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반짝반짝 제가 좋아하는 옷이었어요. 저는 그런 옷을 입는 걸 좋아해요. 물론 현장의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의복을 착용하는 것)가 가장 중요하지만, 제가 맡은 캐릭터와 맞닿은 지점, 교집합을 설정해서 옷을 입는 걸 좋아해요."
'댓글부대'의 개봉을 앞두고 출연한 웹 예능 '짠한형 신동엽'에서 수줍게 입은 반짝이는 파란 바지에 대한 이야기를 홍경이 직접 들려줬다. 홍경은 영화 '댓글부대'에서 팹택 역을 맡았다. 팹택은 온라인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팀알렙 세 사람 중 한 명이다. 찻탓캇(김동휘)과 찡뻤킹(김성철)과는 달리 외부 사람을 만나기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물이다. '댓글부대'는 임상진 기자(손석구)가 대기업의 횡보를 고발한 자신의 기사가 오보라고 알려진 후, 찡뻤킹에게 배후에 여론을 조작하는 '팀알렙'의 존재가 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
홍경은 '팹택'을 담아내기 위해 "그의 심장이 가장 중요했고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팹택이 가진 결핍에서 다가갔다. 홍경은 "이 친구가 되게 외로운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존재를 어딘가에서 인정받고 싶은데, 그게 안 되어서 결여된 면이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걸 두 친구에게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안국진 감독과 대화하며 팹택의 부분을 채워갔다. 홍경은 "주변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너에게 보지 못했던 초상이 담긴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해주셔서요. 그런 면이 고무적이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만족감을 전하며 준비했던 당시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안국진 감독님과 처음 만나 뵙게 되었어요. 약 4~5시간 동안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후 네다섯 번 정도 더 감독님을 만나 뵈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당시 대화 내용이 떠오르지는 않는데, 이야기에 도움이 될 법한 것들에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주고받은 것 같아요. 이야기 구조를 봤을 때, 팹택은 아무래도 외부로 나가는 경우가 적으니까, 환경이 제한적이잖아요. 그 속에서 어떻게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팹택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는데, 합쳐놓으면 A4 용지로 두 페이지 정도 될 것 같아요. 제가 적극적으로 달려든 것 같아요." -
"저는 안국진 감독님과의 현장이 너무 좋았어요. 서사가 분명하고, 나의 캐릭터가 설명될 지점이 많다면, 거기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겠죠. 이들의 연대에 관해 어떻게 조각을 맞춰나가고 연결해 갈지를 고민하는 건 또 다른 지점이니까요. '약한영웅 Class1' 때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댓글부대'에서는 제가 온전히 납득되지 않아도, 감독님께서 어떤 포인트를 찍으면, 거기로 뛰어들었어요.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제 생각대로만 하면, 한계가 명확하게 있는데, 제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가리키실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거기로 뛰어가 봤어요. 저는 테이크를 많이 가는 즐거움이 항상 있는 배우거든요. 이렇게 가보고, 저렇게 튀어보고 했던 것이 저에게는 아주 영화적인 체험이고, 경험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담긴 장면이 많았다. 홍경은 일례로 영화사 대표(김희원)와 만나는 자리에서 팹택이 화분을 만지며 '진짜예요?'라고 말하는 장면 등을 언급했다. 그리고 찡뻤킹(김성철)과 말다툼 후 돌아서며 울먹이는 장면을 촬영하던 당시도 떠올렸다.
"저는 제 앞의 나무를 보고 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댓글부대' 전체의 숲을 보고 계시잖아요. 거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면 '에라, 모르겠다. 해볼게요' 하고 갔어요. 그 장면도 여러 번 촬영했고, 그중 감독님께서 택해서 사용하신 장면이에요. 그사이에는 울먹임도 있고, 더 울기도 하고, 엉엉 우는 장면도 있고, 다양한 시도 들이 있었어요. 너무 생각지도 못한 '시네마다' 싶었죠. (웃음)" -
팹택이 모니터 뒤에서 갑자기 서늘하게 표정을 달리할 때, '댓글부대'의 온도가 달라진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의뢰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목표로만 다가가던 '팀알렙'의 광기가 드리워진 장면이었고, 모니터 뒤에 숨어있는 얼굴들과 표정들에 대한 화두로 느껴지기도 했다.
