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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배우 장률을 보게 된 것은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 네임' 속에서였다. 그 속에서 그는 '잔혹'이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그려냈다. 그런 그가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 속에서 정신의학과 펠로우 3년 차 황여환 역을 맡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맡은 것은 '여환 쌤'이지만, 그는 제자에게 설명해 주듯 적당히 친절하게 정신과 병동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주며 문을 열어준다. 이어 다양하게 얽힌 등장인물들과의 관계성으로 한 걸음 더 시청자들의 손을 작품 속으로 이끈다. 각자의 아픔을 가진 '정신병동'에서 그 아픔을 품어내는 법을 머리와 가슴으로 알아가며 성장하는 인물이다.
장률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 대본을 보고, 많이도 울었다. 하루는 한 6시간 정도를 울기도 했다. 마음이 아팠다. -
"제가 정신을 차려야 했어요. 이 이야기에 너무 이입해서 여환이 아닌 '인간 장률'로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이 이야기를 전달할 수가 없잖아요. 제작진분들께서 강남 성모병원 정신의학과에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주셨거든요. 그때 선생님 한 분을 붙잡고 물어보며, '빨리 친해져야겠다' 싶었어요. 그분과 번호도 교환해서 자문도 구하고 했거든요.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의사로서의 애티튜드를 더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6시간 운 날도, 전화해서 여쭤봤어요.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울어도 되나요'라고요."
장률을 6시간이나 울게 했던 에피소드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남겨졌다'라는 제목의 7화였다. 극 중 아기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게 된 준기(김대건)의 사연을 눈물 없이 들을 자신이 없었다.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을 이야기하는데, 그걸 들을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될까 싶고요. 의사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많이 슬프면 우셔도 됩니다'라고 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 의사도 사람이고, 결국 사람이 먼저지'라는 생각을 해나가기 시작했어요. 의사로서의 중심과 인간 장률로서 가진 사람의 시선을 잘 섞어서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도 걱정이 많이 됐어요. 아쉬웠던 지점도 있고요. 그래도 서른셋 장률이 바라본 '황여환의 순간'을 저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저 자신을 칭찬해 주려고 하고 있어요." -
'황여환의 순간'에 대해 장률은 고민했고, 그 고민을 찾은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황여환을 만들어준 것은 자신의 과외 학생이었던 다은(박보영)이었고, 절친한 친구 동고윤(연우진)이었고, 사랑하는 들레(이이담)였고, 동료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환자들이었다. 사람들의 '관계'에 집중했다.
"여환이라는 인물은 관계성 안에 존재하는 인물이거든요. 인물과 인물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기도 하고요. 시청자들이 여환을 통해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수도 있는데요. 그 부분에서 관계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또 작품 속에서 만난 배우들과 그 에너지가 너무나 잘 생성돼 좋았어요. 정말 좋은 인연을 만나서 작업한 것 같아요. 행운이죠."
장률은 행운의 한 에피소드로 '연우진'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 장률에게 절친 사이로 등장하는 황여환과 동고윤은 숙제였다. 절친한 모습을 보여주려면, 연우진과 가까워져야 할 것 같았다. -
"세트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 (연우진) 형이 보여서 용기 내 다가갔어요. '저희 친한 친구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연우진) 형이 '좀 걸을까?'라고 하시더라고요. 같이 걷는데 바로 어깨동무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런 게 아닐까'라고 얘기해주셨어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 그 신체 언어가 주는 힘이 어마어마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어떻게 연기를 해야 친해 보일까'라는 제 고민이 다 무너졌어요. (연)우진 형과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친한 친구가 그렇잖아요. 뭐든지 이야기할 수 있고, 함께할 수 있고. 그 순간, 그런 마음이 피어났어요."
