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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반기를 결산해보면, 3편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이 세 편을 넣어서 굳이 한 문장으로 만들어보자면 이러하다. ‘기생충’으로 웃었지만, 상반기 최고 흥행작 ‘남산의 부장들’도 손익분기점을 못 넘은 코로나 19 현실에서 영화 ‘#살아있다’가 “한국 영화, 살아남아야 한다”고 간절히 외쳤다.
2020년 상반기, 한국영화계는 예측하지 못한 일들로 가득했다. 바라만 보던 아카데미 시상식에 한국 영화가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영화 ‘기생충’으로 온 나라가 환호했다.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그리고 최우수작품상까지 무려 4관왕에 올랐다. 101년의 한국 영화사와 함께 92년 아카데미 역사가 새롭게 쓰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이렇게 힘들어질 줄 몰랐다. 코로나 19 여파로 5월에는 전년 동월대비 관객수가 97%가 감소했다. 한국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 100명이 있었다면, 지난 5월에는 매일 단 3명만이 남아있는 꼴이다. 그리고 6월 말, 기나긴 극장가의 침묵 속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침입자’, ‘결백’에 이어 영화 ‘#살아있다’가 한국영화계가 살아있다고 기지개를 켰다.
“The Oscar goes to…Parasite! (이 상의 주인공은 ‘기생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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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자의 외침에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무대에 올랐다. 지난 2월 9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다. 한 번이 아니었다. 무려 4차례였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게 된 것은 101년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 영화 역사 뿐만이 아니다.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후, 전한 수상소감은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했다. 거장 감독 마틴 스콜세지에게 “영화 공부를 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책에서 읽었다. 그 말은 마틴 스콜세지의 말이었다”고 박수를 보내고, 함께 후보에 오른 샘 맨데스 감독('1917'), 쿠엔틴 타란티노(‘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토드 필립스 감독('조커')에게도 존경을 표했다.
마음껏 즐겨도 좋을 ‘한국 영화 역사’의 한 장면이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4개의 상을 포함해 SAG(미국배우조합상) 앙상블상 등 해외에서만 156개 상을, 국내에서는 30개의 상을 받았다. 전원 백수로 살아가던 네 가족 기택(송강호), 충숙(장혜진), 기우(최우식), 기정(박소담)이 박사장(이선균) 집에 발을 들이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 부와 빈곤에 대한 상징이 가득한 작품 ‘기생충’이 국경과 언어 등 넘지 못할 ‘선’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코로나19와 박스오피스…“최고 흥행작 ‘남산의 부장들’도 울었다” -
갑자기 ‘코로나 19’가 왔다. 2월부터 판도가 뒤바뀌었다. 2019년 2월 총 관객수는 2,228만명이었고, 올해 2월 총 관객수는 737만명에 그쳤다.
상반기 최고 흥행 한국 영화는 ‘남산의 부장들’이 차지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이성민) 암살 전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의 행보를 담은 작품이다. 이는 1월 22일 개봉해 47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412억원의 극장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2월부터 극장 관객이 줄어들기 시작하며 장기 흥행이 어려워졌고, 영화의 손익분기점(관객수 500만)에 못 미치는 성과에 그쳐야 했다.
3월부터 차이는 본격화 됐다. ▲2019년 3월 총 관객수 1,467만명 - 2020년 3월 총 관객수 152만명 ▲2019년 4월 총 관객수 1,334만명 – 2020년 4월 총 관객수 75만명 ▲2019년 5월 총 관객수 1,806만명 - 2020년 5월 총 관객수 124만명.
