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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대제철, 71년 데이터 직물로 짠 ‘AI 옷’ 입다

기사입력 2024.07.22 17:01
한동윤 현대제철 데이터전략팀 책임
사내 생성형 AI 서비스 출시, 제철-철강 분야서 처음
데이터 사일로 극복, 직원 피드백 보며 생성형 AI 2단계 준비
  • 한동윤 현대제철 데이터 전략팀 책임은 “기업이 생성형 AI를 구축할 땐 어디에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명확한 목적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동원 기자
    ▲ 한동윤 현대제철 데이터 전략팀 책임은 “기업이 생성형 AI를 구축할 땐 어디에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명확한 목적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동원 기자

    한국 철강 산업을 이끌어 온 현대제철이 인공지능(AI) 옷을 입었다. 71년간 기업을 운영하며 쌓은 데이터로 만든 AI 옷이다. 

    최근 현대제철은 직원들의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면 바로 답변해 주는 생성형 AI 기술도 도입했다. 사내 지식정보 플랫폼 ‘HIP(Hyundai-steel Intelligence Platform)’이다. 제조 현장에서 주로 도입하던 예지보전, 산업안전 관련 AI 기술을 넘어 사내 지원 챗봇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 서비스는 사원들이 업무를 하면서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면 관련 답변을 바로 해준다. 출퇴근, 육아휴직, 급여, 복리후생 등 경영지원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철강 분야 기초 제반 지식도 제공한다. 사내 전용 챗GPT가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현대제철은 사내 지원 챗봇이 정확한 정보를 가져오기 위해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을 결합했다. RAG는 방대한 양의 대규모 원천 데이터에서 AI가 필요로 하는 특정 정보나 지식만 정확하게 검색하는 기능이다. 대규모 데이터에서 필요한 정보만 수집해 정확한 답변이나 문장을 생성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잘못된 정보를 사실처럼 제공하는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을 줄였다.

    사실 현대제철이 사내 AI를 도입하는 건 일종의 도전이었다. 71년이라는 업력이 말해주듯 사내에 데이터 수가 상당했고, 회사가 커가면서 철강 산업군에서 인수합병(M&A)도 진행하면서 데이터가 분리돼있는 데이터 사일로 현상도 심각했기 때문이다. 철강기업이 AI 옷을 갈아입기 위해선 각 업무 분야에 AI가 필요한 곳을 찾고 조직원을 설득하는 등의 여러 과제가 산적했다.

    하지만 현대제철은 끝내 AI 옷을 입었다. HIP 첫 모델을 구축했고, 여기서 얻은 경험과 직원들의 반응을 토대로 HIP 2.0 단계 고도화도 준비하고 있다. 현대제철이 AI 옷을 갈아입기까지 지원군도 있었다. 데이터 인텔리전스 전문 기업인 에스투더블유(S2W)다. 이 기업은 현대제철이 보유한 비정형 텍스트 데이터들을 AI로 구축할 수 있게 하며 RAG에 보안이 결합된 SAIP를 제공했다. 이를 토대로 현대제철의 HIP이 데이터 유출 등 사용자 실수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협을 방어하며 정확도와 안전성을 갖추게 했다. 

    그렇다면, 현대제철이 입은 AI 옷은 어떤 느낌일까? 그 궁금증을 알기 위해 한동윤 현대제철 데이터 전략팀 프로를 만났다.

  • 현대제철 임직원이 지식정보 플랫폼 HIP을 사용하는 모습. /현대제철
    ▲ 현대제철 임직원이 지식정보 플랫폼 HIP을 사용하는 모습. /현대제철

    - 제철, 철강 분야에선 예지보전, 산업안전 관련 AI 기술을 많이 접목했다. 그런데 생성형 AI 기반 사내 챗봇은 흔치 않았다. 구축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지보전이나 산업 안전과 같은 현장에서 생산 환경을 특화하기 위한 AI는 얘기한 대로 많이 구축됐다. 스마트팩토리 관점의 AI 과제는 많았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생성형 AI를 접목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71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상당히 많은 데이터가 축적돼 있는데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스마트팩토리 관점의 데이터들은 많이 활용하고 있었지만, 일반 사무 업무 등 지식 정보 분석 형태의 비정형 데이터들은 축적만 해 놓았고 활용은 하지 못했다. 이에 회사에서도 디지털전환 과정에서 데이터 자산화가 필요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고 여기에 생성형 AI가 대안이라고 판단해 관련 서비스를 구축하게 됐다.”

