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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배터리 음극 소재 후보로 꼽히는 ‘실리콘’이 겨울철 저온 환경에서 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이현욱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팀이 실리콘의 온도별 충·방전 특성을 분석한 결과 낮은 온도에서 쉽게 깨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12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최근 국제학술지 ‘나노 레터스’에 소개됐다.
실리콘은 상용화된 음극재인 흑연보다 10배 정도 용량이 커 고용량 배터리 소재 후보로 꼽힌다. 하지만 충전과 방전을 반복할수록 팽창하면서 단일 입자와 전자가 파괴된다는 단점이 있다. 깨진 표면을 따라 고체 전해질 계면이 형성되면 리튬 이온 전달이 느려진다는 문제도 있었다.
이현욱 교수는 “실리콘을 차세대 음극재로 쓰려면 부피 팽창으로 인한 구조적 안정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라며 “이번 연구에는 온도별로 실리콘 음극재의 부피 팽창과 파괴 거동을 분석해 실리콘의 구조적 안정성 개선안을 찾고자 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방향성이 다른 3종류의 단결정 실리콘 웨이퍼에 전자빔으로 다양한 지름의 실리콘 나노 기둥을 제작했다. 나노 기둥을 중심으로 배터리 셀을 조립했고 여기에 전기를 충‧방전하며 리튬과 실리콘 웨이퍼의 전기화학반응을 살폈다. 그 결과 실리콘 웨이퍼의 결정면 방향에 따라 각 나노 기둥은 리튬 충전 후 서로 다른 부피 팽창 거동을 보였다.
제1저자인 염수정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연구원은 “실리콘 결정면의 특징에 따라 각각 둘, 넷, 여섯 방향으로 팽창하는데 저온이나 상온 이상의 환경에서는 다른 특성을 보였다”며 “높은 온도에서는 부피 팽창의 방향성이 줄어들고 0℃ 이하에서는 팽창 방향성이 증가해 나노 기둥이 쉽게 파괴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영하 20℃ 이하의 저온 환경에서 리튬 충‧방전을 거친 실리콘 나노 기둥의 파괴 거동도 분석했다. 그 결과 상온에서는 리튬 이온을 두 번 충전해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300나노미터(㎚) 지름의 실리콘 나노 기둥이 저온 환경에서는 100% 파괴됐다.
이현욱 교수는 “이번 연구를 미루어 보면 겨울철 저온 환경에서 충‧방전 시 실리콘 음극에서는 부피 팽창과 파괴가 나타날 수 있다”며 “저온에서 실리콘 음극의 기계적 거동을 규명하고 파괴를 완화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교수 연구팀은 이외에도 차세대 배터리 물질을 찾아내기 위해 사용되는 투과전자현미경(TEM) 실시간 관찰 기술의 기법을 발전시키는 연구 성과도 냈다. TEM은 전자빔을 쏘아서 물질을 관찰하는 현미경이다. 광학현미경보다 수천 배가량 높은 배율로 물질을 관찰할 수 있다.
TEM은 관찰 대상이 액체일 경우 증발되지 않도록 높은 진공상태에 둬야 하는데 이 때문에 약 50㎚ 두께의 ‘질화 실리콘 막’이나 탄소 원자 하나 두께의 ‘그래핀’을 이용해 액체를 감싸서 내부 물질을 분석해야 한다. 이때 질화 실리콘 막은 관찰 대상을 가릴 정도로 두꺼워 높은 해상도의 이미지를 얻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핀을 사용할 경우 액체를 가두는 부분의 모양과 위치, 크기가 달라져 일정한 조건에서 물질 관찰이 어려웠다.
연구팀은 질화 실리콘 막과 그래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액체 캡슐’을 개발했다. 질화 실리콘 막의 원하는 위치에 수백 나노미터 크기로 구멍을 일정하게 뚫은 뒤 단결정 그래핀을 합성해 코팅한 캡슐이다.
이 캡슐은 2개 막 사이에 두고 겹치면 액체가 구멍을 덮은 그래핀 두 막을 위아래로 부풀리면서 그래핀 사이에 가둬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액체 캡슐은 질화 실리콘 막보다 100배 얇고 3배 이상 강한 단결정 그래핀을 사용해 액체를 가둘 수 있었다.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한 진성환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질화 실리콘 막보다 100배 얇고 3배 이상 강한 단결정 그래핀을 사용해 액체를 가둠으로써 TEM 이미지의 해상도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며 “액체 캡슐의 크기와 위치, 모양을 자유롭게 조절해 동일 액체 조건에서 물질을 여러 차례 관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김동원 기자 thea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