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12월 읽을만한 책] 이 땅의 다리 산책

기사입력 2015.12.03 13:23
이종근 저 | 채륜서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추천한 ‘12월의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한다.
  • 저기, 풍경이 있다. 울창한 숲이 있고, 맑은 물이 있고, 고색창연한 건물이 있고, 연꽃으로 수놓인 화려한 연못이 있다. 가끔은 안개가 아스라하다. 오른쪽 발이 벌써 앞을 향해 나간다. 든든한 다리(橋)가 저마다 다른 다리(脚)를 받치며 풍경 속으로 데려다 준다. 우리는 풍경을 향해 가느라 자신이 밟고 지나는 다리를 좀처럼 내려다보지 않는다. 온몸을 던졌던 풍경에 무젖다가 돌아 나올 즈음에야 비로소 건너야 할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는 다시 묵묵히 우리를 삶의 이편으로 데려다 준다.

    저자는 유려한 붓놀림으로 문명의 구조물로 시작된 다리의 존재를 우리네 삶과 엮어 재해석하고 있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을 이어준 월정교, 춘향의 사랑이 서린 오작교, 이승과 저승을 이어 주는 승선교, 서울의 치수(治水)를 위한 수표교, 세종의 효심이 서린 살곶이다리, 고려의 운명을 바꾼 선죽교, 정선 아우라지의 슬픈 이별을 말해 주는 섶다리, 고해의 파도를 헤치며 해탈로 나아가는 능파교, 피란민의 애환이 서린 영도다리, 다리마다 구구절절 사연 없는 곳이 없다.

    귀신사 홀어미다리의 주인공은 남편을 일찍 보내고 홀로 어린 남매를 키운 여인이다. 여인은 늘그막에 건넛마을에 사는 홀아비를 만나 정을 나누었다. 밤마다 사라지는 어머니가 이상해 뒤를 밟던 아들은 어머니가 정인을 만나러 오가는 길에 개울물에 옷이 젖는 것을 보고, 남몰래 다리를 놓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애틋한 마음을 알았을까?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은 아들의 효심을 칭찬하며 홀어미다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20년의 연구와 10년 답사의 노고를 담은 이 책은 역사와 신화, 과거와 현재,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곳저곳 아롱다롱 매달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 길을 나서면, 풍경에 섞여 있던 다리들이 어제보다는 좀 더 또렷하게, 좀 더 정답게 보일 것이다.

    | 추천자: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출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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