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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한국인의 정서가 듬뿍 담긴 노랫말이다.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처마 밑에 집을 짓던 그 옛날의 봄 풍경이 그립다.
봄의 전령 제비와 봄을 화려하게 수놓는 살구꽃은 어떤 관계이기에 전통 그림의 공동 주연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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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근한 살구꽃이 상징하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먼 옛날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하여 행단(杏壇)은 교육의 상징이 되었다. 훗날 행단의 상징인 살구나무는 은빛 살구인 은행(銀杏)나무로 바뀌어 현재 성균관에도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버티고 있다.
옛날 교육의 목표가 과거급제였는데, 과거급제 시 머리에 꽂던 어사화(御賜花)가 바로 살구꽃이었다. 중국 당나라 때,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이 연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가 꽃을 꺾어 술과 함께 보내며 머리에 꽂고 술을 마시도록 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 꽃이 무슨 꽃인지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살구꽃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 이유는 당나라 이요(李淖)의 <진중세시기(秦中歲時記)>에 새로 과거에 급제한 인재들이 살구꽃이 만발한 행원(杏園)에서 꽃을 꺾어 놀며 잔치를 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살구꽃을 꽂고 잔치했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런데 왜 하필 살구꽃이었을까? 그것은 과거시험의 마지막 단계인 전시(殿試)가 살구꽃이 만발하는 봄에 치러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살구나무는 유교 교육의 상징인 행단을 의미하기도 하니 어사화로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그럼, 제비는 무슨 뜻일까? 봄이면 돌아오는 제비를 춘연(春燕)이라고 한다. 제비 연(燕, yàn)과 잔치 연(宴, yàn)의 발음이 같다. 즉 ‘제비’를 그리고 ‘잔치’로 읽는 것이다. 그래서 춘연(春燕)은 춘연(春宴)이 된다. 그 옛날 “봄날은 춘궁기인데 잔치는 무슨 잔치?”라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살구꽃이 만발하는 봄날 평생의 소원이자 가문의 영광인 과거시험에 급제했다면 어찌 잔치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비와 살구꽃을 그린 그림은 급제춘연(及第春宴)-과거시험 합격을 축하하는 잔치-이다. 그래서 살구꽃과 제비를 그린 그림은 시험합격을 기원하는 그림이다. 시험을 앞둔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공부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위 그림을 그린 심사정은 정작 과거시험조차 볼 수 없었다. 심사정의 조부 심익창이 과거시험 부정 사건으로 귀양을 갔다 온 후 다시 연잉군(훗날 영조) 시해 미수사건에 연루되어 집안이 풍비박산났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심사정은 평생 불우하게 살아야만 했지만, 그림만큼은 조선의 내로라하는 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불행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멋진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하면, 심사정이 지하에서 껄껄껄 웃지 않을까?
위 그림을 깊이 음미하다 보면 그림의 뜻과는 별개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살구꽃이 보라색이라는 것이다. 이는 꽃잎을 칠한 물감에 들어있는 납 성분이 산화되어 색깔이 변한 결과이다. 제비의 배 부분도 역시 산화되어 보랏빛으로 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돋아나는 살구나무에 꽃과 잎이 함께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전통 그림에서 살구꽃을 그릴 때는 꽃과 잎을 함께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살구꽃을 매화와 구분하기 위해 잎과 함께 그렸기 때문이다. 전통 그림의 단골 소재인 매화도 꽃이 먼저 피니 그림 속의 매화와 살구꽃은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연의 이치와는 다르지만 그림의 의미를 확실하게 나타내기 위한 옛사람들의 고민이 느껴진다.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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