로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사례다. 해당 제품은 현재 세종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도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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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기술은 정밀 진단과 맞춤 피드백을 통해 일률적인 운동 프로그램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로, 예방적 운동 처방의 기반을 제공한다. 임상적 정확성 검증, 사용자 편의성, 의료기기 인증, 제도 연계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지만, ‘기록’에서 ‘예측’으로, ‘진단 이후 대응’에서 ‘일상 속 조기 감지와 자가 관리’으로의 전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자가 진단 기술의 디지털 전환: AI와 앱으로 관리되는 일상 건강
운동뿐 아니라 자가 진단 기술 역시 디지털화를 통해 일상에 접목되고 있다.
픽셀로는 AI 기반 시기능 진단 키오스크를 통해 시력, 황반변성, 조절력 등을 분석하고, 전용 앱과 연동해 결과를 제공한다. 의료기기 인증을 받은 해당 제품은 질병 진단이 아닌 시기능 선별 목적의 보조 도구로 공공기관에도 적용되어 있다. 이 기술은 노령층과 학생 등 시기능 조기 발견이 중요한 집단에 특히 유용할 수 있지만, 대중적으로 활용하려면 예산 확보, 실효성 검토 등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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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휴먼헬스케어는 자가 소변검사 키트를 앱과 연동해 검사 결과와 이력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는 단순 키트를 ‘히스토리를 갖춘 관리 도구’로 확장한 사례로, 정기적 검진이 어려운 이들에게 실용적 대안을 제공한다. 고령층과 만성질환자뿐 아니라 향후 학교 보건 프로그램 등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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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자가 진단은 혈압계나 혈당계에 집중되어 있으나, 이러한 디지털 전환 기술은 새로운 일상 건강 관리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앱 기반 이력 관리는 사용자 맞춤형 건강 관리의 가능성을 넓힌다.
과기정통부의 ‘2024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94.4%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으며, 건강 관련 앱 사용 경험도 2021년 11.4%에서 2023년 18.8%로 증가했다. 이는 전통적인 디지털 취약계층으로 여겨지는 고령층에서도 자가 진단 기술의 수용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제품이 실제 확산하기 위해서는 사용성(UX) 개선, 정확도 확보, 사용자 교육 등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복합 플랫폼과 기술 융합: 일상 데이터의 통합 관리 가능성
이번 전시에서는 단일 기능에 초점을 맞춘 기존 기기에서 나아가, 다양한 기업의 기술을 통합한 플랫폼형 솔루션도 소개됐다. 단일 기능 중심의 기기에서 벗어나, 사용자 맞춤형 건강 관리를 지향하는 복합 솔루션으로의 전환이 점차 가속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Life Care 360’은 자세 교정, 약물 복용, 생체 모니터링, 수면 분석 등 다양한 건강 관리 기능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한 융합형 솔루션이다. 이 제품은 김해의생명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김해 의료기기산업육성 클러스터’ 사업의 일환으로 5개 기업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 공동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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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참여사 중 하나인 제윤메디컬 관계자는 “복약 알림과 생체신호 모니터링 기능을 하나의 홈게이트웨이에 통합해, 고령층이나 만성질환자들이 별도 기기 조작 없이도 비대면 모니터링과 화상 협진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대면 모니터링 기능은 현재 관련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활용할 수 없다.
이처럼 플랫폼화된 기술은 다양한 센서 기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연동해, 이를 통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더욱 포괄적인 건강 관리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영양과 체성분까지: 데이터 기반 건강 예측으로의 확장
디지털 진단 기술의 확산은 영양 및 체성분 분석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알고케어는 IoT 디스펜서를 통해 건강검진 결과와 복약 정보를 반영한 개인 맞춤형 영양소를 자동 분배하고, 앱으로 복용 이력을 관리한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정교화 흐름 속에서, 복약 이력 관리라는 차별화 요소가 주목된다. 현재는 기업 복지용 B2B 모델로 운영 중이며, 향후 B2C 확장은 정밀 데이터 기반 개인화와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복약 지속률, 사용자 편의성 등 실증 평가도 확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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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바디는 기존 체성분 분석 기술을 기반으로 근감소증 진단, 평형 감각 측정 등 기능을 확장 중이다. 최근에는 일부 가정용 기기와 앱 연동 모델을 출시하며, 병원 외부에서도 자가 건강관리를 시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3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89.6%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상당수가 근감소증 위험군이다. 근감소증은 삶의 질 저하와 낙상 사고와도 밀접해 조기 관리가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성분 분석 기술은 병원 외부의 자율 건강 관리 도구로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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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헬스의 미래, 가능성과 과제
이들 기술은 정밀 분석과 개별 피드백을 통해 기존의 획일적인 운동 프로그램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려는 접근이 인상적이다. 이는 단순한 디지털화가 아닌, 의료 접근성 제약과 만성질환의 조기 대응 같은 실질적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기술적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다만 기술 간 연계, 데이터 정확성과 보안, 제도적 규제, 경제성 등은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한 제품들이 산업 전체를 대변하진 않지만, ‘데이터 중심의 건강 예측’이라는 흐름과 패러다임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기에 의미 있는 사례였다.
건강 관리가 병원 중심에서 일상 중심으로 옮겨가는 지금, 진화하는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수용성 향상과 함께 이를 사용하기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향후 2~3년 내에 디지털 기반 자가 건강 관리 기기의 인증 기준 정립, 병원 시스템과의 데이터 연계 표준화, 고령층 사용자의 디지털 접근성 개선 정책 등이 핵심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 헬스케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만큼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실질적 활용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