"제가 쫓아가는 방향은 긴장하고, 어색하고, 두려움에 떠는 순간에 나를 던져놓자는 거예요. 그건 계획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 같아요. 어색함이 느껴지고, 긴장하더라도 저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느껴져요. 물론, 제가 캐릭터에 대해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요. 그런데 현장에 갈 때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건 없어요. 대신 제가 맡은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제 창문을 다 열어놓고, 다 듣는 것 같아요. '이리로 튀어봐라' 하시면 그쪽으로 달려보고, 아니면 다시 방향을 틀어도 보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 가는 것이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희열이에요." -
그래서였을 거다. 지적 장애를 가진 정수('결백')를 보면서 눈물이 난 것도, 류이강('D.P.')을 보면서 어금니를 꽉 문 것도, 오범석('약한영웅 Class1')의 유약함에 마음이 흔들린 것도, 홍새('악귀')를 보며 뭐라 단정짓지 못할 괴로움을 느낀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을 거다. 하지만, 홍경은 이를 "자신의 평범함"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한다.
"제가 평범하니까,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서 달라져요. 정말 나이브한 답변일 수 있지만요. 내피를 단단하게 한 후에, 외피에 대한 고민을 작업 초반에 정말 많이 하거든요. 사람이라는 게 아무리 속을 만들어도, 그 사람의 첫인상을 만드는 건 외피잖아요. 단순히 생긴 것뿐만 아니라 분위기 등 복합적인 걸 수 있어서요. 그 외피를 만드는 건 저 혼자서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결과가 작품에 담기고, 그 작품이 하나둘 쌓여가며 저에 대한 그림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
"사실 저는 이번 작품에서 교복을 입었으니, 다음 작품에서는 형사를 해봐야지.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쫓는 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그런 감정 같아요. 어떤 이야기가 나의 심장을 때리고, 나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감정들을 끌어내는지,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없으면, 저는 나아가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의미 있는 걸 쌓아가고 싶었거든요. 우리 세대가 느끼는 작은 일면이라도 (작품 속에) 담겨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결백'이라는 작품에도, '정말 먼 곳', '악귀', '댓글부대', 그리고 공개될 '청설'에서도 그래요. 훗날 제20대를 돌아볼 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홍경은 '약한 영웅 Class1'에서 배우 박지훈, 최현욱과 함께 트리플 호흡을 맞췄다면, 영화 '댓글부대'에서는 배우 김성철, 김동휘와 셋의 영역을 선보인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세 명의 또래 배우와의 만남이라는 지점에서 접근할 때 유사한 지점도 있었다.
"두 작품은 정말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공간만 봐도 '댓글부대'에서는 같이 살고 있잖아요. 설정이 각기 다른 지점에서 오는 매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족 외에 누군가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는데 '댓글부대'는 그런 지점이 재미있었고요. 김성철 배우님께서 뮤지컬도 초대해 주셔서 가봤는데요. '댓글부대'를 하면서 움직임 등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굉장히 철저하게 준비를 해오시더라고요. (김)동휘와는 영화 '콘크리트 마켓'에서 만났었는데요. 한 번 호흡을 맞춰본 경험치가 중요하더라고요. 제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이 사람이 잘 받아줄 거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소통하며 놀았던 것 같아요. 또, 선배님들과 호흡할 때 오는 편안함도 있어요. '악귀' 당시 (김)태리, (오)정세 선배님과 호흡을 맞추며 긴장되면서도 선배님들이 주는 편안함이 있거든요. (웃음)" -
그렇다면 '댓글부대'는 홍경에게 어떤 작품일까.
"제가 쫓고 있던 것이 분명하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뜻깊은 것 같아요. '댓글부대'가 다루는 이야기도, 그 속에 담겨있는 이미지들도 모두 흥미롭게 다가오거든요. 미장센과 내러티브, 두 가지 모두를 잡은 영화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저는 아직 경험이 많이 없어서 찍어나가며 혼란과 폭풍우 속에 '뭘 배웠는지'에 대한 생각은 힘든 것 같아요. 모든 게 지나가고, 결과물이 나오고, 그걸 보면서 채워나갈 걸 탐구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번 작품 속 손석구 선배님을 보면서 참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선배님께서 현장에서 어떻게 감독님, 스태프들과 소통하는지 미약하게 엿봤고요. 모두를 챙기며 선함으로 이끄는 걸 봤고요. 그러면서도 작품의 템포와 리듬을 끌고 나가는 걸 보며 탄복했어요. (손)석구 선배님을 보면서 배움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홍경은 인터뷰 중 자신을 칭찬하는 질문에 "얼굴이 빨개졌어요"라며 실제로도 얼굴이 빨개졌다. 사실 홍경과 많은 질문과 답을 나눴지만, 진짜 홍경은 그 빨개진 얼굴 속에 있었다. A4 용지가 2장이 넘어가도록 캐릭터를 준비하면서도, 현장에는 비움의 상태로 가서 어디로든 튈 준비를 하는 그 공간 속에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홍경의 다른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의 다음 얼굴에 더욱더 기대가 더해진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