    - 챗GPT 등장 이후 기업들이 AI 구축에 관심을 보이더라.

    “맞다. 챗GPT가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AI 발전에 깜짝 놀라게 됐다. 이 기술을 회사에 도입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회사에 많았다. 당시 전략기획본부장도 챗GPT 같은 시스템을 회사에 도입하게 되면 임직원들의 만족도가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고, 이후로 생성형 AI를 사내에 도입할 수 있는 작업을 진행했다.”

    - 71년이라는 역사가 있는 만큼 데이터가 많고 사일로 현상도 심했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나.

    “우리가 71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많은 양의 데이터가 사내에 축적돼 있었다. 또 철강 산업군에 대한 인수합병들을 진행하며 사업을 확장하다 보니 데이터 사일로 현상도 있었다. 시스템은 커지고 있는데 각각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관통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회사에선 데이터 구축부터 여러 준비를 했다. 데이터 사일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시스템도 체계적으로 변화를 줬다. 이를 토대로 정형 데이터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 해소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고민했던 부분은 비정형 데이터들이었다. 회사 곳곳에 숨어 있는 데이터들을 찾아내는 일은 어려움이 있었다.”

    - 이번에 HIP을 구축했다. 사용 사례는 어떤가.

    “챗봇 기반 검색 서비스다 보니 회사 내 자료를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는 이번 서비스를 설비, 엔지니어링, 품질, 관리, 마케팅 등 9가지 범위의 도메인에 구축했다. 이 분야에서 정보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정보 검색이 빨라졌다는 평을 받는다. 일례로 설비 엔지니어가 5년 전 고장 리포트를 찾고 싶어 하는데, 다시 찾기란 어렵다. 자기 팀에 있더라도 담당이 너무 세분돼 있어서 각 담당자에게 파일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봐야 한다.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회사 데이터를 학습한 생성형 AI 기반 챗봇을 이용하면 관련 내용을 빠르게 찾을 수 있다. 회사 규정, 근태, 출퇴근 등 업무에 필요한 내용 등도 제공한다.”

    - 직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구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속해서 모니터링하며 개선점을 찾아가는 상황이다. 서비스를 오픈하고 나서 임직원들이 계속 접속하고 있다. 검색과 챗봇 두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 서비스들이 모든 임직원을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는 아니다. 왜냐하면 도메인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해당 도메인에 소속된 직원들은 잘 사용할 수 있고, 다른 분야 사업을 하는 분들은 유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분들은 간헐적으로 필요한 분들만 사용하고 있다. 이제 첫 단계이다 보니 필요한 부분을 지속 탐색하며 서비스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 HIP 2.0은 어떤 모습일까.

    “여러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등을 접목해 업무를 자동화하는 AI 어시스턴트도 고민하고 있고, 이미지나 영상 등 멀티모달로 가는 방향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집중하고 있는 것은 지식 검색을 고도화하는 것이다. 챗GPT에 익숙한 임직원은 사내 AI 챗봇에 괴리감이 있다. 챗GPT는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만 기업용 챗봇은 제한된 사내 정보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에 사내 데이터뿐 아니라 외부 논문 등 여러 데이터를 학습시켜 직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 생성형 AI를 도입하고 싶어하는 기업이 많다.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우선 사용자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 생성형 AI가 대중에게 관심을 받았던 이유는 챗GPT의 놀라운 답변 능력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이 답변 능력으로 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 결과 정보 검색과 같은 서비스에 접목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사실 생성형 AI를 도입하는 방법은 많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 수도 있고 이미 있는 모델을 온프레미스나 클라우드로 구축할 수도 있다. 생성형 AI를 어디에 이용할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필요한 방법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

    - 현대제철의 생성형 AI 구축은 S2W가 함께 했다. S2W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있나.

    “비정형 텍스트 정보를 빠르게 수집해 전달하는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기 때문이다. 보안에서도 강력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내부 데이터 유출 등의 걱정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우리는 AI 구축에 있어 여러 업체를 고민했다.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도 후보 명단에 있었다. 그런데 보통 이들 업체는 솔루션 패키지에 우리가 따라가는 형식이었다. 사이즈에 맞는 옷을 만들면 그 옷을 입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AI 모델이 있었기 때문에 옷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맞는 옷을 만들고 싶었다. S2W가 그 역할을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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