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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을 하든 간에 제가 생각하는 건 일단 대본이 원하는 것, 그것밖에 없어요. 저는 특출나게 잘 하는 부분도 없고, 대본이 원하는 게 이거라면 그냥 그거 충실히 하는 게 연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강하늘의 연기를 보면 '그가 아니면 누가 해낼까'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만큼 캐릭터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배우다. 특히 강하늘은 코미디가 곁들여진 생활 연기의 강자다. 그는 오랜만의 로맨틱 코미디 작품 '30일'에서 자신의 강점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
영화 '30일'은 서로의 지질함과 똘기를 견디다 못해 마침내 완벽하게 남남이 되기 직전 동반 기억살싱증에 걸려버린 '정열'(강하늘)과 '나라'(정소민)의 코미디를 담은 영화다. 지난달 25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강하늘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강하늘은 '30일'에서도 디테일한 코믹 연기를 펼쳤다. 지질하면서도 짠한 정열의 모습은 웃음과 공감을 유발했다. 유독 현실에 발붙인 코미디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 큰 사랑을 받은 강하늘은 '30일'에서도 자신이 잘 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이런 부분 때문에 작품을 선택한 것인지 묻자, 강하늘은 자신의 징크스를 언급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하나예요. 저는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으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징크스라면 징크스죠. '30일'도 그래서 만난 작품이었어요. 대본은 어느 정도의 뼈대라고 생각하는데, 재밌게 잘 짜여 있다 보니까 '이 작품은 찍을 때도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더 하면 더 재밌겠다'하는 생각으로 참여했어요."
"저는 그냥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하는 것만이 연기자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그게 연기자의 몫이라고 생각을 해요. 전 작품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드렸으니까 이번엔 이렇게 해야지, 이런 식으로 작전을 짤 수 있는 머리가 안되거든요.(웃음) 겹쳐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스토리를 들려드리는 게 먼저 아닌가 싶어요." -
이번 작품에서는 8년 전 영화 '스물'에서 만났던 정소민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30일'에선 더 진한 러브신을 소화하기도 한 강하늘은 정소민과의 호흡 덕에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경험을 쌓은 두 사람이기에 서로를 바라보며 대견하기도, 안도하기도 했다.
"'스물' 때도 소민이와 정말 재밌게 찍었고, 이번에 다시 보니까 좋고 편한 것은 기본이고 더 이상 친해져야 할 게 없었어요. 너무 친하게 찍었지만 개인적으로 기분 좋았던 게, 소민이도 나이를 들어가면서 뭔가 모를 여유와 연륜 같은 게 묻어나는 부분이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소민이에게 현장의 여유로움이랄까, 그런 걸 배웠죠. 쫓기듯 하는 느낌보다 진득하니 그 현장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나 '스물' 이후 '30일'로 만난 두 사람. 우연찮게 20대에 이어 30대에서 재회했다. 다시 한번 만난다면 어떨 것 같은지 묻는 말에 강하늘은 다음엔 로맨스 말고 다른 장르에서 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소민이를 작품에서 또 만난다면요? 그 정도면 유니버스를 이어가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웃음) 다음에는 '40일 후' 이런 거로 해서 좀비물, 생존물 같은 장르에서 만나봐도 재밌을 것 같고요." -
'30일'은 가장 뜨거운 연애를 했던 두 남녀가 결혼 후 어떻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는지, 그리고 동반 기억상실 후엔 또 어떻게 사랑의 마음이 싹트는지를 그린다.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지만, 소소한 비틀림과 서운함이 쌓여 이별을 만든다. 정열과 나라가 이별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은 여느 연인의 모습이었다. 강하늘 역시 자신의 과거 연애사를 떠올리며 정열의 감정을 찾아갔다.
"'30일'을 연기하면서 과거 연애를 떠올리며 했던 부분도 있는데, 특정 상황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과 이미지를 참고했어요. 누구나 상대를 배려하는 것보다 점점 자기 욕심이 강해질 때가 있잖아요. 과거를 돌아봤을 때 저도 그런 부분에서 과거 연인에게 실수했던 것 같아요. 내가 모자라서 더 배려하지 못한 게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정열이가 나라에게 가지고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했죠. 정열을 보면서 과거 제 모습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
강하늘은 원래 승부욕이 없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운동 경기에서 왜 이겨야 하는지 궁금증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농구나 축구도 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그는 이겨야 한다는 욕망에 먹이를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성격 덕에 강하늘을 '미담 제조기'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강하늘은 수식어에 대해 "부담스럽기보다는 감사하지만 제가 착해서 그런 말을 듣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신을 덧붙였다.
"제가 볼 때는 저 그렇게 착하지 않아요. 하하. 그냥 현장 갈 때는 목표가 딱 하나에요. 모두가 시간을 내서 만나는 건데 웃을 수 있는 시간이면 좋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생활하는 거죠.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편하게 '착하다'고 표현해 주시는 것 같은데, 저는 착하다기보다는 함께 있을 때 재밌는 사람으로 있고 싶어요."
"사람들이 또 오해하고 있는 게, 저에게 '참으면 병 나'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참는 게 아닌데, 잘못 알고 있는 분이 많아요. 전 그저 감정에 동요가 잘 없는 편이에요. 변수가 생기면 오히려 재밌고 '이렇게 흘러가네'하는 맛이 있다고 생각하죠. 저는 완벽주의적 스타일이 아닐 뿐이죠. 그냥 전 까탈스럽지 않은 애에요. 많은 분들이 그런 점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
2007년 데뷔한 후 드라마와 스크린, 연극까지 장르를 오가며 달려온 그다. 배우로서의 욕심보다 '그저 캐릭터로 보이고 싶다'고 말한 강하늘은 이 쉼 없는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원동력을 물었고, 강하늘의 대답에선 몸에 밴 겸손함이 묻어났다.
"저에게 원동력은 따로 없어요. 그냥 저도 휴가가 필요해요. 있을지 모르는 휴가를 위해 그냥 일하고 있는 거죠.(웃음)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아서 제가 계속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것보다도 저는 정말 운이 좋아서 된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겸손 떠는 게 아니라 정말요. 운이 닿아서 이렇게 꾸준히 작품을 하고 있구나, 나에게 운이 닿고 있구나라는 생각이죠."
- 이우정 기자 lwjjane86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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