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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대나무와 수원 화성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기사입력 2024.10.02 06:00
  • 10월 첫째 주말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린다. 수원 화성(華城)은 조선 22대 왕 정조(正祖)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건설한 신도시다. 이 신도시에서 펼쳐지는 문화제 기간에 ‘정조대왕 능행차’를 재현한다고 하니, 가을 나들이 겸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 (왼쪽) <화봉삼축(華封三祝)>1, 임백년 /출처=바이두 (오른쪽)<화봉삼축(華封三祝)>2, 동지견 /출처=개인소장
    ▲ (왼쪽) <화봉삼축(華封三祝)>1, 임백년 /출처=바이두 (오른쪽)<화봉삼축(華封三祝)>2, 동지견 /출처=개인소장

    <화봉삼축(華封三祝)>1을 보자. 등장인물이 열 명쯤 된다. 이 중에서 커다란 부채를 든 여인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요(堯)임금이다. 요임금은 중국 전설의 삼황오제 중 하나로, 흔히 태평성대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요순(堯舜)시대의 그 ‘요’이다.

    이 그림은 요임금이 화(華) 지방에 행차했을 때 당시 그곳의 관리였던 사람이 요임금을 맞이하며 인사하는 장면이다.

    이때의 상황이 《장자외편·천지편(莊子外篇·天地篇)》에 있는데 우리말로 정리하면 이러하다.

    지방관(封)은 요임금에게 “성인이시여! 부귀하고, 장수하고, 자손 번성 하시옵소서!” 이렇게 축원하였다. 그림에서는 이 대화의 내용을 알 수 없지만, 화가는 요임금과 지방관이 만나는 장면을 이렇게 그렸다. 

    그림 <화봉삼축(華封三祝)>2를 보자. 대나무 세 그루가 주인공이고, 그 뒤에 바위가 대나무 키만큼 솟아있다. 대나무 ‘죽(竹, zhú)’은 축원하다의 ‘축(祝, zhù)’과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대나무를 그리고 축원하다’로 읽는다. 대나무가 세 그루이니 축원의 내용도 세 가지다. 그것은 위에서 지방관이 요임금에게 축원한 부귀, 장수, 자손 번성이다.

    <화봉삼축(華封三祝)>을 주제로 한 그림은 이미 당나라 때부터 유행하였으나 복잡한 그림을 간단명료하게 대나무 세 그루로 처음 표현한 것은 청나라 정판교(鄭板橋)로 알려져 있다. 대나무 ‘죽’과 축원할 ‘축’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절묘하게 엮어 지방관이 요임금에게 축원한 내용을 그림으로 간단명료하게 표현하였다. 

    그런데 지방관의 아부성 발언을 들은 요임금이 뭐라고 답했을까? “껄껄껄” 웃으며 지방관에게 더 높은 벼슬이라도 주었을까? 그림에 담아내지 못한 요임금의 답에 주목해야 한다.

    요임금은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자손이 많으면 걱정이 늘고, 부유하면 화(禍)를 부르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축원을 사양하겠소.”라고 답하였다. 지방관의 안색이 머쓱해질 정도로, 참으로 현명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수원 화성(華城)의 이름은 위의 삼축(三祝)과 관련이 있다. 정조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면서 조선이 더욱 부강해지고 왕실이 번창하기를 소망했기에 화봉삼축(華封三祝)에서 화(華)를 취해 성(城)의 이름으로 정했다. 대나무 세 그루를 그린 그림의 의미와 정조의 꿈을 생각하며 화성문화제를 참관한다면 화성의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 심형철 박사·국제사이버대학교 한국어교육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