박보영이 맡은 다은 역과의 전사도 있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는 내과에서 3년 차 간호사였던 다은이 정신의학과 간호사로 전과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정신의학과 펠로우 3년 차인 여환은 사실 다은의 과거 과외 선생님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에 살짝 두 사람의 러브 라인을 기대하게 했다. 장률은 "사실 과외하는 듯한 연기를 할 때가 가장 쉬웠어요. 제가 어릴 때, 저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과외 선생님의 눈빛이 바로 떠올라서요"라고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
"저도 대본을 읽으면서 '뭐지? 깊은 관계?'라는 생각했는데요. 바로 1부에서 과외 선생님이었던 게 밝혀지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웃음) 정말 다은이와의 관계를 조명한 것 같아요. 과외 선생님이니까 다은이의 기질을 어느 정도 알고 있잖아요. 다은이를 빛나게 하는 기질로 인해 정신과 병동에서 아플까 봐 걱정을 해주는 마음으로 이해했습니다. 카페에서 설명해 주는 장면이 '우리 드라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거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집중해서 찍은 것 같아요. 촬영 초반 찍었는데요. 박보영 배우가 너무 잘 이끌어 주어서요. 믿고 신뢰하며 그 장면을 찍었어요. 박보영 배우 덕분에 이 작품의 분위기와 결 등이 안착하게 된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여환을 가장 성장하게 한 사람도, 여환이 가장 성장시킨 사람도 바로 민들레(이이담)였다. 금수저 집안의 막내 여환은 가정 환경의 차이로 자신을 밀어내는 들레에게 계속 다가간다. 장률의 말처럼 "넘쳐나는 마음"이 들레를 바라보는 여환의 모습에 가득 담겼다.
"여환이 싫은 이유가 교집합이 없다는 지점이잖아요. 현실은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왜 이렇게 빛나는 사람이, 너무나 멋진 들레라는 인물이, 자존감이 없을까'라는 점이 여환에게 궁금했을 것 같아요. 하나하나 들레에 대해 알아가며, 들레가 가진 방어 기제를 이해하고, '샌드위치 정도는 내가 사게 해줘요'라는 여환의 말처럼 가장 소박한 것부터 들레를 채워주고 그 곁에 있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
'마이네임'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각인시킨 장률은 사실 매체에서 선보이는 키스 장면이 처음이었다. 연극 무대 위에서 키스 장면을 선보인 적은 있었지만, 촬영을 통해서 하는 건 첫 경험이기에 더 떨렸다. 다른 연기는 연습을 할 수 있지만, 키스 장면은 연습을 할 수 없기에 제작진들에게 처음을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저 처음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감독님도 스태프분들도 '이 친구 처음이구나, 많이 도와줘야겠다'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을 앞에 모셔놓고 연습했어요. '이렇게 할까요?' 여쭤보면서요. 막상 촬영할 때는 오직 들레에게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서툴지만 두 사람의 조금씩 시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따뜻하게 잘 그려진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실 연애에 있어서만큼 여환은 어찌 보면 '판타지'같은 인물이었다. 겨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들레는 간호사가 아닌 자신의 꿈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디딘다. 그리고 여환은 그 꿈을 박수치며 응원한다. 과연 장률이라면 연인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을까. 장률은 "저는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 같아요. 연기를 하며 살고 있고, 계속 꿈을 꾸는 직업이기 때문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들레의 꿈을 응원하는 여환의 마음은 너무 이해가 잘 됐어요. 들레가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연습실 앞에서 여환은 그걸 알아챘을 거예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야 할 곳이 저기구나"라고 이야기하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습실 밖에서 들레를 바라보던 여환의 모습이 떠올라 갑자기 흘린 눈물이었다. -
"갑자기 그 감정이 떠올랐어요. 그때도 그 장면에 담길 마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임했거든요. 들레를 바라보는 여환의 시선이 어떨까. 관객들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끔 연기하기 위해 집중했던 것 같아요. 여환은 미안해하는 들레를 보면서 웃게 하잖아요.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여환은 정신의학과 의사로 환자를 보듬으며 자신도 함께 성장해 간다. 과연, 장률도 그렇게 자신을 잘 보듬으며 성장해 나가고 있을까.
"저는 자기 검열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하루하루 보내며 어떤 사람과 어떤 대화를 했고,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많이 꺼내서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바라보려고 한 것 같은데요. 이제는 긍정적인 감정도 많이 꺼내놓고 보려고 해요. 제가 한 2년 전쯤 제 방에 큰 화이트보드를 두었거든요. 그 보드가 여러 역할을 해요. 거기에 대사를 적을 때도 있고, 제 감정들을 나열해 나가요. 그걸 보면 '내가 이렇게 사고하고 있구나'라는 게 좀 객관적으로 보여요. 그러고 나면, 바로 지워요. 예전에는 생각의 꼬리를 물어서 밤에 잠을 잘 못 잤어요. 한두 시간 자고 촬영장에 가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 보드 덕분인지 이제 잠도 잘 잡니다." -
장률의 차기작은 '춘화 연애담'이다. 제목부터 '연애담'이 들어가는 로맨틱 드라마다. 과연 장률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
"이 작품은 로맨스 사극이에요. 휴먼 힐링 드라마에서 보여준 멜로에 이어 진짜 로맨스 장르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사극이라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열심히 촬영 중이니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