영화진흥위원회 5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5월 전체 관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91.6%(1654만 명↓) 감소했다. 5월 한국영화 관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97.4%(839만 명↓), 5월 외국영화 관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86.2%(814만 명↓) 감소했다. -
영화들의 개봉 일정도 줄줄이 미뤄졌다. 송지효와 김무열 주연의 영화 ‘침입자’는 2월 12일 제작보고회를 개최하며 개봉일을 3월 12일로 알렸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으로 5월 21일 개봉→6월 4일 개봉으로 세 번이나 개봉일을 알려야 했다. 신혜선, 배종옥, 허준호가 열연한 영화 ‘결백’도 비슷하다. 2월 6일 제작보고회를 하며 3월 5일 개봉이라고 알렸지만, 5월 27일→6월 10일로 두 차례 개봉이 미뤄졌다. 신혜선은 ‘결백’ 언론 시사회에서 “정말 너무 오래 기다려왔다”고 손을 꼭 쥐고 말하기도 했다.
극장 개봉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한 작품도 있다. 지난 2월 26일에는 영화 ‘사냥의 시간’과 ‘기생충: 흑백판’의 개봉일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여파로 두 작품 모두 개봉을 연기했다. 이후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를 통해 독점 공개됐고, ‘기생충: 흑백판’은 4월 29일에 개봉한 이후, 5월 14일 IPTV 등 다양한 플랫폼에 VOD로 공개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7월 3일 기준, 상반기 한국영화 흥행작 상위 10위는 다음과 같다. ▲1위. 남산의 부장들 (1월22일 개봉, 475만명) ▲2위. 히트맨 (1월22일 개봉, 241만명) ▲3위. 백두산 (2019년 12월19일 개봉, 196만명) ▲4위. 정직한 후보 (2월12일 개봉, 154만명) ▲5위. #살아있다 (6월 24일, 129만명) ▲6위. 클로젯 (2월5일, 127만명) ▲7위. 해치지않아 (1월15일 개봉, 121만명) ▲8위. 천문: 하늘에 묻는다 (2019년 12월26일, 103만명) ▲9위. 시동 (2019년 12월18일, 79만명) ▲10위. 결백 (6월 10일, 76만명)
코로나 19 상황, 극장가도 봄은 오는가…’#살아있다’ -
한껏 움츠러들었다. 개봉일을 미루고, 개봉 시기를 다시 잡고, 촬영 현장은 몸을 사렸다. 1월부터5월 사이에 촬영을 시작한 영화는 총 6편에 불과했다. 신작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극장은 재개봉작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다. 2월에는 1.5%에 불과하던 재개봉 관객수 비율은 3월에는 15.8%, 4월에는 25.1%까지 높아졌다. ‘위대한 쇼맨’(5월21일 재개봉), ‘라라랜드’(3월25일 재개봉),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5월1일 재개봉) 등 극장가에 재개봉 작품이 많아진 이유다.
6월이 되며 날씨는 더운 여름으로 바뀌었지만, 극장가에는 인제야 봄바람이 불어온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 관람료 할인권을 배포하기 시작하면서 6월 6일에는 일일 관객수가 16만 6천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침입자’가 6월 4일 개봉하고, ‘결백’이 6월 10일 개봉하며 힘을 보탰다.
배우 유아인과 박신혜가 열연한 영화 ‘#살아있다’가, 제목처럼 한국 영화 ‘살아있다’고 알렸다. 해당 영화는 배우의 힘과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퍼진 현 상황과 맞물리며 관객의 궁금증과 기대감을 높였고, 개봉 첫 주 70만2,964명을 동원하며 누적관객수 100만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전과 다름없는 흥행세다.
다가올 하반기에는 극장가가 관객을 맞을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할 것 같다.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강동원, 이정현, 구교환 등이 열연한 영화 ‘반도’(7월 15일 개봉 예정), ‘변호인’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정우성, 유연석 등이 합류한 영화 ‘강철비2’(7월 29일 개봉 예정), 영화 ‘신세계’(2013)이후 한 작품에서 다시 만나게 된 배우 황정민과 이정재의 호흡을 볼 수 있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8월 개봉), 엄정화, 박성웅, 이상윤 등이 열연한 영화 ‘오케이 마담’(8월 개봉)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역사를 새로 쓰며 시작한 한국 영화의 2020년의 마지막 장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늘 그랬듯 관객의 손에 달려있다.
- 연예 칼럼니스트 조명현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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